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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人터뷰] '죽여주는 여자'의 이재용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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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감독의 신작 <죽여주는 여자>는 중의적인 제목이다. 그러니까 <죽여주는 여자>는 감탄사로 쓰이는 '죽여준다'와 동사로 쓰이는 '죽여준다'는 의미로 수식되는 여자의 삶을 그린 영화다. 먹고살기 위해 노인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늙은 여성은 과거 자신과 거래한 전적이 있는 남성들이 갈망하는 죽음을 돕는다. 죽여준다던 그 여자가 정말 죽여주는 여자가 된 건 결국 남루한 노인들의 삶이 방치되고 외면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존재하는 덕분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여러 모로 귀찮고 성가신 일이 되는 사회에서 노인들은 버겁게 현실을 버티거나 버거운 내일을 지운다.

물론 <죽여주는 여자>를 목격한 1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목도한 건 우울하고 괴로운 노년의 초상만은 아닐 것이다. 유쾌한 활기와 따뜻한 정감이 공존하는 영화 속 풍경에는 한국 사회의 여느 구석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표정들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 다양한 생을 통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삶의 군상들도 하나 같이 늙어가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삶은 결국 죽음으로 수렴되는 여정이다. 다만 죽음이 다다를 때까지 살아간다는 것과 죽음을 향해 찾아간다는 것 사이에는 우주만 한 괴리가 있다. 결국 <죽여주는 여자>는 죽음을 통해 삶을 관통하는, 역설적인 영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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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두근두근 내 인생>은 선천성 조로증에 걸린 아이에 관한 영화였는데, 신작인 <죽여주는 여자>는 노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늙다'와 '죽다'라는 동사가 두 작품의 공통분모라 할 수 있겠다.
원래 <두근두근 내 인생>의 연출을 마음먹기 전에 나이 들어가는 여배우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대중에게 늙어가는 삶을 노출하며 산다는 건 배우의 숙명이지만 여배우가 늙어간다는 건 남자 배우가 늙어가는 것과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 작품을 영화화하기 위해 투자자를 구하던 중에 <두근두근 내 인생>의 연출 의뢰를 받았고, 대중적인 영화를 연출한 경력이 차기작을 제작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수락했다. 게다가 나이 들어간다는 것과 죽음이라는, 내 관심사와 연결되는 작품이기도 했고.

그런데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로 여배우에 관한 영화 대신 <죽여주는 여자>를 만들었다.
여배우에 관한 영화로 돌아가려던 차에 박카스 할머니를 다룬, 노인 성매매에 관한 기사를 접했는데 거기에 좀 경도됐다. 사실에 기반한 현실을 다룰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보다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어가는 여배우에 관한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여배우였을까, 늙어간다는 것이었을까?
그 질문에 답을 하려면 더 앞선 시점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웃음) 2007년에 <귀향>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썼는데 실향민 노인이 금강산 관광을 갔다가 자신의 고향인 원산까지 걸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15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생명을 부지한 아내 때문에 딸이 시집을 못 가는 것 같다고 생각한 할아버지가 아내의 생명을 끊고 딸을 시집보낸 뒤 자신도 신변 정리를 하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는 이야기였다. <꽃보다 할배>처럼 남자 노인들이 어울려 다니며 낄낄거리는 모습도 묘사되는데 실제로 이순재 선생님을 캐스팅했다. 늙어가는 부모님을 보고, 나 역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런 주제를 자꾸 건드리는 것 같다.

<귀향>은 영화로 제작하지 못한 건가?
제작 단계 직전에 금강산 관광이 백지화되면서 촬영이 무산됐다. 그런데 지금도 영화가 엎어졌다고 말하진 않는다.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할 수도 있을 테니까.

<죽여주는 여자>의 시나리오를 착안한 건 언제였을까?
<두근두근 내 인생>을 끝낸 뒤 2014년 여름쯤 착안했고, 가을쯤 시놉시스를 구상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는데 반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 해 겨울, 윤여정 씨에게 원래 제안했던 나이 든 여배우 이야기보단 박카스 할머니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윤여정 씨는 생각을 좀 해보더니 자신이 여배우라서인지 사람들이 여배우 얘기를 얼마나 현실감 있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박카스 할머니 이야기는 사회성도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여배우 이야기가 더 대중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오히려 <죽여주는 여자>는 소재만으로도 대중영화라 받아들여지기 힘든 지점들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무겁다'라는 선입견이 생기는 소재이긴 하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죽여주는 여자>를 만들고 싶었다. '더 늦기 전'이란 의미는 시사성 있는 소재를 다룬 만큼 빨리 공론화해야 할 것 같았다는 말이다. 게다가 먼저 구상했던 여배우 이야기는 다른 이가 생각할 만한 시나리오는 아닐 테니까. 어쨌든 실제로 시나리오를 써내려 간 건 2개월 남짓한 시간이었다. 막연하게 이런저런 구상을 하다 작년 3월쯤에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서 후다닥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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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주는 여자>는 노인과 죽음 외에도 다양한 시사적 화두를 건드리는 영화다. 지난 필모그래피를 돌아봤을 때 현실과 밀착한 시사성을 다룬 작품은 <죽여주는 여자>가 처음인 것 같다.
<귀향>이 영화화됐다면 처음은 아니었을 텐데. 남북문제와 실향민 문제 그리고 노인 문제까지 다룬, 시사성 있는 작품이었으니까. 사실 이런 류의 영화를 만들 땐 용기가 필요하다. 투자 여건이나 제작 환경을 고려하면 고심할 수밖에 없다. 종종 농담처럼 누가 돈만 대주면 평생 이런 영화만 찍으면서 살 수도 있다고 하는데 어쨌든 나는 2년에 영화 한 편씩 만드는 일개 감독일 뿐이고, 세월은 제한적이다 보니 쉽진 않은 거 같다.

한국 남자와 필리핀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자녀를 의미하는 코피노와 트랜스젠더, 장애인 그리고 노인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는 대상들이 이태원의 한 집에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존재감이 피력된다.
어떤 면에선 종합 선물세트처럼 나열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늘 영화를 구상하면서 스크랩해오던 소재들이었고 이번 기회에 자연스럽게 녹여보고 싶었다. 이태원은 <귀향>의 주인공 할아버지가 이태원 복덕방을 운영한다는 설정을 두면서 이미 관심을 갖고 있던 동네였다.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서울 안에 자리한 작은 국제도시 같기도 하고 골목마다 정겨운 구석이 있어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영화라는 게 역사적 기록물이 될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미군 부대 주변에서 생업을 이어나간 경력이 있는 소영(윤여정)의 입장에선 이태원에 머문다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다.

저마다 만만찮은 사연이 있을 법한 인물들이지만 소영을 제외한 인물들의 과거에 대해선 어떠한 언급도 되지 않는다.
처음 시나리오상에선 도훈(윤계상)의 개인사를 털어놓는 장면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날라리처럼 지냈는데 친구를 태우고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건데 결국 친구는 즉사했고 자신은 다리를 잃어서 죽을 생각까지 했다가 어느 날 문득 그냥 '살아가야지'라는 마음이 생기면서 역경을 극복했다는 사연이다. 결국 시나리오를 각색하며 정리했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삶이 영화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영화 속의 모든 인물들도 주인공일 순 없다. 티나(안아주)도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연과 시련을 겪었겠나. 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모든 사람의 사연을 알고 살아가는 건 아니니까 그런 얘기를 다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흔히 비참한 인생일 것이라 여겨지는 소외 계층의 일상을 다루고 있지만 아기자기하고 귀엽게 묘사되는 덕분에 영화가 선택한 소재의 무게감이 버겁게 다가오진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걸 달가워하는 타입이 아닌 것 같다. 내 관심사를 공유하고 싶을 뿐이지, 사람들을 계도하고 싶진 않다. 어떤 주의나 의식을 웅변하고 자각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없다. 물론 그들의 삶에 비참한 단면이 있을 거다. 하지만 매일을 지옥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어떻게든 살아갈 구실을 만들어내고, 작은 온기에서도 삶의 동력을 얻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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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처럼 박카스 할머니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고 취재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 같다. 상당히 디테일한 설정들도 묘사되니까.
박카스 할머니를 직접 대면하고 조사하진 않았다. 이미 내 머리 속에 그런 세계가 어느 정도 구축돼 있었고, 윤여정이란 배우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인물이 있었으니까. TV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을 참고하기도 했다. '연애하고 갈래요?'라는 대사도 거기서 알게 됐고. 그런데 이미 캐릭터들은 어느 정도 구체화된 상황이라 특별한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다.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바빠져서 그럴 여유도 없었고.

실제로 만나서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지 않던가?
종로를 오가면서 간접적으로 관찰하긴 했다. 처음에는 구분을 못하겠더라. 그냥 마실 나와서 할아버지들과 노닥거리는 할머니 같기도 하고, 매춘하는 할머니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몇 번 보니까 알겠더라. 어딘가 지친 기색이 있고 얼굴에서 빛이 사라진 느낌이랄까. 그러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도 되는 것인지, 혹시 내게 오해는 없는 건지 검증받고 조언을 들어보고자 박카스 할머니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교수님을 만나서 시나리오를 보여줬는데 직접 취재하고 만들어낸 캐릭터가 아니라고 하니 놀라더라. 그래서 안심했다. 실제로도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보면 다들 명랑하다고 하더라. '집에 남편 재워두고 나왔잖아'란 식으로 자기 얘기도 서슴없이 하고.(웃음) 사실 자기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이야기하는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지 않나. 그럼 사는 게 진짜 지옥이 되는 거니까. 다만 어떻게든 살아갈 구실이 필요한 거다. 그리고 구실을 찾아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극한으로 밀어 넣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상에서 소영이 한 여자를 찾아가 돈을 주는 장면이 두 번 등장하는데 그 전후 과정에 대한 특별한 설명이 없어서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오해를 조금 산 것 같다. 원래 소영이 목돈을 빌렸다가 나눠서 갚는 장면이었는데 포주에게 돈을 바치는 것 같다는 추측까지 나오는 걸 보니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 소위 말하면 일수 개념으로 빌린 돈을 보름에 한 번씩 갚는 장면인데 영화 상에서 그녀의 모습이 너무 여유롭게만 보일 것 같아서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데 의미가 있는 장면이었다. 실제로는 갚아야 할 돈도 있고, 집세도 내야 하고, 그런 삶을 견디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소영은 유일하게 영화상에서 과거사가 밝혀진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인 소영이 동두천에서 미군을 상대할 때 'So young'이라는 영어를 음역한 것이란 사실은 우연히 만난 옛 동료와의 대화에서 드러나는데 그녀의 과거사가 넋두리처럼 들리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물론 다큐멘터리 촬영용 인터뷰를 빌미로 줄줄이 설명하는 장면도 있지만 구구절절 말할 수 없으니 극 사이사이에 잘 배치하는 게 관건이었다. 아마 결말부를 유심히 본 관객이라면 무연고자 납골당 신에서 소영의 본명인 양미숙의 생년월일이 1950년 6월 19일로 적혀 있다는 걸 확인했을 거다. 만약 그렇다면 그녀가 6.25 발발 일주일 전에 태어났다는 걸 알았을 거다. 실제로 중반부에 '3.8 따라지'라 말하기도 하고. 어쨌든 고아원을 거쳐 식모살이, 공순이, 동두천 양공주까지, 결국 한국 현대사에서 겪을 수 있는 비극을 죄다 경험한 한 여자의 일생으로 점철된다. 사회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한국 현대사에서 여성의 위치를 대변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론 전쟁이 한 여자의 인생을 이렇게 짓밟아놓을 수도 있다는 걸 기저에 깔아놓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쟁이란 남자들이 벌일 수 있는 최상위의 폭력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여자들은 희생자가 된다. 사실 우리가 양공주라 부르는 여성들은 엄밀히 말하면 미군 위안부다. 국가적으로 성매매를 금지해놓고 기지촌에서만 허용한다는 건 사실상 국가가 미군에게 성매매 서비스를 제공한 셈이니까. 결과적으론 그녀들을 외화 벌이의 수단으로 여겼고. 그런데 사회적으로는 미군한테 다리 벌린 여자 취급을 당하며 손가락질만 당했다. 결국 그녀들에겐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없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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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염치하거나 무책임한 한국 남자들의 군상을 인지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코피노 문제도 그렇고.
영화에서 코피노 소년 민호의 아빠로 추정되는 의사도 결국 애만 싸질러 놓고 도망친 셈인데 그걸 보고 간호사가 한마디 하지 않나. "한국 남자들은 다 개새끼야." 물론 페미니스트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여성을 다루다 보면 결국 약자로서의 여성성을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다. 현실이 이 모양이니까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남자의 시각으로 씌워놓은 관념들이 워낙 많다. 이를 테면 모성 같은 것? 그래서 자기 죽음 하나 어찌하지 못하는 남자들을 대신해 그들을 죽여주는 소영이 여성성의 화신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여성들이 감내해온 역사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걸 목격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상대적으로 그녀가 꿋꿋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대단해 보이지 않나. 게다가 그녀가 성을 파는 건 살아남기 위해 폐지나 빈 병을 줍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선택한 방식일 뿐이다.

사실 죽음을 사주하는 남자 중 재우(전무송)도 비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고 여자의 여생을 망쳐버린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마치 자신의 평온한 죽음을 위해 여자의 삶을 산 제물처럼 바쳐버린 느낌이랄까.
맞다. 나약하고 비겁한 사람이다. 솔직히 영화적 설정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가 주길 바라는 요량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소영은 첫 번째 노인의 부탁을 들어준 뒤 재우에게 그런 사실을 감추지 않고 고백한다. 그분이 너무 원해서, 차라리 그렇게 사는 것보다 나을 거 같아서 했다고. 그만큼 소영에겐 공감능력이 있는 거다. 그리고 사람을 죽였으니 자신은 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녀의 측은지심이 재우의 결심을 도운 것이라고 해석했다.

<죽여주는 여자>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건 약자가 약자를 돕고, 노인이 노인을 죽인다는 사실이다. 결국 상처를 입어야만 상처를 이해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느낌이랄까.
<죽여주는 여자>를 만들 때 부담이 컸던 건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이 영화가 인용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반대로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쳐서 이를 실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일종의 사회적 발언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 결국 그런 걱정을 다잡게 만든 건 이런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돼선 안 된다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그들을 방치해선 안 되는 거니까.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 사회안전망에 관한 문제들이 공론화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존감을 지키면서 잘 죽는다는 건 무엇일지, 이런 성찰도 공유하고 싶었고.

삶보다 죽음을 갈망하는 남자들의 입장에 타당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을 거 같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죽음을 그리는 게 힘들었다. 어떻게 하면 개연성이 생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내가 어떤 상황일 때 죽고 싶을지 고민해봤다. 첫 번째 남자 같은 경우엔 사는 게 창피하다고 하지 않나. 평소 댄디하게 차려 입고 부족함 없이 돈을 써가며 멋지게 살아왔던 사람이 한순간에 제 몸도 못 가누고 침대에 누워 여생을 보내야 된다면 정말 죽고 싶겠더라. 그리고 치매에 걸린 채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떠돌면서 남에게 폐를 끼칠 거라 생각하니 끔찍했다. 마지막으로 의지할 가족들이 모두 떠나갔을 때 무슨 낙으로 살아갈 것인지 막막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노인 자살을 부추기는 전형적인 유형 세 가지라는 걸 알게 됐다. 정확하게는 거기에 빈곤이 겹쳤을 때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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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세 노인 중 두 명은 실내에서 죽지만 한 명은 산에 올라가 벼랑으로 떠밀려서 죽음을 맞이한다. 목격자가 발생할 수 있는 산에 올라가서 자살을 위장한다는 건 합리적인 선택과는 거리가 먼 발상처럼 보이는데, 굳이 산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소영이 도훈한테 어떻게 죽으면 고통이 덜할지 물어보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떨어져 죽으면 가장 짧게 고통을 느낄 거 같다는 결론에 다다르는데 그 장면을 다 걷어냈다. 어떤 의미에선 산에서 죽는 게 낭만적이라고도 생각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집에서 생을 마감하면 비참할 거 같고. 덕분에 내 영화 특유의 이상한 농담도 넣게 됐는데 이를테면 산으로 올라가면서 "야, 힘들어 죽겠다. 잠깐만 쉬자"라고 하는 대사 같은 것. 죽으려고 올라가는데 힘들어 죽겠다니, 웃기지 않나. 결국 그런 게 사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어쩌면 공간성을 다양하게 고려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런 바도 있다. 방, 산, 호텔, 이렇게 다양한 장소들을 확보하면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주로 도심을 배경으로 둔 영화라 한 번쯤은 확 트인 곳에서 한 템포를 쉬어가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영화적 배경이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는데 촬영시기와 영화 속 풍경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인상이었다.
어쩌다 보니 우연과 필연이 잘 겹쳐졌다. 원래 가을에 찍어야 할 영화라고 생각하긴 했다. 늦여름에서 시작해 가을로 물들어가는 남산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 시기에 맞게 투자가 완료됐고, 그때 빨리 촬영을 끝내야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수 있는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촬영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잘 맞아떨어졌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종로는 실제 박카스 할머니들의 터인데 장충단이나 남산 산책로는 의외의 선택지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곳에서도 그런 성매매가 이뤄지는 걸까?
그렇진 않다. 다만 가끔 남산을 산책하다 보면 거기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한국의 발전을 대변하는 신기루처럼 보였다. 그래서 꼭 그 장소를 넣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근의 장충단 공원으로 무대를 옮긴 거다. 남산의 한적함과 여유로움 속에서 소영이 홀로 쓸쓸히 배회하는 모습도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 풍경 안에서는 유령 같은 존재처럼 보이니까.

영화상에서 경쾌하면서도 쓸쓸한 선율의 연주음악이 몇 차례 들려지는데 장영규 음악감독에게 물어보니 공간성과 오래된 정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더라.
장영규 감독과는 개인적으로 오랜 친분이 있다. <정사>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음악을 함께 작업하기도 했고, 일단 그냥 맡겨도 될 만큼 신뢰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앞선 두 작품과 달리 <죽여주는 여자>에선 명확히 떠오르는 음악이 없었다. 그래서 편집본을 보여주면서 떠오르는 걸 얘기해달라고 하니까 오래된 이탈리아 영화 같은 느낌이 떠올랐다고, 그런데 약간 뽕끼가 있어야겠다고 하더라. 그리고 그가 보낸 샘플 중에서 두 가지 음악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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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면에서 핸드헬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단 한번도 흔들지 않더라.
흔들 수 없는 영화였다. 3D 영화 제작 지원금으로 만든 영화였으니까.

3D 영화 제작 지원금을 받아서 제작했다면 두 대의 카메라를 리그(Rig)로 연결한 3D촬영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단 말인가?
맞다. '카파(KAFA)'에서 마련한 3D 영화발전기금을 지원 받은 세 번째 영화다. 김태용 감독과 류승완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신촌좀비만화>가 첫 지원작이었고, <죽여주는 여자>는 <방 안의 코끼리>에 이은 세 번째 지원작이다.

아무래도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 같은데.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카메라가 한번 이동하는 데에만 20분씩 소모됐다. 카메라가 일반적인 촬영 현장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3배는 크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산에 끌고 올라가야 하는 건데 산에 올라갈 땐 정말 쉽지 않았다. 게다가 좁은 방 안에서 촬영할 땐 카메라가 너무 크다 보니 화각을 확보하기도 어려웠다. 평소 촬영 현장보다 스태프 수도 15% 가까이 늘었고, 촬영 시간도 더 많이 필요했고 3D 영상 컨버팅부터 색보정 작업, CG 작업 등의 후반작업도 더 복잡했다. 난제가 많았다.

트랜스젠더인 티나 역에 진짜 트랜스젠더를 섭외했다.
일단 아마추어 배우를 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자가 그 역할을 맡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디션을 보니 남자배우들은 다들 클리셰 같은 연기를 하더라. 마치 <개그콘서트>에 나오던 황마담처럼 호들갑스럽고 과장된 느낌으로. 그래서 결국 수소문 끝에 티나를 찾았다. 처음으로 연기한다지만 30년 가까이 무대 생활을 많이 한 덕분인지 끼가 상당했고, 그래서 선택했다.

윤여정 씨와는 <여배우들>, <뒷담화:감독이 미쳤어요>에 이어 세 번째 작업이지만 극영화로 만난 건 처음이다.
지난 두 작품에선 항상 윤여정으로 나왔지만 처음으로 극 안에서 역할을 준 작품인데 특별히 다를 건 없었다.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양미숙이란 이름으로 불리지만 윤여정으로 연기해주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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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윤여정 씨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는데, 그만큼 윤여정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영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로 들린다.
사실 어떤 소재를 떠올리고 어느 배우랑 해야겠다고 생각한 뒤 시나리오를 쓴 건 처음이다. 그만큼 내겐 영감을 주는 부분이 많았다. 윤여정 씨가 평소에 냉소적인 농담을 잘하고 나 역시 그런 농담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농담들이 시나리오에 반영됐는데 그 의미를 물어볼 필요 없이 알아서 다 소화해냈다. 이를 테면 "계산 도와드릴게요"라는 종업원의 말에 "계산해줄 것도 아니면서 도와주긴 뭘 도와줘?"라고 혼잣말을 하는 장면처럼 내가 의도한 뉘앙스를 잘 파악하고 소화해버린다.

어떤 의미에선 윤여정이라는 배우를 통해 익히 예상할 수 있는 바가 있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실 윤여정이라는 배우는 모든 역할을 윤여정스럽게 연기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하는 배우도 있지만 윤여정은 항상 윤여정으로서 소화하는 것 같다. 그런데 <죽여주는 여자>를 하면서 힘들어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가고,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그런 처지에 놓인 이들의 세계를 알게 되고 그런 감정에 이입하게 되면서 우울해하고 힘들어했다. 그 당시 윤여정 씨 어머니께서도 좀 편찮으셨던 것도 본인에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고.

구강성교 신 같은 경우는 배우 입장에서는 고역스러운 촬영이었을 것 같다.
원래 그 장면에서 등장하는 벌거벗은 남자는 시나리오상에서 하의만 벗은 상태로 묘사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보니 작위적인 느낌이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남자 배우에게 전신 탈의를 부탁했더니 흔쾌히 응해줬는데 윤여정 씨 입장에선 그런 남자가 눈 앞에 떡 하니 앉아있으니까 당혹스러워했다. 그래서 그 신을 촬영하면서 테이크를 다시 가겠다고 했을 때의 윤여정 씨는 지금까지 봤던 모습 중에 가장 화가 나 보이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 장면에서의 표정을 보면 정말 질색하는 표정이 현실감 있게 와 닿는데 그게 단순히 연기적인 표현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주사를 놓을 때 주사기에 공기를 빼는 디테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테이크를 다시 간 뒤, 주사를 놓은 뒤 서비스를 할 때 살짝 위를 올려다봤으면 좋겠다고 다시 한 테이크를 가겠다고 했다가 지금까지 들었던 윤여정 씨의 음성 가운데 가장 강렬한 소리를 들었다. "왜 이걸 다시 해야 하는데!"하면서 비명을 지르는데 정말 이를 가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잔뜩 독기가 올라 있는 상황이라 정말 실제처럼 느껴지는 연기가 나온 것 같다. 개인적으론 정말 미안했지만 결과적으로 감독으로선 '와, 이거 건졌다'라고 생각했다.(웃음)

그런데 소영이 남자에게 놓는 그 주사의 정체는 대체 뭔가?
주사기로 성기의 정맥에 주사를 놔서 발기하게 만드는, 일종의 발기제 같은 건데 할아버지들이 실제로 맞는 거라더라. 실제로 남자 배우의 성기에 붕대를 감아놓고 주사를 가져다 대는 부분에 십자가를 그려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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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자살을 꿈꾸는 사람은 다 남자다. 반대로 소영은 마지막까지 살아서 여생을 마치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는데 상대적으로 죽음을 갈구하는 남성들에 비해 더 강인해 보이는 인상이다.
실제로 남편이 죽은 여자들보다 부인이 죽은 남자들의 삶이 더 빨리 무너지고 더 일찍 생을 마감한다더라. 아무래도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공감대가 크고 연대의식이 있어서 함께 모여 생활하는데 능하지만 남자들은 자기 부인이 아니면 잘 연대하지도 못하고 상대적으로 약한 존재가 된다. 생리학적으로도 여자들이 더 오래 산다. 평균 수명도 더 길고.

결말부에 등장하는 죽은 소영의 얼굴에선 종교적인 평온함과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그렇게 얘기하는 분이 많더라. 굉장히 성스럽다고. 그녀가 일종의 천사 같고, 성녀 같고, 보살 같다고. 실제로 중국에서 관음보살은 자비의 신이기도 하지만 창녀들의 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조계사에서 소영이 합장할 때 의도한 게 아니지만 그 뒤로 관음상 벽화가 등장한다. 그리고 홍콩영화제에서 <죽여주는 여자>가 상영될 때 중국어로 변환된 제목이 우리말로 <선녀관음>이었다. 그들이 소영은 관음보살 같은 여자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결말부의 교도소 신 이전에 이태원에서 소영이 연행되는 과정으로 영화를 끝냈다 해도 무리가 없는 느낌인데 그랬다면 영화에 대한 감상도 완전히 달라졌을 것 같다.
시나리오 초고에선 교도소 신이 없었다. 이태원에서 연행되면서 영화가 끝나는 거였지. 그런데 너무 쿨해 보이더라. 남루하게 살던 사람의 인생을 너무 쿨하게 다루는 거 같았고,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사족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녀의 유골이 무연고 납골당에 안치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인들과 함께 살아왔지만 원래부터 무연고자였고, 마지막에도 결국 혼자 남게 됐으니까. 그렇게 홀로 밥을 깨작깨작 먹어가며 여생을 살아가다 자연사한 뒤,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죽음만을 남긴 그녀가 태어나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그녀의 죽음을 통해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고 싶었다.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는 개인의 자유와 죽음을 방조한다는 사회적 윤리 사이에서 물음이 남는 셈인데, 어쩌면 답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 물음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오래 사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대가 됐다. 서구에서는 일찌감치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선택할지에 대한 논의도 시작됐다. 장례식 방식을 넘어서 안락사에 대한 논의까지. 결국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죽음도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되는데 우리는 아직도 죽음에 대한 논의를 터부시 한다. 미리 수의 해놓는 것은 물론 영정사진 찍어놓는 것마저 불길한 짓으로 취급하고. 결국 의식 있는 사람들이 미리 자신의 죽음을 대비하면서 후손들의 고민을 덜어줄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물론 어려운 문제다. 죽음 자체는 너무 두려운 일이니까. 사형수들도 사형장으로 가는 길에 신발을 슬쩍 벗는다고 하더라. 신발을 다시 신을 시간을 벌기 위해서, 몇 초라도 더 살아보려고, 그런 게 생인가 보더라.

고인이 된 백남기 씨가 물대포에 맞아서 의식을 잃었다는 뉴스 장면이 등장하고, 경찰 조사를 피해 조계사에 머물던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 씨에 관한 플래카드와 경찰들도 영화상에서 목격된다. 시대가 하 수상하다 보니 심상찮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
일단 조계사에서 촬영이 가능한 날짜는 단 하루였는데 그날 경찰들이 대치하는 상황이었고, 우리도 촬영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영화에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백남기 씨 뉴스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날짜가 2015년 11월경이었고, 그 당시 가장 이슈가 된 뉴스를 찾아보니 그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분위기를 가장 명확하게 대변할 수 있는 사건을 선택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라는 것이 기록이 될 수도 있고, 타임캡슐이 될 수도 있으니까. 다만 그런 상황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몫인데, 어쨌든 이게 2015년 11월 14일에 벌어진 일이었다는 현실감을 주고 싶었다.

혹시 다음 작품은 여배우들에 관한 영화가 될까?
글쎄, 그건 나도 궁금하다.(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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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장성용

<모닝 캄>을 비롯한 다양한 매거진에서 풍경과 인물 사진을 찍어 왔고, 현재는 색다른 콘셉트의 베이비 스튜디오 그린비(http://www.studiogreenbee.com)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_민용준
영화웹진 '무비스트'에서 영화기자로 밥벌이를 시작하며 'beyond'와 'ELLE KOREA' 에디터로 잡지를 만들고 기사를 쓰고 다양한 취재원을 만나 인터뷰를 해왔습니다. 현재에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서 다양한 매체에 문장을 팔며 밥벌이를 이어나가는 한편, 올레 TV <무비스타소셜클럽>의 배우 인터뷰 코너 '스타케치'와 KBS 라디오 월드 <생생코리아>의 '시네마토크'에 출연 중입니다. 주로 영화에 참견하고, 대중문화와 갖은 이슈에 종종 말과 글을 보탭니다. 한량의 삶을 추구하며 끊임 없이 놀고 먹으며 즐길 수 있는 노하우를 탐색해 왔으나 이번 생은 망했다는 결론을 얻고 나름대로 게으르게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