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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人터뷰] '최악의 하루'의 김종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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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시점으로 촬영된 단편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으로 종종 회자되는 김종관 감독의 장편 신작 <최악의 하루>는 <조금만 더 가까이>를 잇는 두 번째 개봉작이지만 본격적인 첫 걸음이라 칭해도 좋을, 절치부심의 세월이 담긴 작품이다. 평소에 걷기를 좋아하고, 차 마시는 걸 좋아하며 대부분 쉽사리 지나쳐 버리는 소소한 풍경의 아름다움 앞에 머무르길 좋아하는 그의 취향과 시선이 <최악의 하루>에 온전히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영화 속 인물들을 그리는 방식에서도 오롯이 느껴진다. 어딘가 결여돼있고 무언가 결핍돼있지만 그 결여와 결핍을 우스꽝스럽게 비웃거나 하찮게 무시하지 않는다. 어차피 모두가 다 완벽할 수 없는 사람들의 필연적인 모자람과 어리석음을 웃음으로 내팽개치지 않고 손을 맞잡고 일으켜 세운다. 그렇게 다시 한번 내일로 나아간다.

지난 6년의 세월 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왔을 김종관 감독에게 <최악의 하루>는 절치부심의 세월을 이겨낸 오늘일 것이다. 가을을 배경에 둔 이 영화가 겨울의 해피엔딩을 이야기한다는 건 그래서 한편으로 의미심장하다. 더욱 추운 계절에 맞이하는 해피엔딩이라니, 감독의 입장에선 마치 결연한 각오를 다지는 결말 같다. 절치부심의 계절을 견디고 맞이할 회심의 계절을 향한 갈망이 느껴진다. 그 계절 사이에서 김종관 감독을 만났다. 물어보고 싶은 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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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가까이> 이후로 6년만의 신작이다. 그 사이에 만들고자 했던 작품들이 없지 않았을 텐데.
머릿속에서 완성된 영화는 아마 네다섯 편 정도 될 거다.(웃음) 오랜만에 진짜 결과물이 나온 셈이지. 물론 영화를 발표하지 못했을 뿐이지, 나름대로 창작활동을 계속해 왔다. 그렇게 팽창한 내적인 창작열을 구체화시킬 기회를 만들어줄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다. 그래야 다음 과정이 생기니까. 그래서 이번엔 그런 성취가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선 <최악의 여자>라는 제목으로 상영됐는데 정식개봉명은 <최악의 하루>로 바뀌었다.
<최악의 여자>라는 제목에 애정이 있었지만 <최악의 하루>도 괜찮았다. 사실 이 영화에는 최악의 여자도 없고, 최악의 하루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은희(한예리)를 괴롭히던 두 남자에게 되레 그녀가 최악의 여자로 몰락하는 것이고, 그렇게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는 여자가 돼버린다는 의미에서 <최악의 여자>라는 제목에 좀 더 엣지가 있지만 마케팅의 측면에서 관객을 유도하기엔 부정적이란 의견이 있었고 그걸 수용했다. 결과적으론 좋은 선택이었다. 이 영화가 관계의 모순을 다루고 있지만 사람들은 즐겁게 봐주길 바랬고 위로와 안도감을 주는 영화이길 바랬는데 그런 면에선 <최악의 하루>라는 제목이 좋게 느껴졌다.

전작인 <조금만 더 가까이>의 프롤로그에서 폴란드 남자와 한국 여자가 우연히 전화통화를 하면서 영어로 대화한다. <최악의 여자>에서 일본 남자와 한국 여자가 우연히 만나 영어로 대화한다는 설정과 유사한 면이 있다.
정말 오랜만에 들으니까 내 영화 같지가 않은데.(웃음) 아무래도 서로 연관이 없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조금만 더 가까이>는 쓸쓸한 이야기를 쓸쓸하게 풀었다면 <최악의 하루>는 경쾌한 리듬 안에서 이야기했기 때문에 전혀 다른 느낌이 됐다.

<최악의 하루>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까지 무려 3개 국어가 구사되는 영화인데 아무래도 외국인과의 우연한 조우라는 점에서 서울이라는 공간성 자체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아무래도 이와세 료가 연기한 료헤이 자체가 이 영화의 특이성을 만드는 장치처럼 보인다.
골목과 도로에선 시간의 속도감이 각각 다르다. 아무래도 골목에는 도시의 분주한 일상성에서 비켜난 듯한 느낌이 있다. 남산의 산책로도 마찬가지고. 결국 이 영화에선 일상적인 공간이 비일상적인 틈으로 벌어지는 순간들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외국인인 료헤이가 바라보는, 이방인의 시선이 필요했다. 동시에 소통의 국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은희는 말이 잘 통하는 한국남자들과는 정작 소통하지 못한다. 하지만 영어로 대화하는 료헤이와는 소통한다. 단순한 단어만 아는 수준이라 대화를 깊게 하지 못함에도 소통이 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게 다가올 거라 생각했다.

료헤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이방인의 시선이 중요했다고 했는데 어쩌면 본인이 타자화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 익숙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기묘한 이야기>를 보면 80년대에 봤던 미국영화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데, 이를 테면 <구니스>나 <빽 투 더 퓨쳐>, <폴터가이스트> 같은, 유년시절에 봤던 영화들. 정말 이상하지 않나? 우리 세대는 80년대 창신동 골목 같은 곳에서 향수를 느껴야 할 거 같은데 그 시절에 본 영화 때문에 가본 적 없는 미국 땅으로부터 향수를 느끼는 거니까. 그리고 외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결국 내 기억과 닮은 것들을 찾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낯선 장소로부터 의외의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된다. 그런 경험을 녹이고 싶었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공간을 본다는 것 자체가 영화에서 공간을 어떤 프레임으로 잡을 것인가,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게 만들 것인가를 대신 설명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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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중에서도 일본인을 특정한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출판사 대표는 한국 아저씨 특유의 악의 없는 무례함으로 료헤이(이와세 료)의 감정에 침범하면서 극적인 긴장감을 발생시킨다. 아무래도 타인에 대한 조심성이 강한 일본인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런 대비가 더욱 도드라져 재미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일본어의 어감을 통해 좋은 무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를 테면 후반부에 한시를 읊는 장면처럼.

이와세 료를 캐스팅한 과정이 궁금하다.
이와세 료가 캐스팅되기 전의 시나리오에서의 료헤이는 좀 더 희극적이었다. 어리바리하게 당하는 상황 자체가 보다 코믹하게 느껴지는 캐릭터였지. 그런데 원래 영화에 관심을 보였던 일본인 배우의 캐스팅이 무산되면서 상황이 꼬였다. 그러다 이와세 료를 만날 기회가 생겼고,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의 연기가 좋았기 때문에 출연 제의를 했는데 다행히도 그가 응해줬다. 덕분에 시나리오도 확장됐다.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부분은 이와세 료가 캐스팅된 후에 추가한 거다. 이와세 료의 어감이 이야기를 중의적으로 읽게 만드는 요소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목소리 자체가 매력적이었고, 극적인 설득력이 있었다. 그의 인상이나 목소리 덕분에 이 영화의 결말도 보다 힘있게 완성된 거 같다.

그런데 이름은 왜 료헤이였을까?
제일 평범한 이름을 원했다. 료헤이가 철수만큼 평범한 이름은 아니지만 일본 소설을 보면 은근히 료헤이란 이름이 많이 나온다. 소설 주인공으로 많이 나오는 료헤이를 소설가 이름으로 하면 좋겠다 싶었지. 평범하면서도 반듯하게 느껴지는 이름이기도 하고.

료헤이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고 무언가를 바라본다. 그런데 은희가 료헤이를 처음 만난 건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것을 료헤이도 같이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은 같은 관점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두 사람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소통하는 관계다. 우연히 만난 사이이기도 하지만 료헤이가 만든 캐릭터와 닮은 사람일 수도 있고, 어쩌면 료헤이가 만들어낸 캐릭터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다만 세 가지 관점 중 어느 하나를 정답이라 쥐어주면 재미가 없을 거 같았고, 세 가지 관점을 동시에 끌고 갈 수 있도록 확장된 은유를 제시하면 더욱 크게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동시간대에 진행되는 료헤이와 은희의 플롯을 각각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서로 엮여 있는 관계이니까.

은희와 두 한국남자와의 관계는 <최악의 하루>에서 관객의 흥미를 잡아 끄는 중심 플롯 역할을 하는데 뻔뻔함과 몰염치를 일상적인 표정으로 승화시킨 두 남성 캐릭터의 활약이 대단하다.
처음에는 간단한 관계만 설정한 뒤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갔다. 20~30대 여자들이 만날 수 있는 남자의 후보군 안에서 은희에게 스트레스를 줄만한 남자를 물색했다. 현오(권율)는 감정적으론 솔직하지만 거짓말도 많이 하고 이기심을 스스럼 없이 드러내는 남자인데 자기 반성도 빠르다. 운철(이희준)은 눈치 없음 그 자체인데다가 자기 방어적인 태도가 강하다. 그런 남자들의 치졸함이 관계의 모순을 극대화시킨다고 생각했다.

은희 역시 거짓말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덫에 빠진다.
은희는 료헤이와의 관계에선 비교적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현오나 운철과의 관계에서는 상당한 모순이 보인다. 나는 그걸 탓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구멍이 있지 않나. 사회적으로 좋은 사람이지만 가족관계 안에선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고. 나 역시 어느 관계에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거 같다. 최대한 나에 대해 속이려고 하지 않지. 그런데 나도 어렸을 땐 관계의 함정에 빠진 경험이 있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관계를 설정하고 이를 희극화하면서 내용 구상을 하고, 캐릭터를 보는 재미를 만든 거다.

얼마 전 한예리 씨를 인터뷰하면서 <최악의 하루>를 촬영할 때 감독님으로부터 "은희가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게 다 상대방에게 늘 진심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거다"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들었다. 그래서 한예리 씨는 은희는 항상 리액션하는 인물이라 생각했다고 하더라.
거짓말을 훌륭하게 하는 사람들은 그게 진심이라 생각하며 할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거짓말을 하는 것이 진심을 다하는 행동이기도 한 거다. 그런데 소설가가 쓴 소설도 그렇다. 온갖 거짓말을 동원하는 행동이지만 자기 경험을 투영한 창작물이 나올 때도 있다. 그렇다고 그게 일기는 아니지. 사실 거짓말에는 자신이 되고 싶었던 모습이나 비전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창작이라는 거짓말의 특징이기도 한데 어찌 보면 은희도 그런 걸 하고 있는 셈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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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의 모순이나 실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을 비호감으로 몰락시키진 않는 것 같다.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모든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이 있다. 물론 미운 부분도 있지만 그런 미움 자체도 애정을 갖고 보게 된다. 사실 사람이 모든 관계에 있어서 구멍이나 흠이 없을 순 없지 않나. 누구에게나 무너지는 타이밍이 생긴다고 보는데 <최악의 하루>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리고 만약 이게 신화적인 스토리라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내면적으로 성장해야 하겠지만 내겐 그런 서사에 대한 욕구가 없기 때문에 캐릭터가 굳이 성장하고 교훈을 얻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얻을 수도 있고, 얻지 못할 수도 있고. 다만 관객들에게 모순된 상황을 보여주는 것뿐이지.

그런 모순을 스스로에게서 발견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럴 때도 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실수가 줄어든다. 동시에 새로운 구멍도 늘어난다. 늙어가며 생기는 욕구와 그 욕구를 채울 수 없다는 불만 사이에 괴리가 생기기 마련인데 그게 너무 크면 사람이 뒤틀릴 수밖에 없다. 결국 사람이 완벽한 균형을 잡을 순 없을 거 같다. <최악의 하루>의 인물들도 그래서 흔들리는 거고.

그 동안 로맨스를 소재로 둔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왔지만 대부분 로맨스를 위한 영화처럼 보이진 않았다. <최악의 하루>도 그렇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건 자기모순의 감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인데 연애라는 게 그런 감정을 보여주는 도구로 쓰기가 좋다. 사람들이 연애하면서 보이는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에서 끌어낼 수 있는 재미는 상당하다.

료헤이는 단편집 <어둠 속으로>의 출간기념회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영화에선 그의 책이 남녀에 관한 다섯 편의 단편집이라고 언급되는데 중후반부에서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을 참고하면 상당히 냉정한 시선을 견지한 작품처럼 느껴진다.
솔직히 료헤이가 어떤 소설을 썼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아마 료헤이도 <최악의 하루>처럼 사람들의 모순에 몰입하게 만드는 글을 썼을 거 같다. 다만 인물에 대한 연민이 없는 거다. 그러니까 그 소설을 읽다가 상처 받는 독자도 생기는 거고. 결국 료헤이가 다음 소설은 해피엔딩일 거라고 말하는 건 진짜 해피엔딩을 만들겠다는 말이기 전에 인물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됐다는 변화의 선언일 수 있겠다.

사실 <최악의 하루>에서 료헤이의 존재를 지우고 은희와 두 남자의 플롯만 살려도 영화는 성립됐을 것 같다. 결국 료헤이라는 인물은 이 영화의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감독 입장에선 이 영화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필수조건이었을 것 같다.
료헤이가 읽는 사람들만 생각하며 글을 쓴다는 것처럼 나 역시 관객의 반응을 고려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선 내가 인물들을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했다. 관객들이 영화 안에서 자신을 느끼고, 자신의 추함을 바라볼 수 있겠지만 그런 감상이 자기 증오로 이어지도록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료헤이가 등장하는 엔딩이 중요했다. 어쩌면 은희에게 해피엔딩이 주어질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녀에겐 흘러가버릴 시간에 불과할 수 있고, 료헤이라는 작가 입장에선 자신을 극복하는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료헤이 자신이 만들어낸 캐릭터처럼 보이는 사람 앞에서 자신이 잔인하게 내몰았던 인물들의 결과에 변화를 주겠다고 이야기한다는 점만으로도 나름의 해피엔딩인 셈이다. 물론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엔딩이지만 관객이 위로나 안도감 같은 여운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료헤이가 자신을 소설가라 소개할 때 은희는 이름이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냐고 묻는다. 종종 처음 만난 사람에게 영화감독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할 일이 생길 텐데 료헤이와 비슷한 난처함을 겪었던 적은 없었을지 궁금하다.
항상 있는 일이다.(웃음) 아무래도 대중적인 성취를 이루지 못한 자들이 주로 겪는 일일 것이고. 아무래도 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만난 무례함이 고단해질 때도 있는데 이런 경험이 유머로 활용하기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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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헤이가 극 초반에 서촌 골목으로 들어갈 때 한 할머니가 료헤이를 보고 자신이 '1922년생 김다복'이라며 '성규' 아니냐고 대뜸 묻는다. 맥락이 없는 장면이라 그 이름과 연도의 의미가 궁금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름인데, 김다복은 돌아가신 할머니 성함이고, (김)성규는 아버지 성함이다. 그러니까 결국 할머니가 우리 아버지 아니냐고 물어보신 건데, 찍고 보니 좀 쓸쓸하게 느껴지더라. 내게는 돌아가신 분이니까. 그래서 아무래도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은유라 말하긴 어렵지만 어떻게 보면 정서를 환기시키는 장치가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료헤이라는 외국인 입장에서 보자면 낯선 장소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할머니가 자꾸 아는 척을 한다는 게 기묘할 거다. 그런 낯섦을 관객도 공감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서촌을 보여주는 방식에선 다양한 앵글을 활용한 반복적인 리듬이 두드러진다면 남산은 명암의 변화를 통해 서사의 흐름이 느껴지는 영역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한정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심플한 이야기라 장면묘사에 보다 신경을 썼는데 서촌과 남산의 대비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서촌에선 단순한 앵글을 반복적인 패턴으로 담아내며 앵글의 리듬감을 살린 재미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서촌은 골목이 비좁다 보니 사람들이 자연스레 줄지어 걷게 되는데 그게 귀엽게 느껴져서 영화로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남산은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을 대비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고, 다양한 감정 변화를 통해 동선이 발생하기 때문에 감정과 움직임을 연결한 패턴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거듭 등장하는 동일한 공간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전작인 <조금만 더 가까이>에서도 남산이 나온다. 각본을 쓴 김지운 감독의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무대도 남산 계단이었고.
내가 남산을 좋아하나 보다.(웃음) <조금만 더 가까이>를 촬영하면서 재미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건 길에 들어서면 퇴로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최악의 하루>에선 길 중간에 갇힌 여자의 위기를 표현해보고자 하는 욕구를 남산에서 풀었다. 게다가 서촌과 대비되는 느낌도 있었고. 촬영하기에 원활한 공간인데다가 계절로 봐도 예쁜 시기였다.

결국 서촌이 리듬감을 담아내기 위해 마련된 장치적 공간이라면 남산은 다양한 감정을 잉태하는 무대인 셈이다. 그리고 료헤이와 은희가 해가 진 남산을 걷는 엔딩신은 이 영화의 현실성으로부터 이탈해 판타지로 떨어져나가는 인상이다.
벤치에 앉아있던 은희가 우연히 료헤이와 재회한 뒤 함께 걸어가는 과정에서 점점 무드가 극대화되고 현실적인 공간이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바뀌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마치 연극 속의 공간처럼, 해가 진 남산 산책로 자체가 거대한 스튜디오처럼 보이길 바랬는데, 촬영 도중에 자연스럽게 안개까지 끼어서 정말 비현실적으로 보이더라. 그리고 은희가 료헤이의 인물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그냥 은희 자체로 보이길 바랬는데 그러면 료헤이도 전지전능한 작가이자 료헤이가 생각하는 허구 속의 인물처럼 보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두 사람이 관객을 바라보며 끝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감상을 남겨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초반 연극신은 <최악의 하루>에서 가장 이질적인 인공성이 느껴지는 신이다. 은희가 배우라는 걸 설명해주는 장치적인 신이기도 하고, '커피에 대한 진한 각성'을 포함한 독백도 전후에 반복되면서 은유적인 느낌을 주긴 하는데 그 신 자체가 전체적인 플롯 안에서 액자처럼 툭 내걸린 인상이기도 하다.
번안극은 너무 생경해서 가끔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그런 생경함을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배우를 보면서 그 모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은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과장된 톤으로 대사를 하면서 아무 것도 없는 잔에 커피를 따르고 마시는 연극 장면 자체가 허구이니까 자연스럽게 더욱 큰 범위의 허구인 영화로 확장돼 나가는 입구 역할을 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은희를 좀 더 설명해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고. 나중에 은희가 연습실에서 나와 담배를 피우면서 기침을 하는데 연습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연기하는 선배를 보고 피우지 않던 담배를 따라 피운 거다. 결국 은희가 지닌 동경과 선망 그리고 그녀의 현재 위치를 표현해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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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장면이 정말 많이 나오는 영화다. 커피도 자주 마시고.
일단 내가 '걷기성애자'다.(웃음) 걸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생각도 하고. <최악의 하루> 시나리오도 걸으면서 생각했고. 아무래도 걷다가 차 마시다가, 걷다가 차 마시다가, 이런 나의 생활 패턴이 영화의 성격으로 드러나는 지점이 있다. 아무래도 나와 많이 닮은 영화일 거다.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촬영했고, 실제 촬영에 들어간 날은 더 짧았을 거 같다. 아무래도 예산이 적은 만큼 촬영일정을 최소화시키는 게 관건이었을 것 같다.
아무래도 그 동안 '없는 영화'를 찍어오면서 촬영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스킬이나 요령들을 익혔던 게 회차를 줄이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애초에 적은 예산으로 찍을 수 있는 영화를 구상했고. 사실 작은 영화를 스트레스 받아가며 찍다 보면 모양새가 이상해지기 쉽다. 영화에 성취가 있다고 해도 서로 의가 상하는 일이 생기면 결국 아름답지 않은 기억이 된다. 그런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컴팩트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이동 범위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동선을 고려했다. 게다가 배우들의 합이 너무 좋았다. 워낙 능수능란한 배우들이라 하루에 많은 분량을 소화해줬다.

"마음이 마음을 알아야죠"라던가, "진실이 어떻게 진심을 이겨요"라는, 운철의 대사는 뻔뻔함을 넘어 지독하게 순수한 느낌이라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대사는 어디서 길어온 건가?
나의 위트?(웃음) 캐릭터가 잡히니까 그렇게 써지더라.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헛소리이지만 어떤 면에선 이 영화의 메인 테마를 설명해주는 대사 같기도 하다. 이를 테면 '진실이 어떻게 진심을 이겨요'라는 건 료헤이의 고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이 영화의 맥락을 유머러스하게 소화한 대사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희준 씨의 연기가 상당히 인상적인데 권율 씨 역시 기존의 출연작에서 보여주지 못한 얼굴이라 배우 자체가 새롭게 보였다.
사석에서 술을 마시다가 웃기고 귀여운 활기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 활기를 영화적으로 잘 이용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매력 있게 잘 소화했다. 권율도 즐거워 보였다. 마치 아이처럼 들떠 보일 정도로.

주연과 조연 그리고 단역까지, 배우들 입장에선 정말 뿌듯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도움을 받은 입장이지만 이 영화가 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 그들의 경력 안에서 자신 있게 언급될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

캐스팅복이 많다고 했던데 이미 촬영이 완료된 차기작 <지나가는 마음들: 더 테이블>을 보면 그런 거 같다. 임수정,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등 캐스팅된 여배우들의 면모가 화려하다. 그런데 이 작품도 서촌에 있는 카페에서 촬영했다던데 이러다 뉴욕의 우디 앨런처럼 서촌의 김종관이 될지도 모르겠다.(웃음)
그 정도로 유명한 감독이 된다면 정말 좋겠다.(웃음)

단행본 <그러나 불을 끄지 말 것>이 2년 전 이맘때쯤 출간됐던 거 같다.
그러니 불을 다시 살려야 할 거 같다.(웃음) 그 책에도 서촌을 배경으로 둔 글이 많은데 어쩌면 그 책이 있었기 때문에 <최악의 하루>가 나온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강조하고 있다.(웃음)

첫 번째 단행본이었던 <사라지고 있습니까>를 출간하자마자 출판사가 문을 닫았다고 들었다. <최악의 하루>에서 료헤이가 직면한 상황과 유사하다.
첫 책을 출판한지 3일만에 없어졌다. 료헤이 입장에선 크게 나쁜 경험은 아니었겠지만 내 입장에선 쓸쓸한 기분이 들더라.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의 고단함도 많이 느끼던 시절이라.

세 번째 단행본 계약을 했다던데.
예정대로라면 아마 올해 말에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골목에 대한 이야기니까 <최악의 하루>와 이어지는 테마라 해도 좋겠다.

제목은 아직 미정인가.
아직. 그런데 언젠가 <최악의 여자>라는 제목을 활용해보고 싶다. 좋지 않나? 최악의 여자.

언젠가 다시 새로운 영화를 공개할 때가 올 텐데, <최악의 하루>를 통해 감독으로서 작품을 보여줄 기회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을 거 같다.
<최악의 하루> 역시 어떤 영화냐고 물어볼 사람이 태반이겠지만 최소한 이런 영화를 좋아하고 먼저 다가오는 관객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는 건 아무래도 보람 있는 일이다. 계속 창작 활동을 해오긴 했지만 내적인 팽창만 있었지, 외적인 확장이 미비했다. 아무래도 이 영화로 돈을 많이 벌긴 어렵겠지만 내 위치가 하나 만들어지고, 대표작이 갱신되면 좋겠다. 게다가 시네마스코프로 찍은 영화라 극장에서 봤을 때 보다 많은 걸 볼 수 있을 거다. 그래서 한 명이라도 더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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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장성용

<모닝 캄>을 비롯한 다양한 매거진에서 풍경과 인물 사진을 찍어 왔고, 현재는 색다른 콘셉트의 베이비 스튜디오 그린비(http://www.studiogreenbee.com)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_민용준
영화웹진 '무비스트'에서 영화기자로 밥벌이를 시작하며 'beyond'와 'ELLE KOREA' 에디터로 잡지를 만들고 기사를 쓰고 다양한 취재원을 만나 인터뷰를 해왔습니다. 현재에는 올레 TV <무비스타소셜클럽>의 배우 인터뷰 코너 '스타케치'와 KBS 라디오 월드 <생생코리아>의 '시네마토크'에 출연 중입니다. 주로 영화에 참견하고, 대중문화와 갖은 이슈에 종종 말과 글을 보탭니다. 한량의 삶을 추구하며 끊임 없이 놀고 먹으며 즐길 수 있는 노하우를 탐색해 왔으나 이번 생은 망했다는 결론을 얻고 나름대로 게으르게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