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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를 심고 가꾸고 수확하며 저항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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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나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과 같다. 올리브 나무는 이들이 살아가는 땅에서 가장 잘 자라며, 이들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시간 동안 그 땅을 지켜왔다. 농부가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앞뜰이나 빈 땅에 올리브 나무를 심는다. 수 천 년 된 나무부터 심은 지 얼마 안 된 어린 나무까지, 이스라엘에 군사 점령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영토에 병합된 베두인 마을까지, 이 땅은 진짜 올리브의 땅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옥을 부수고 사람들을 내쫓듯, 올리브 나무를 뿌리 뽑고 불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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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오랜만에 참여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쿠프리 깟둠'의 금요 집회가 끝난 후 마을을 서성이던 참에 사미르 씨와 마주쳤다. 이스라엘군과 시위대가 대치하는 곳이자, 군이 봉쇄한 도로와 불법 유대인 정착촌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사미르 씨의 집에 그렇게 우연히 들어가게 됐다. 통역자가 없어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상황에서도 사미르 씨는 자신들의 피해를 전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길가에는 각종 탄피와 집안으로 직접 발사된 최루탄이 쌓여 있었고, 이스라엘군이 수시로 집을 엄호막 삼아 들락거리며 창을 통해 시위대에 발포하는 탓에 창문도 없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그야말로 엉망인 상태였다. 불법 유대인 정착민들이 올리브 밭과 벌통을 불태우고 가축을 살해한 얘기를 전하는 사미르 씨는 절망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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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올 리브 올리브>의 현지 촬영 막바지에 접어들었던 김태일, 주로미 감독님께 연락을 드리자 감독님들이 바로 찾아왔다. 올해 팔레스타인에 간다고 하자 감독님들은 영화 등장인물들에게 선물 전달을 부탁했다. 선물 전달, 집회 참여 차 다시 찾은 '쿠프리 깟둠'은 다른 동네가 모두 집회를 쉬는 라마단 기간에도 집회를 이어나갈 뿐 아니라, 매주 금요 집회에 더해 2년 전부턴 토요일에도 집회를 시작했다. 더위에도, 단식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회차를 늘린 걸 보고 주민들의 강인함에 탄복했지만, 그럼에도 상황은 더욱 악화돼 있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이스라엘 활동가에 따르면 현재 마을에 파견된 이스라엘군은 특수부대에 준하는 단위로, 전쟁 연습 삼아 집회를 다양한 방법으로 진압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집회가 끝난 뒤에도 3~4시간씩 잔류하며 자기네끼리 군사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 훈련 장소에 사미르 씨네 집이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할 수 없이 다음 집회에, 집회 시작 전에 방문해 선물을 전달했다. 잊지 않고 찾아준 데 감사를 표하는 가족 분들께 도저히 어떻게 지내시냐고,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냐고 물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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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리브 올리브>는 팔레스타인에서도 상영하고 있다. 물론 극장에 걸린 건 아니고, 우리가 등장인물들의 마을에 찾아가서 상영하는 방식이다. 발라타 난민촌에서의 상영을 논의하러 갔다가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인 무함마드 할아버지 댁을 찾았다. 벽에 걸린 '순교자' 아들들의 사진이며, 단정한 차림새의 모습까지 예전에 뵀을 때랑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사실 무함마드 할아버지는 국제 활동가들이 발라타 난민촌에 왔을 때 주로 찾아뵙는 분이다. 난민으로서의 삶과 귀환의 꿈에 대해 격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걸 듣고 있으면 이스라엘 건국으로 난민이 된 이들이 그저 지나간 역사가 아님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한두 번의 만남을 통해 뵌 할아버지는 난민이라는 공식적인 지위를 통해 인식될 뿐, 구체적인 인간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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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리브 올리브>의 카메라가 할아버지 가족의 삶 속으로 들어간 덕에 그의 다정함, 아픔, 그리고 가족들의 삶을 비로소 엿볼 수 있었다. 이건 비단, 국제 활동가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영화에 올리브 심기 활동가로 등장하며, 나블루스의 영화 상영을 코디해 주기도 한 와엘 씨는 팔레스타인인들 역시 이들의 삶을 모른다고 얘기했다. 순교자가 생겼을 때, 찾아가서 위로하고 얘기를 들어주고, 난민 문제에 대한 국제 활동가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할아버지 댁을 무수히 방문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역시 공식적인 얼굴이 아닌 생활 속의 얼굴을, 그들의 고통을 모른다. "우리조차도 우리의 고통을 처음 본 것과 같다"라는 와엘 씨의 영화 평은, 익숙하다 생각했던 주변의 고통을 새롭게 마주하고, 이를 통해 내 고통까지 새롭게 보이게 하는 이 영화의 힘을 느끼게 한다.

영화의 또 다른 주요 등장인물인 '툴카렘'의 핫산 씨와는 아직 만나지는 못한 상태다. 영화 상영 얘기를 꺼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재판도 없이 오랜 행정구금 끝에 풀려난 핫산 씨의 첫째 아들이 어떤 구체적인 혐의도 없이 또 다시 이스라엘군에 붙잡혀간 것이다. 하지만 툴카렘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자 난민촌과 툴카렘 시내 두 군데서 두 번 상영하고 싶다는 답변이 왔고, 현재 상영 일정을 잡고 있다. 영화가 한국의 많은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여러 상을 받았고, 또 극장 개봉을 통해 더 많은 한국인들이 팔레스타인을,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되었음을 전할 때 기뻐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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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은 위즈단 씨와 그 가족을 만나러 '세바스티아'에 간 첫날은 무더웠다. 지열로 어른거리며 멀리서 다가오던 가족들의 인영(人影)에는 새로운 사람 하나가 더 있었다. 새로운 아기 '이슬람'이었다. 게다가 위즈단 씨는 넷째까지 임신했다! 땡볕 속을 뛰고, 춤추고, 구르는 아흐마드와 제나, 둘을 쫓아다니는 이슬람까지 개구쟁이 삼 남매를 때론 어르고 엄하게 혼내며 정신이 없는 속에서도 위즈단 씨 남편 니달 씨는 점령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맺었던 '오슬로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 점령 하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들어섰고, 서안지구를 A, B, C로 나뉘어 60% 이상인 C 구역을 이스라엘군이 통치하고, 22%가량의 B 구역을 이스라엘군과 자치 정부가 함께 관할하고 있다. '세바스티아'는 대부분 B에 해당하고, 유적지들은 C에 해당하는데, 유대인 방문객이 올 때마다 군인들이 마을 주민들의 유적지 인근 출입을 금지하고 이동을 통제한다. 예측할 수 없는 군인들의 통제에 발목이 잡히는 생활에 대해, 니달 씨는 분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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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방문 때, 위즈단 씨는 여성회관에서 기존 사업을 평가하고 새 사업을 기획하는 회의 중이라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고고학적 가치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건물을 칭찬하자 결혼 전에는 회관에 살다시피 했다며, 리노베이션을 마을 사람들 스스로 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노트북으로 잠깐 영화를 본 아이들은 아기였을 때의 자기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며 잘 웃지 않던 이슬람도 지금보다 어린 누나와 형이 나오는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 웃었다. 영화 속의 아이들과 그 영화를 보는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위즈단 씨는 아이들을 꼭 끌어안고 뽀뽀를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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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블루스의 활동가 와엘 씨는 영화 촬영 몇 개월 후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스라엘 군사 점령에 저항하는 그의 비폭력 투쟁조차 이스라엘에겐 범죄다. 그와 동료들이 수감된 동안 나블루스에서는 조직적인 저항 운동이 부쩍 줄어들었다. 더구나 올해로 69년을 맞은 이스라엘의 식민주의로 팔레스타인 경제는 처참히 망가졌고, 많은 사람들은 저항이나 투쟁보다 '먹고사니즘'을 최우선시하게 됐다. 그럼에도 와엘 씨와 같이 활동하고자 찾아오는 청소년들을 보며 희망을 본다는 내 말에, 와엘 씨는 그런 희망도 없다면 어떻게 계속해 나갈 수 있겠느냐며 쓰게 웃었다.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활동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와엘 씨는 다양한 활동을 기획 중이다. 그중에 올리브 수확 캠페인이 있다. 영화에서 보듯 이스라엘군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수확 허가증을 내준다. 수확 기간 동안 유대인 정착민들의 폭력은 군 당국의 허가증과 무관함은 물론이다. 올리브 수확을 돕고, 세상의 눈을 두려워하는 정착민들의 폭력 행위를 방지 혹은 줄게 할 수 있도록 세계의 자원 활동가를 모집하는 올리브 수확 캠페인은 그간 팔레스타인 각지에서 진행돼 왔다. 와엘 씨는 좀 더 대규모로 자원 활동가를 모집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땅의 팔레스타인인들의 존재 자체가 곧 저항이고, 그 저변에 올리브를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생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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