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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서 페미니스트가 될 거야!"라는 꼬마 소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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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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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서 페미니스트가 될 거야!" 라는 꼬마 소녀는 없다. "아우, 우리 장한 딸 커서 대단한 페미니스트가 되겠어!!" 하는 부모도 없다. 새로운 여자친구를 자랑하면서 "응, 내 새 여친은 정말 대단한 페미니스트야! 부럽지?" 라는 남자도 없다. 페미니스트라 하면 못생기고, 남자와 연애를 못하고, 목소리 크고 악으로만 가득 찬, 인생 실패자를 떠올린다. 한국 얘기 아니고 외국 얘기다. Hairy lesbian, hag 이런 말도 자주 붙는데, 외모 관리 포기했거나 나이 들어서 남자들이 싫어하니까 악을 쓰는 늙은 마녀, 혹은 레즈비언이다, 라는 모욕이다.

그런데 왜 페미니스트가 될까.

보통 여자는 페미니스트가 되기 전에 많은 과정을 거쳐간다. 처음 인생 시작에서는 부모가, 주위 어른들이 말하는 '좋은 여자상'에 맞춰간다. 부모님을 챙기는 착한 아이. 동생을 챙기는 착한 아이. 말 참 예쁘고 곱게 하고 인사도 잘 하는 여자 아이. 요즘 세상에 참 되바라지고 못돼 처먹은 애들이 많은데 너는 착하구나. 얌전하구나. 시집 잘 가겠구나. 사랑받겠구나 덕담을 듣는다.


아버지는, 남편에게 개처럼 얻어맞고 얼굴이 알아볼 수 없게 부어터진 딸을 데리고 오면서 가치관이 바뀐다.


어떤 이는 사춘기부터 불편함을 느낀다. 2차 성징이 나타나긴 했으나 아직 성이나 남녀 간 권력 구도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세상은 가슴이 발달했다는 이유로, 엉덩이가 발달하고 여성성을 보인다는 이유로 온갖 추파를 던지기 시작한다. 아직 이해하지 못해서 답하지 않아도, 이미 자신이 남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 알면서 갖고 노는 요물 취급도 받는다. 얼마 전만 해도 사랑스럽고 귀엽고 보호받아야 할 어린 아이에서, 자신의 성적 매력을 가지고 남자를 갖고 노는 요물로 바뀌면서 여자는 생각이 많아진다. 왜 나는 갑자기 성적인 대상이 되었는가. 왜 나는 섹시해야 하면서 동시에 순진한 처녀여야 하는가.

어떤 이는 부모가 돼서야 불공평함에 항거한다. 곱게 기른 딸을 시집 보냈더니 자꾸 결혼생활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아서, 결혼 생활 다 힘들다, 참고 살아라,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조언을 하던 아버지는, 남편에게 개처럼 얻어맞고 얼굴이 알아볼 수 없게 부어터진 딸을 데리고 오면서 가치관이 바뀐다. 이혼한 여자를 경시하는 사회에서, 자신도 전에는 이혼한 여자는 막장 인생이라 욕했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귀한 딸을 지키려 하게 된다. 이혼이 가능한 제도에 감사하게 된다.


성희롱을 고발한 여직원은 조용히 직장을 그만두지만 가해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계속 다니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개인의 노력, 혼자의 '잘남'으로 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어떤 이는 직장인이 돼서야 차별을 느낀다. 공부 잘 한다고 대접받았고, 대학교에서도 알파걸로 어디에서도 무시받지 않다가 취업하고 나니 성희롱이 난무하고 여자라 의견 무시당하고 여직원이라 커피 타오라는 이도 있고 회식에서는 술을 따라야 한다. 어떤 아이디어를 냈는지 어떤 업무를 맡았는지보다는 어떤 옷을 입었는지 가슴이 큰지 다리가 섹시한지로 평가 당하고 처음으로 느낀다. 아, 내가 잘나면, 나만 잘 하면 이럴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차별이라 빽빽거리는 여자는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변하는구나. 언제부터인가 그녀 역시 결혼할지 모르는 여직원보다 듬직하다는 남직원이 먼저 승진하고, 성희롱을 고발한 여직원은 조용히 직장을 그만두지만 가해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계속 다니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개인의 노력, 혼자의 '잘남'으로 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사회의 부조리와 차별에 대해서 시끄럽게 난리 치는 이들 덕분에, 그저 개인적인 재수없음으로 이해했던 여자들은, 참을 것이 아니라 싸워서 바꿀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개인의 경험으로 페미니즘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차별의 벽에 부딪힌 이들은 각자 분노를 풀 어떤 행동을 한다. 어떤 이는 그저 하소연을 하고, 어떤 이는 가해자와 싸운다. 말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고발하고, 고소하고, 욕하고, 덤비고, 뒷담을 한다. 그래서 누구는 해결을 보고 누구는 사과를 받고 또 다른 누구는 주위의 압박에 포기한다. 많은 수는 세상이 이런가 보다 하고 놓아버린다. 그렇지만 차별이 계속되는 이상은 피해자는 멈추지 않고 생산된다. 그리고 새로운 피해자들은 또 불평하고, 욕하고, 싸우고, 고발하고, 글을 쓰고, 방송에서 말한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모이거나, 어떤 일이 계기가 되면 그들은 이제 거리로 나선다. 시위하고 부수고 큰 소리로 떠든다. 그러면 사회가 아주 조금 몇 밀리미터씩 바뀌고, 이렇게 사회의 부조리와 차별에 대해서 시끄럽게 난리 치는 이들 덕분에, 그저 개인적인 재수없음으로 이해했던 여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다른 이도 겪었으며, 이것을 그저 참을 것이 아니라 싸워서 바꿀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구심점에는 그 하나하나의 분함과 서러움이 수많은 점으로 더해지고 분노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중력이 생긴다. 이제는 부조리함을 인지하지 못했던 이들도 빨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저 '못생긴 년들의 히스테리'로 치부되다가, 이제는 이름이 생긴다. 페미니즘.


그 사람이 페미니즘은 반대하지만 임신한 여자가 해고당하는 게 부당하다는 데 동의한다면 감사다.


제대로 된 페미니스트라는 건 어차피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을 상대로만 싸운다. 성적 대상화와 싸우고, 여자라고 차별 발언하고 성희롱하는 상사를 상대로 싸운다. 그러나 그런 해프닝이 하나하나 모여서, 거시적으로 보면 '여성에 대한 차별을 상대로 싸우며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페미니즘 운동이 된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여성 차별을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페미니즘 반대한다 메갈 반대한다 여자들 시끄럽다 여혐 없다 해도 그냥 그런가 한다. 그 사람이 페미니즘은 반대하지만 임신한 여자가 해고당하는 게 부당하다는 데 동의한다면 감사다.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차별을 싸우는 게 더 중요하고, 그걸 상대로 같이 싸운다면 당사자야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페미니즘 전우이니까.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