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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준 Headshot

설리, 이토록 매력적인 당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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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는 욕망한다. 그녀에게 금지될 필요가 없는 것들을. 그래서 보란 듯이 전시한다.

지난 2월, 설리의 화보에 관한 뉴스를 발견했다. 무심코 클릭했다. 의외였다. 숱하게 연예인 화보를 진행하는 에디터로 밥벌이를 했던 경험을 반추했을 때 일반적인 여성 아이돌 화보에서 이렇게 도발적인 콘셉트를 허해줄 확률은 대부분 0으로 수렴된다. 노란 티셔츠와 숏팬츠를 입고 나른한 자세와 야릇한 표정으로 빤히 바라보는 설리의 눈은 마치 입과 같았다. 무언가 말을 거는 듯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느낌. 여느 걸그룹 아이돌 화보와는 공기가 달랐다. 그런데 이는 설리의 인스타그램으로 공개된 컷이라 했다. 특정 매체의 화보임을 명시하는 로고도 없었다. 그리고 기사에서 개인적으로 친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미소녀 전문 포토그래퍼'로 알려진 로타 씨가 촬영한 화보 5컷"이라니! 궁금해서 로타 형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설리와의 화보컷에 왜 매체명이 없어요? "설리 씨로부터 직접 연락이 왔어. 개인작업을 진행하고 싶은데 가능하냐고." 헐.

팔 없어 보이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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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있어 보이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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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고 웃으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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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는 사진😚단비꼬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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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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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가 궁금해진 건 그때부터였다. 아이돌 스타로서 대중이 바라는 예쁜 모습을 충족시켜주는 대신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과감히 전시하는 설리의 행보가 파격적으로 와 닿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중의 취향 안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라는 건 다음 문제다. 하지만 화보컷 공개는 일종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지난 4월 9일,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설리의 이름이 떠올랐다. 박병호와 이대호가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나란히 홈런을 치며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른 시간에 말이다. 설리도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쳤나? 그럴 리가. 그날 설리의 인스타그램에는 최자와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평범한 셀카는 아니었다. 침대에 함께 누워 얼굴을 마주보고 입을 맞추는 모습.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너머의 연인은 그렇게 만인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된 온갖 기사와 블로그 포스팅이 쏟아져 나왔다. 포털사이트에선 설리를 검색하면 '설리 인스타그램'을 비롯해 '설리 인스타 논란', '설리 최자' 그리고 '설리 생크림' 등의 자동검색어가 제공된다. 설리의 인스타그램을 향한 관심이 풍년이다.

흥미로운 건 설리의 태도다. 어느 날 설리는 입 안 가득 생크림을 들이붓고 꿀꺽 삼키는 영상을 올렸다. 그 아래로 누군가는 강한 혐오를, 누군가는 열렬한 애정을 댓글로 남겼다. 솔직히 설리가 생크림을 삼킨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뜨겁게 엇갈린다. 하지만 설리는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듭 전시한다. 게임의 룰을 지배한다. 아이돌 스타에게 대중이 기대하는 이미지를 충족시켜주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적나라하게 꺼내 보인다. 놀랍지 않은가. 솔직히 나는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자기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아이돌 스타가 등장할 것이라 예상해 본 적이 없다. 마치 김연아의 트리플 컴비네이션 점프를 보는 것만 같다. 주저하지 않고 뛰어올라 차분하게 착지한다. 그리곤 뒤돌아 보지 않고 제 갈 길로 가버린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두고 설왕설래하거나 말거나 자기 일상을 마음대로 전시할 권리를 충실히 이행한다.

설리의 인스타그램이 그녀의 삶을 얼마나 정직하게 반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걸 꼭 알아야 할 권리가 그 누구에게도 없고, 설리에게 그것을 해명할 의무도 없다는 걸 생각한다면 설리의 인스타그램을 두고 떠들어대는 세간의 태도와 대조되는 설리의 전지적 방관은 상당히 유쾌한 일이다. 그리고 우린 이렇게까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아이돌, 아니, 연예인을 목격해본 기억이 없었다. 우리가 예상하는 전형적인 아이돌 스타에 대한 관습적 기대감을 완벽하게 부수고 자신의 행복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건강한 욕망을 가릴 것 없이 드러내는 당당함. 자신의 사랑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선언할 수 있는 자신감. 거짓말처럼 툭 하고 나타난 판타지스타랄까. 계속 설리를, 설리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싶다. 이토록 매력적인 당당함과 자신감을 계속 팔로우하고 싶다. 설리라는 건강한 욕망을.

* GRAZIA KOREA 매거진에 게재된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