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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 장엄하고 숭고한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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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은 정중하게 써내려간, 영웅을 위한 추도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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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수룩한 수염과 흐트러진 머리카락,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 영화의 도입부에서 로건(휴 잭맨)을 보게 될 관객들은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로건〉은 〈엑스맨〉의 아이콘 울버린을 앞세운 세 번째 스핀오프물이지만 제목처럼 울버린보단 로건에 관한 영화다.

울버린은 자가 치유 능력인 힐링 팩터 덕분에 영원히 죽지도, 늙지도 않는다. 하지만 울버린의 삶을 지우듯 살아가는 로건에게 삶은 통증으로 환기된다. 힐링 팩터는 약해졌고 노화는 막을 수 없다. 말라비틀어진 기침과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점철된 인생은 덧없이 버겁다. 그의 삶이 종착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음을 예감하게 만든다.

사실 로건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을 수 없는 삶에 지쳐갔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건 영원히 이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키고자 안간힘을 써도 지켜낼 수 없는 것들이 생겨났다. 결국 혼자가 됐다. 그래서 그는 혼자가 되길 선택했고 고독에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지켜야 할 것은 끊임없이 생겨 났다. 〈로건〉에서도 그렇다. 돌연변이들이 사라진 2029년, 콜 리무진 기사로 연명하는 로건은 치매와 발작에 시달리는 찰스 자비에(패트릭 스튜어트)를 보호하며 멕시코 엘파소에서 은둔하듯 살아간다. 엑스맨 시절의 명예도, 돌연변이로서의 자존감도 풍화돼버린 시대에서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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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에는 로건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그는 투견처럼 살아가던 로건에게 인간적인 존엄을 불어넣어준 존재였다. 한때 영재학교를 운영하며 프로페서 X라 불리던 시절에는 돌연변이들의 등대와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치매에 걸려 발작을 일으키는 노인이자 국가로부터 대량 살상 무기로 규정된 현상 수배범일 뿐이다.

그런 그가 로건에게 살아남아야 할 일말의 이유를 쥐여준다. 로건에게 자비에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여정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이정표가 등장한다. 돌연변이들을 인간 병기로 육성시키는 시설에서 탈출한 소녀 로라(다프네 킨)가 로건 앞에 나타난다.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것에 신물이 난 로건은 소녀를 외면하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끝내 내버려두지 못한다. 어쩌면 아다만티움 재질의 클로를 뽑고 짐승처럼 싸우는 로라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비에는 로라가 로건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돌연변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다. 로라는 제임스 하울렛의 유전자로 배양한 돌연변이였다. 제임스 하울렛은 로건의 본명이다. 로라는 로건이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결국 로건은 로라가 바라는 대로 캐나다 국경 지대의 노스다코타에 있는 '에덴'이란 은신처로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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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거대한 악당도, 파괴된 세상도, 자신의 죽음도 아니다. 바로 사랑이다. 일종의 '정' 말이다. 그래서 그를 불편하게 만들기로 했다. 두뇌가 점차 퇴화하는 찰스를 병든 아버지처럼 돌보고, 우연히 만난 딸을 아버지로서 보호하도록 내몰았다."

〈로건〉을 연출한 감독 제임스 맨골드의 말이다. 그러니까 〈로건〉은 울버린의 마지막 여정이자 최후의 부성애에 관한 영화다.

로건은 그 누구도 죽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를 지켜야만 했다. 하지만 결과는 대부분 가혹했고, 그때마다 외로워졌다. 게다가 돌연변이들이 사라진, 보다 정확하게는 청소된 2029년에 생존해 있는 로건에게 삶이란 그 모든 죽음을 짊어진 형벌이었다.

자비에는 누구보다도 로건을 잘 안다. 그는 로건이 스스로 죽고 싶어 하는 걸 안다. 그래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린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로건에게 로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로건의 삶을 무너뜨리지만 반대로 누군가를 지켜냈다는 안도감을 통해 로건의 삶이 회복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로건이 자비에를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격리시켜 보호하는 것도 그래서다. 로건에게 자비에는 어떻게든 지켜내야 할 최후의 보루다. 최후의 상실감을 막고 싶다. 그래야 후회 없이 죽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자비에는 로건에게 로라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로건에게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가 치유되길 바란다. 의무감이 아닌 유대감을 느끼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래서 로건을 향해 '자네에겐 시간이 많다'고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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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맨골드는 〈로건〉을 설명하면서 고전적인 서부극을 몇 차례 언급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와 샘 페킨파 감독의 〈관계의 종말〉같은 작품이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역전의 용사들이 노구를 이끌고 약자들을 유린하는 무법자들을 응징하는 내용인 동시에 폭력의 양방향성에 대한 성찰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인용한 또 다른 서부극 〈셰인〉의 대사를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사람은 본성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과 '살인은 결국 낙인을 찍는다'는 것. 이는 로건의 지난 세월과 심경을 효과적으로 압축해내는 대목이다.

그런 관점에서 〈로건〉은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근래의 히어로물과 완벽하게 차별화된 성취를 보여준다. 심각하게 영웅적이거나 천연덕스럽게 탈영웅적인 이중성과 하나같이 스펙터클하고 파괴적인 이미지를 전시하는 일관성을 지닌 최근의 히어로물과 달리 〈로건〉은 지독하게 현실적이며 잔인하게 사적이다.

심지어 기존의 〈엑스맨〉시리즈 안에서 느낄 수 없었던 비정함과 잔혹함으로 점철됐다. 팔다리는 물론 머리통까지 바닥을 굴러다닌다. 마치 스크린에서 마른 모래가 떨어지고 핏자국이 묻어날 것만 같다. 오락적 소비를 지향하는 히어로물로서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주저하지 않았다는 건 이 영화의 야심이 다른 곳으로 향해 있음을 직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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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은 텍사스와 엘파소의 사막지대를 폭넓은 앵글로 담아냈다. 그 황량한 대지 위로 다리를 절며 걷는 로건의 쇠락한 육체는 〈엑스맨〉시리즈와 함께 성장한 어떤 관객들의 심경을 짓누르고도 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난 17년간 〈엑스맨〉을 보고 자란 이들에게 있어서 울버린은, 로건은 영원히 꺾이지 않을 듯한 야성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건〉의 로건은 상처 입고 지친 영혼일 뿐이다. 로건은 로라가 갖고 있는 〈엑스맨〉코믹북을 보고 "현실은 만화와 달리 누군가가 죽는다"며 냉소한다. 로라가 가고자 하는 종착지 '에덴'이 코믹북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실소를 금치 못한다.

그럼에도 길을 떠나는 건 현실을 직시해주기 위해서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영웅적인 서사로 받아들인 로라에게 비참한 현실을 대면하게 만들 참이다.

하지만 로건도 모르는 현실이 있었다. 로라와 돌연변이 친구들은 코믹북을 통해 세상을 배웠다. 로건을 동경하며 자랐다. 그는 영웅이었다. 그래서 영웅의 서사를 자신들의 서사로 이양했다.

그렇다. 동경할 수 있는 영웅이 있다는 건 필연적인 희망이다. 〈로건〉은 고독과 상실의 시대를 짊어진 채 살아온 영웅이 그저 절뚝거리며 걷다 쓰러져 잊혀지도록 내버려둘 수 없어서 만들어진 것 같은 영화다. 엑스맨으로서, 울버린으로서 누군가를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던 로건을 허망하게 보내지 않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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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로건에게 마지막으로 숭고한 고통을 안긴다. 로라를 비롯한 어린 돌연변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갈아 넣듯 온몸을 던지는 로건의 마지막 사투는 그의 지난 인생을 목도해온 관객 입장에선 실로 숭고하고 장엄한 풍경일 수밖에 없다.

이는 스크린 너머의 영웅이 현실의 영웅을 잉태할 수 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로라와 돌연변이 아이들이 코믹북에 그려진 로건을 통해 자신들의 영웅적인 미래를 꿈꿨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로건〉을 비범한 영웅담으로 여기게끔 만든다.

그러니까 〈로건〉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고전이다. 자비에가 〈셰인〉을 보며 로라에게 말한 것처럼 언젠가 누군가는 그 시대의 새로운 세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다.

"이건 정말 유명한 영화야. 100년은 된 거지."

휴 잭맨의 〈로건〉을 보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성취로 당도한, 히어로물의 고전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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