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post Korea kr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여영 Headshot

반찬은 '스키다시'가 아니다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불고기와 비빔밥이 아니라 '반찬'이 중하다 | 한식 반찬 예찬론

# 2009년 2월 한식 세계화와 관련된 취재 차 당시 W호텔 총주방장 키아란 히키를 만났다. 그와 같이 유명 한식당의 세트메뉴를 맛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한식이 세계화 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최고급 요리를 뜻하는 오뜨 뀌진(haute cuisine)에 대한 한국인들의 오해를 주목했다. "프랑스에서도 오뜨 퀴진은 정통 가정식은 아니다. 보여주고 감상하는 작품에 가깝다. 스타일리시 한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이 왜 한식에 대해서는 그러질 못하는가?"

그는 한식이 과감하게 변화해야만 세계적인 음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식이 가진 치명적 단점에 대해서는 말을 흐렸다. "워낙 노동 집약적인(labor-intensive) 음식이라..." 아마 상다리가 부러져라 내오는 반찬에 손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간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으리라. 그의 말끝에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수많은 반찬이 한식 세계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선입견만 굳힌 채.

# 2011년부터 5년여 일본 오사카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당시 밑반찬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큰 고민거리였다. 일본에 왔으니 일본 식문화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메인 메뉴 외에 반찬이 거의 없었다. 몇 가지 간단한 반찬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도 가격이 매겨져 있다. 리필을 부탁하는 경우도 어김없이 추가 요금이 붙었다. 사실 이 때는 이 빈곤하고 매정한 반찬 문화가 외식업자의 고민을 완벽하게 덜어준 것 같았다. 반찬도 별도의 메뉴로 돈을 받는다. 그럼 반찬 가짓수나 양이 적다는 고객 불만도 없어지고, 반찬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도 벌충할 수 있었다.

오사카 사업을 하는 동안 일본 고객들의 의견을 자주 들었다. 대개 한식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고 한국 문화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오사카 한식 주점이 한국식 반찬 문화를 선보이지 않는 점을 의아해 했다. 풍성하게 차려진 반찬 한 상을, 그것도 별도 요금 없이 내주는 것이야말로 한식의 진짜 강점인데도 말이다.

2016-07-13-1468415605-5057497-KakaoTalk_20160713_221032489.jpg

7년째 한식 전문 외식업을 해오면서 반찬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해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다. 한식의 진짜 경쟁력을 거추장스럽고, 애꿎게 돈만 드는 일이라고 여겨 왔다. 반찬이 가진 진정한 매력은 SNS(사회관계망) 시대, 외국인 관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요즘 한식을 경험한 외국인들이 SNS에 올린 것들을 눈여겨보라. 우리 상상과는 달리, 불고기나 비빔밥이 주가 아니다. 오히려 색과 맛, 그리고 조리법마저 제 각각인 수많은 반찬들이 대부분이다. 반찬으로 그득한 한 상을 찍어 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보면, 그것은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신기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외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우리 음식, 갈비를 대접하러 식당에 들렀다. 갈비가 나오기 전 김치나 콩나물, 상추무침 같은 간단한 고깃집 반찬들이 나왔다. 그는 반찬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먼저 나온 음식을 먹어야 다음 음식이 나오는 서양의 코스 개념으로 받아들인 탓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그 반찬들을 즐겼다. 공짜로 리필을 해준다는 사실에도 흥미를 보였다.

고객들에게 반찬은 아직도 '스키다시'(곁들이 반찬 혹은 안주)다. 많고 맛있으면 좋지만 몇 개 안 되고 맛이 없어도 그만이다. 관심은 주로 밥이나 국물, 고기 같은 주요리에 쏠린다. 반대로 한식 전문 외식업자 입장에서 반찬은 추가 비용일 뿐이다. 찬을 풍성하게 차리려면 이른바 '찬모'라고 불리는 담당 직원을 한 명 더 써야 한다. 전체 식사 원가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야 한다. 대부분의 식당이 반찬과 관련해서는 원가 절감 차원에서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그래서다. 김치는 중국산으로 대체하고, 한 번에 많이 만들어 두고 오래 쓸 수 있는 반찬에만 골몰한다. 고객 상에 오르는 반찬은 대개 손이 안 가는 말라비틀어진 음식이다. 아예 반찬을 없애다시피 하고 한 그릇 주요리에 전력하는 경우도 있다. 이쯤 되면 고객이나 외식업자에게 반찬은 그저 관심 밖이거나 골칫거리일 뿐이다.

인터넷 상에서 반찬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대부분 가격과 관련이 깊다. 반찬 가격도 식사비에 포함되는 만큼 반찬의 질을 높이라는 요구가 있다. 그럼 현재의 음식가로는 반찬까지 신경 쓸 처지가 못 된다는 반론도 있다. 혹자는 아예 반찬이나 반찬 리필에 대해 일본처럼 돈을 지불하게 하자는 주장도 한다.

어떤 입장이든 반찬을 만드는 일은 노동집약적이고, 돈이 드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에 기반한다. 과연 그런가? 외식업체들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아예 손이 안 간다거나 돈이 안 든다는 주장을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은 안 가거나 안 든다. 이유가 있다. 주로 반찬의 절묘한 구성 비율 덕이다. 밥, 국, 찌개, 고기, 국 같은 주요리가 바로 해서 내야 하는 음식이라면 반찬은 다르다. 김이나 감태처럼 미리 준비해둔 부류가 있다. 김치나 젓갈처럼 오래 묵혀 먹는 것도 있다. 전이나 잡채, 무침처럼 따끈하거나 신선한 반찬들만, 미리 준비해둔 재료를 굽고 버무려서 내도록 하면 된다. 6가지 반찬을 늘 준비해야 하는 내 식당들에서는 이 세 부류의 비율을 대개 2:2:2 정도로 한다. 주방에서 '프렙'(preparation의 약칭)이라고 하는 준비 과정만 철저하다면 손도, 비용도 많이 덜 수 있다. 대신 반찬의 맛과 다양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2016-07-13-1468415647-8220771-KakaoTalk_20160713_221033283.jpg

옛 명문가에서 그 많은 가짓수의 반찬을 상에 올리게 한 것은 종부나 아낙네들을 고생시킬 목적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온가족이 다양한 음식을 두고 한 데 둘러앉아 맛있게 먹기 위함이었다. 가족들 모두 건강을 유지하게 하고 윗사람을 공양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반찬의 구성 비율에는 다양한 음식과 가치를 수월하게 한 데 담아내겠다는 조상의 지혜가 들어있다.

외국인이 먼저 주목한 반찬의 매력은 대표 슬로우푸드인 한식을 한식답게 소화할 때 한결 빛난다.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먹을 때 반찬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주요리가 나오기 전 반찬이 먼저 상에 깔리고, 반주라도 한 잔 곁들인다고 생각해보자. 허기가 가시기도 전에 그 넉넉한 상차림에 마음이 풀린다. 그 다양한 반찬의 색과 조리법에 방문한 집이나 식당에 대한 평가부터 하려던 옹색한 마음은 온 데 간 데 없어진다. 이 순간에는 세상 거의 모든 종류의 어뮤즈나 애피타이저를 경험한 외국 미식가들 가운데도 감탄하지 않는 이가 거의 없다. 천천히 허기가 가실 무렵에는 반찬의 다양한 맛에 매료된다. 거기에는 새콤하고, 달콤하고, 맵고, 짭짤하고, 시원하고, 고소한 세상 거의 모든 맛이 담겨 있다.

사실 반찬만 충실하면 밥과 국물, 고기 같은 주요리는 좀 적어도 된다. 양으로나 영양학적으로나 마찬가지다. 숱한 반찬에 더해 밥과 국물, 고기로 배를 가득 채울 필요는 없다. 그렇게 되면 반찬을 두고 하는 외식업자의 고민도 어느 정도 덜 수 있다. 반찬에 더 신경을 써라. 가짓수만이 아니라 맛과 비율을 더 따져라. 대신 염도는 기존 반찬상보다 줄여라. 주요리의 양도 조금 줄여라. 그럼 외식 소비자들은 한식의 더 다양한 맛과 영양을 즐길 수 있다. 세계인이 감탄하는 것은 이미 한국색을 잃기 시작한 갈비와 비빔밥 같은 특정 메뉴가 아니다.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의 반찬 문화에 경탄해마지 않는다. 한식의 세계화뿐만 아니라 대중화를 위해서라도, 소비자나 외식업자 모두에게 관심 밖이거나 골칫거리인 반찬의 복권이 시급하다.


글 | 이여영 (주)월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