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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길고 주관적인 진로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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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요즘에 대기업에 신입 취업이 어려운가, 왜 기술직인가, 무조건 기술직으로 가야 하나, IT 분야를 왜 택했는가, 원하는 분야로 가는 방법이 무엇인가 등등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입니다. 엄청 깁니다. 겁나게 깁니다.


1. 과거 대규모 신입채용이 가능했던 이유

직장은 수요와 공급이죠. 그러나 2010년 전까지의 구조에서는 아직 직장들이 표준화/범용화(standardized/ commoditized)가 되지 않은 곳이 많아서, 어떤 직종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직장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한 기술직이나, 그 외 몇 가지 직종 말고는 (변호사/의사/세무사/용접공/미용사 등등) 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다른 곳으로 옮기기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경리'는 그냥 보통 사무직보다 훨씬 더 일이 확실하죠.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쉽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연봉이 높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무직 대리"는 무슨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같은 업종에 비슷한 자리가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옮기면 그 회사 일을 새로 다시 배워야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명문대 나온 대졸들을 대거 신입채용하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어차피 우리 회사에서 시킬 일을 벌써 할 줄 아는 사람은 없다고 가정할 때, 똑똑할 가능성 높은 대입 신입을 고용하면 비용이 훨씬 더 절감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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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런데 요즘에 왜 채용이 확 줄어들고, 인문계 채용은 거의 전멸인가?

과거에 비해 직종/직급이 훨씬 더 구분되고 정리돼, 어느 회사나 비슷비슷해졌기 때문입니다. 회계 시스템이 비슷해지면 회사 A에서 일하던 사람이 회사 B로 옮기기 쉽겠죠. 인사과 시스템이 비슷해지면 인사과 인력들도 움직이기 쉬워집니다. 이럴 경우, 신입을 채용해서 교육시키는 것보다, 다른 회사에서 일하던 경력직을 데리고 오면 회사 입장에서는 시간, 비용, 위험부담이 엄청나게 절약됩니다. 신입을 채용하면 교육시키는 시간, 사수가 뺏기는 시간, 그리고 교육시키고 나서 이직하면 손해 보는 돈이 아주 많지만 경력직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냥 필요할 때 돈 조금 더 주더라도 데리고 와서 일 시키면 백배로 편합니다. 예전에는 문과 출신들이 많았던 인사과/회계/마케팅/기획 그 외 사무직에도 해당됩니다.

"똑똑한 대졸 신입 공급"이 수요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이건 사실 우리 모두가 이득을 보면서도 우리 자신에게는 해당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한 부분입니다. 예전에는 동네 양장점에서만 옷을 살 수 있다가, 교통이 발달하면서 읍내 장터에 나갈 수 있게 되고, 서울에도 나갈 수 있게 되고, 동대문 시장에 갈 수 있고, 이제는 온라인으로 전세계에서 옷을 살 수가 있게 되지요. 그러면서 동네 양장점은 망할지 몰라도 소비자는 훨씬 더 많은 종류의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이건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스카이 갈 성적이었다면 요즘에는 인서울 정도 한다고 하죠. 전에는 지방에 있는 학생들은 꼭 서울행을 주장하지 않았을지 모르나 취업이 힘들어지면서 서울행을 강행하고, 경쟁은 더 치열해집니다. 어학연수를 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때에는 그게 메리트였을지 모르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학연수를 했을 때에는 안 한 사람들에게만 페널티가 돌아가고 한 사람들에게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지요. 회사 입장에서는 전국에서 공부 열심히 한 학생들이, 알아서 어학연수도 하고 영어 공부도 하고 취업 준비도 한 사람들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선택폭이 늘어났죠.

그러니 직종 표준화로 인한 "똑똑한 대졸 신입"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경력직 선호로 인해 수요가 또 한 번 줄어듭니다. 그에 비해 대졸자들은 엄청나게 늘어났고 해외 유학했던 사람들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전에는 "똑똑할 가능성이 높은 좋은 대학 졸업"으로 좋은 직장 입사 티켓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것이 훨씬 더 어려워졌습니다.


3. 그렇다면 왜 기술직은 상대적으로 취업이 쉬울까?

기술직은 기술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가 조금 더 쉽습니다. 그리고 오래 경력을 쌓은 경력인이 그리 많지 않고, 간단히 가르쳐서 되지 않는 부분이 많죠. 인사과 시스템 소프트웨어 다루는 것은, 솔직히 몇 달 몇 주 하면 배웁니다. 그 회사 특성을 배우고 좋은 판단력으로 일을 처리하는 부분, 노하우는 간단히 가르칠 수 없지만, 잡다한 일 시키는 건 아무 경험 없는 신입 고용해도 사수가 있으면 됩니다. 공대/엔지니어링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 수학/화학/문제해결/코딩/물리/ 그 외 공대 쪽 공부는 고용해서 몇 달 만에 가르칠 수 있는 양이 아닙니다. 의대/약대와 법대도 그렇죠. 똑똑해 보이는 애들 뽑아서 트레이닝 시키는 것은 벌써 고등학교 졸업하고 했어야 합니다. 졸업할 때에는 이미 4-6년의 훈련이 끝난 상태죠. 인문계 학생들은 "회사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겠다"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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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회과학 + 경영을 통한 컨설팅을 하고 싶다면?

말이 길어졌는데요, 물어보신 부분으로 다시 돌아가서, 사회과학+경영을 통한 기업 컨설팅을 하시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아는 예를 들겠습니다. 친환경 컨설팅을 예로 들어봅시다. 어떤 사람들을 고용할까요? 최고 명문대 나온 대졸 신입을 쓸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본 경우는 거의가 이공계 졸업 → 엔지니어 등으로 그 분야에서 일하기 → 법대나 MBA 대학원 → 환경 컨설턴트로 이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최고 대학 인문계열 졸업한 사람은 "똑똑할 것이다"라는 기대밖에 없으나, 실제로 그 분야에서 일했던 사람은 가르쳐야 할 것도 훨씬 적거든요. 어차피 일 시키려고 고용하는 건데, 확실히 일 할 줄 아는 사람이, "똑똑하니까 빨리 배울 거 같다"라는 기대밖에 없는 사람보다는 낫지요.

아니면 경영 컨설팅.

한국에서 40대 50대 퇴직하시는 분들 많지요. 한국만 그런 거 아닙니다. 외국에도 진로 바꾸는 분들 많습니다. 그들은 또 일도 일찍 시작합니다. 20대에 대기업 들어가서 한참 일하다가 MBA를 한다든지 아니면 다른 석사를 했다고 합시다. 30대 후반에 실제 업계에서 경영 관련 경험 10년+ 있고 인맥 있고 일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사람과, 30대 초반에 관련 업계 일 해보지 않았고 인맥 경험 없는 사람과, 고용하는 입장에서는 곧바로 일 시킬 수 있고 인맥 있는 사람 선호할 수 있겠죠(안 그런 곳도 있습니다. Accenture 같은 곳에서는 젊은 컨설팅 애들 구해서 빡세게 부려먹는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쪽은 정말 경쟁이 ㅎㄷㄷ) 또 예를 들자면 의사였다가 변호사가 되어 의료 사고 전문 변호사가 된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변호사 자격증만 따고 "의료 사고 쪽에 관심이 있는" 명문대 출신 신입보다 낫겠죠.


5. 꿈을 가지면 이룰 수 있다?

요즘 진로 상담 받을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도 좋은 말씀만 해드리고 싶습니다. "꿈을 가지면 이룰 수 있다!!" 이런 자기계발서 같은 말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제 나이가 있기 때문에 제 주위에는 그런 식으로 성공한 사람 많습니다. 노력하면 뭐든지 됩니다!! 뜻하는 곳에 길이 생깁니다!! 한국 사람들이 최고의 인재들입니다!!! 뭐 이런 식으로 마음 훈훈해지는, 페북에 공유하기 좋은 그런 글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20대들에게 "나는 그렇게 성공했다 너도 노력해라"란 식으로 말하는 건 주제파악 상황파악 못하는 꼰대짓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전세계적으로 고용시장과 사회 분위기가 완전히 변하고 있다고 믿고요, 이전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변할지는 내다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나름대로 살아남겠다고 머리 써서 이래저래 버텨왔는데, 제 직종 가지고 철밥통이겠습니까 물으신다면, 전 10년 정도만 안전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좋은 대학 이공계 학사를 졸업하는 20대 초반이라면 앞으로 10-20년은 그럭저럭 안전하다고 보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이공계 학사를 해야 한다고는 조언 못하겠습니다. 제 자신이 문과 적성으로 이공계에서 버틴다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역사가 있어서, 죽인다고 해도 못한다는 마음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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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 경험에 바탕한 주관적이고 현실적인 조언

"기업 컨설팅"이라고 생각하시는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기술/특화 지식"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어떤 기업 컨설팅을 하시고 싶으십니까? 인사관리? 그렇다면 인사관리를 요즘 어떻게 하는지 연구하시고 어떻게 하면 그쪽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시는 쪽이 맞다고 봅니다. 탄력적인 인사관리를 위한, 해외 인력 공급 전문 에이전시를 한다면 낮은 가격으로 인력 공급이 가능한 나라들과 이민 관련 법규를 잘 알아야겠지요. 어문계열족에 경험을 쌓으셨다면 소프트웨어 로컬라이제이션 전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한 특수 지식 및 경험 쌓기가 먼저입니다. 좋은 대학교에 가서 석사를 해서 컨설팅으로 가겠다는 것은 성공확률이 훨씬 낮다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가고 싶은 분야의 경력직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쪽이 성공률이 더 높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경력직 포장은 어렵습니다.

질문 중 IT 쪽이 전망이 좋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가 있었는데, 전 어릴 때부터 주의력 결핍으로 인해 손해도 많이 봤지만, 이득을 본 점은 딴 생각이 많고 하라는 것을 하기보다는 잡다하게 넓고 얇게 파는 스타일이었다는 점입니다. 내 적성은 아니지만, 이 쪽은 꼭 알아둬야겠다고 느꼈고, 부모님이 이민 나와서 이런 저런 장사하시는 걸 옆에서 도우면서 "돈 벌려면 대학교 가서 공부하고 어쩌고 보다, 돈을 벌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먹고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그때 알았고요. 그때가 90년대 말이니까 한참 닷컴 붐이었죠. 역사 좋아해서 많이 읽었는데, 어떤 분야든지 처음에 붐이 있고, 사람들이 몰려서 투자하다가 왕창 망하고 나서 사람들이 슬슬 피하더라도, 실제적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기술이라면 천천히 퍼져나간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전화기가 그랬고, 기차가 그랬죠. 컴퓨터 상용화도 그랬고요.) 닷컴 버블 붕괴 후에, 이제야 제대로 IT 시스템으로 인한 사회 변화가 일어날 거라 생각했습니다. (십대 주제에 조숙하죠). 주위 이민 사회를 보면서, 학벌이나 "내가 이런 사람이야" 등등보다는, "실제로 니가 뭘 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고요. 그래서 저는 무조건 기술 중심으로 팠습니다.

저야 성격적으로 시키는 대로 차근차근 밟아가지 못하는 애라서 그렇지만, 다른 이들 중에는 "확실한 성공 방법" 레시피를 찾아서 따라가는 쪽을 선호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 공부 열심 → 명문대 → 취업 이런 공식처럼 말이죠. 그리고 이들에게는 "알아서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다는 거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조언은 잘 안 먹히더라고요. 제 방식이거든요. 저는 "그러니까 해결하려는 문제가 뭐야"부터 시작합니다. 기업 컨설팅? 그렇다면 어떤 분야? 거기서 필요로 하는 건 뭐야? 이걸 하면 가능성이 얼마나 올라가? 저걸 하면 가능성이 얼마나 올라가?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심심할 때마다 계속 찾아보면서 감을 쌓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좋은 대학 석사를 끝내서 컨설팅"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석사부터 준비합니다. 그 준비는 낯익거든요. GRE 준비 등등은 확실히 트랙이 정해져 있거든요. 석사 끝낼 때까지는 다른 걱정 안 해도 되거든요. 그렇지만 주의력 결핍인 저는 GRE 공부할 시간에, 컨설팅 회사 찾습니다. 입사요강 찾고, 인터뷰 스타일 봅니다. 아무래도 난 이거 아니다 싶으면 아예 석사 신청도 안 합니다. 딴 거 찾습니다. (이래서 손해 본 것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조언은 "내가 만약 기업 컨설팅 쪽으로 튼다면..."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제 성향에 따른 리서치 방법이 들어갔습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저는 익숙하고 쉽지만, 질문하신 분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해결 방법의 장점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게 풀고자 하는 문제를 적으시고, 그 파라미터를 정하셔야 합니다. "좋은 직장에 취업"이라고 할 때, 좋은 직장은 연봉 얼마 이상, 정규직, 외국계 기업 등등으로 말이죠.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말까는 우선 배제하시고, 정확하게 내가 뭘 원하는지 적으셔야 합니다. '사회 과학과 연계된 컨설팅'이라고 하셨죠. 이런 글 보면 잔소리 할 사람들 많습니다. 네가 정확하게 뭘 원하는지도 모르잖아!! 버럭!! 이렇게 말이죠. 그렇지만 뭐 그쪽으로 일 안 해봤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많이 알아보고 사람 만나보고 하면서 감 잡는 거죠. 막연하게 스무살 학생이 '저는 구글에서 일하고 싶은데요 꼭 프로그래밍 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 했다가 대박으로 구박당하는 것도 봤습니다만, 저는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원하는 것은 '구글, 혹은 그 비슷한 회사에서 일하되 비 이공계 전공으로 일하는 것'이 풀고자 하는 과제죠. 그렇다면 구글의 여러가지 직종을 알아보고, 그에 필요한 요건을 보고, 내가 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타진해보고, 그렇게 리서치 하다가 거기 말고 다른 회사도 알아보고, UI 디자인은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으면 거기엔 뭐가 필요한가 보고, UI 디자인 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겠네요.

컨설팅이라고 하셨습니다. 컨설팅 회사 찾아보세요. 어떤 식의 기업 컨설팅이 있나 보시고, 그 중 관심 있고 할 수 있겠다 싶으신 분야 적으시고, 그 중에 최대로 쉽게 (...) 공략할 수 있는 부분 보시고, 원했던 연봉이 좀 높다 싶으면 약간 조정하시고, 석사가 꼭 필요한지 보시고, 이왕이면 일하면서, 경력 쌓으면서 준비할 수 있는지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PS

저 진로상담 별로 안 좋아합니다 ㅠ.ㅠ 뭔가 나도 할 수 있다!! 이런 가슴벅참으로 터지는 글 쓰고 싶은데 그러면 제가 강연 다니지 여기서 이러고 있겠습니까 (...) 그리고 저에게 상담하시는 분들 보면 보통은 다 저 20대 때보다 훨씬 더 스펙 좋으시고 준비도 많이 하신 분들인데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오오오오..란 질문이 솟아납니다. 제가 엘리트길, 정도만 밟고 간 사람도 아니고요.
어쨌든. 무지막지하게 긴 글 끝.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