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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대화의 조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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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Chung Sung-Jun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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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왜 문재인 정부의 대화 제안에 응하지 않는가? 대화가 아니라 억지력을 더 강화할 생각인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억지력을 추가해서 얻을 이익은 적고, 협상의 시점을 놓쳐 잃을 손해는 크다. 한반도 주변 정세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가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현재의 국면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북한이 남북관계보다 북-미 관계를 중시한다면, 그것 또한 오판이다. 과거 남북관계 역사를 보면, 북한의 선미후남 전략은 성공한 적이 없고, 성공하기도 어렵다. 남북관계를 풀어야 북-미 관계도 풀린다. 앞으로 겪어보면 알겠지만 미국의 트럼프 정부와 협상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위는 전략이 없고 아래는 권한이 없는 트럼프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없는 북-미 관계는 불가능하다.

그동안 남북대화 중단으로 불신의 세월이 길었다. 북한의 입장에서 탐색의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신뢰를 대화의 조건으로 내세우면 안 된다. '상대를 믿을 수 없으니, 먼저 믿음을 줘야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은 6·15와 10·4 합의를 폐기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논리다.

남북한의 상호 신뢰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대화해서 합의하고 실천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 상호 불신이 깊기 때문에 쉬운 것부터 해결해 나가자는 입장이다. 당분간 과거 대결시대의 잔재와 새로운 협력시대의 요소가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대화의 결과로 협력의 기반을 넓혀야 한다. 대화하지 않고, 어떻게 불신에서 신뢰로 전환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믿을 수 없는데, 어떻게 대화하냐'는 대결시대의 주장이 여전히 판친다. 믿을 수 없으니, 대화하는 것이다. 서로 믿을 수 있으면, 왜 협상을 하겠는가? 최소한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대화에 나서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주는 신호는 조율되고 일관되고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물밑에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단 하나다. 어떻게 북핵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한·미·일 공조를 강화해서, 인권문제를 앞세워서, 개성공단을 닫아서, 다시 말해 제재를 강화하고 군사적 위력을 과시해서 해결할 수 있는가? 이미 다 해봤고, 모두 실패했다. 지난 9년의 세월은 실패를 검증할 충분한 시간이다. 과거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또다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시행착오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 대결시대, 무능한 정부는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라 우리 편'이라고 주장하며 기다리자고 했다. '전략적 인내'의 결과는 어떤가? 제재와 압박에도 북한의 경제 성장률은 높아졌고, 북핵 능력은 고도화되었다. 북한은 굴복하지도, 붕괴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세월을 허비하고, 우리는 결국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 재앙적 현실에 직면했다. 문재인 정부는 달라져야 한다. 문제해결을 위해 좀 더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고, 외교적 공간을 넓히고, 좀 더 과감해져야 한다.

상황이 엄중하기에 남북 모두 소모적인 탐색을 벌일 때가 아니다. 신뢰를 대화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대화를 보상으로 생각하던 과거 대결시대와 결별할 때가 왔다. 대화가 문제해결의 지름길이다. 대화를 하면서, 얼마든지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신뢰는 대화의 조건이 아니라, 대화로 얻을 결과다. 북한이 6·15 정신과 10·4 합의 이행을 위한 남북대화에 나서기를 바란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