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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징병제는 과연 '평등'을 가져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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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활동가 바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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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병역거부 운동 초기였던 2000년대 초반, 사무실에서 여성 활동가가 전화를 받으면 거의 틀림없이 나오는 반응이었다. "어디 군대도 안 다녀온 여자가," 라는 말은 그로부터 15년도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징병제, 군인권, 군사주의, 무기거래, 방산비리 등 군대나 국방과 관련된 주제에 여성이 목소리를 내는 순간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그런 반응들이 유난히 지긋지긋한 순간이면 '차라리 여성 징병제면 내가 병역거부 하고 이 소리 안듣고 말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물론 한국에서 병역거부는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건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군필 남성과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발언권과 시민권을 얻고 싶다는 욕망의 발로일 거다.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여성에게도 병역을 통한 국방의무를 부과하자는 주장이 청와대 온라인 청원게시판에 올라왔다. 지난 14일 종료될 때까지 보름 여의 기간 동안 123,204명의 추천을 받았고, 1만여 개가 훌쩍 넘는 청원들 중에서 베스트청원 2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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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 코너에 등록된 '여성 징병제' 주장 청원은123,204명의 참여 인원을 기록하며 9월 14일 종료되었다.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여성 징병으로 실현하는 "남녀평등"?!?

해당 청원은 주장의 근거로 '저출산으로 인한 병역 자원의 부족,' '군 가산점 등 군필 남성에 대한 보상 혜택이 부족한 상태에서 "독박 국방의무"로 인해 발생하는 남녀 불평등' 문제를 들고 있다. 주장의 내용이나 근거의 논리성 및 합리성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짚어주신 친절한 글들이 이미 여러 개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해당 청원 중심이 아닌 '여성 징병제'와 '성평등'을 중심으로 생각을 간략히 정리해보려 한다.

사실 여성의 군대 복무는 1980년대 전미여성기구(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NOW)를 비롯한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앞세웠던 주장이기도 하다. 여성의 시민권과 사회적 발언권 획득을 위한 전략을 고민한 결과이자, 더 나아가 여성의 군대 참여를 통해 군대와 사회의 남성 중심적 가부장성 및 위계가 희석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주장이었다. 한국에서도2000년대 초반 비슷한 맥락으로 여성 징병제나 여성의 군대 참여가 일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논의되기도 했다. 여성의 군대 참여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의 맥락은 다르지만 결론적으로는 여성이 군대를 감으로써 (남성이 "독박 국방의무"에서 벗어나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시민권과 발언권을 얻든) "남녀평등"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여성이 군대를 가면 "남녀평등"이 이루어질까? 다시 말하면, 여성이 군대를 다녀 온다고 해서 군필 남성들의 그것과 같은 시민권과 발언권이 여성에게도 생길까? 혹은 군대를 가는 남성들의 21개월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져 '성평등'에 도달하게 될까?

"명예남성"과 "군대의 꽃"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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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내에서 여성군인들은 많은 경우 '명예남성'과 '군대의 꽃'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만 한다. 군인권센터에서 여군 인권 담당 간사로 일하고 있는 방혜린 활동가는 원래 해군 대위였으나 군 내부의 성차별적 문화와 반인권적 위계에 한계를 느끼고 제대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는 군 시절의 자신을 남성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성적 시각에 길든 명예남성"임과 동시에 "필요할 때에는 꽃처럼 피어있"기를 강요받았던 존재로 기억한다. 청렴하고 강직한 군인의 이미지 때문에 군대를 선택하고 노력 끝에 입대한 한 여성 군인은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가 전체 구보 훈련을 할 때 '여자보다 뒤쳐질거냐'며 남성 군인들을 자극하고 사기를 높이는 데 이용되는 대상 이상이 되지 못함을 경험하고 좌절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2017년 한국 최초의 여성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된 피우진씨가 대위 시절 '술자리에 여성군인을 보내라'는 군 사령관의 명령을 받고 고민 끝에 전투복을 입고 가도록 조치한 일로 '미운털'이 박혀 보직 해임을 당했던 일은 유명하다. 혹시 징병 등의 수단을 통해 여성 군인의 수가 많아지면 이러한 현상이 약화될까?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여성 징병 국가인 이스라엘에서 여성군인은 주로 "전통적으로 여성화" 되었다고 여겨지는 비서, 교관, 간호사, 행정직 등에 배치되고 "남성 군인들에게 사기를 높이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남자 못지 않은' 군인이기를 요구받는 동시에 여전히 '여성'으로서의 성적 대상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 군인들에게 성차별과 성폭력은 일상이다. 지난 5월에는 남성 상관에게 성폭행 당한 여성 해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발생했고, 9월 초에는 남성 해군 장교 두 명이 부하 여성 군인을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7년만에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경우 여성 군인들에 대한 성범죄 문제는 이스라엘 징병제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수십 년째 끊이지 않고 있는데, 가장 최근인 2016년 조사에서는 여섯 명 중 한 명 꼴로 성희롱 및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2006년 영국 국방부는 여성 군인 일곱 명 중 한 명이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고 50퍼센트가 군대 내 성희롱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남성 군인은 대부분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겉으로 드러난 수치만으로도 군대 내 여성 군인에 대한 성폭력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지만, 그와 함께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신고조차 이루어지지 못하는 수면 아래의 피해들이다. 군인권센터의 방혜린 활동가는 해군 시절 아래 계급의 남성 부사관에게 성희롱과 성폭행을 당했지만 피해 여성 군인에게 오히려 '조심하라'고 교육을 시키는 군대라는 공간에서는 신고가 의미가 없었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해군 여성 군인이 남성 상관 두 명에게 당한 성폭행 피해를 고소하는데 7년이나 걸린 이유는 성폭행을 당한 후 피해 사실을 처음 신고한 지휘관에게 오히려 또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이다. 군대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데 지속적으로 실패해왔다. 미국 보훈부(Department of Veteran Affairs, VA) 연구에 따르면 절대 다수의 미국 여성 군인들이 복무 중 강간(30%), 성폭행(71%), 성희롱(90%) 등의 성폭력을 당하지만 사건의 90퍼센트 정도는 신고되지도 못하고 있다.

이처럼 가부장적 남성 중심의 군대 문화와 제도 속에서 여성 군인은 그 견고한 벽에 균열을 내는 존재가 되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바람직한 군인상'으로 여겨지는 남성성을 획득하고자 노력하는 개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요되는 '여성'의 성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되기 쉽다. 그것이 군대가 남성중심적 권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여성'을 '용인'하는 수준이다. 군대 밖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현실의 장벽은 너무나 견고해서, 여성이 군대를 감으로써 여성이 군필남성과 같은 시민권을 얻거나 군대가 조금 덜 남성 중심적인 공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에 가깝다.

기계적 평등이 아닌 모두를 위한 실질적 평등을

그렇다고 해도 계속 남자만 '독박(?)' 쓰는건 억울하다고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최근 몇몇 북유럽 국가들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성징병제 논의를 얼핏 보면, 남성이 징집 대상이라면 여성 역시 징집이 되는 것이 '평등'을 위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한국에서 '선진국'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하는 노르웨이가 2016년부터, 네덜란드와 스웨덴이 2018년부터 징집 대상에 여성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 결과를 인용하기 위해서는 한국과는 매우 다른 사회문화경제적 배경과 도입 맥락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징병 대상에 여성을 포함시키는 결정은 전 세계적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어가는 흐름과 아주 무관하다고 보기 힘들고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군사주의의 확장 가능성이 확대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는 아니라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해야 할 지점은, 언급된 세 북유럽 국가에서 여성 징병이 결정된 배경에 실질적인 성평등 실현이라는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남성만 징병되는 것이 남성에 대한 차별이기 때문에 여성도 징병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징병제도가 여성을 배제시킴으로써 성차별의 기제로 작동하기 때문에 군대를 포함한 사회의 전 영역에서 성별에 관계없이 평등한 권리와 의무,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징병 대상을 전국민으로 확대한다는 논리다. 여성이 군대를 가는 것이 남성과의 '동등한 대우'로 여겨지는 이러한 논리가 가능한 것은 군대 이외의 사회 영역 전반에서의 성별격차가 실제로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에서 매년 발표하는 성 격차 지수(Gender Gap Index, GGI)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144개국 중 노르웨이는 세 번째, 스웨덴은 네 번째, 네덜란드는 열여섯 번째로 성 격차가 없는, 즉 성평등에 가까운 국가이다. 참고로 한국은 116위로 조사대상국 중 성 격차가 가장 큰 하위 20퍼센트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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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성평등 지수 국가별 순위. 자료: The Global Gender Gap Report 2016.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는 모두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보장되는 국가로, 각각 1922년, 1902년, 1922년부터 다양한 이유로 병역의무를 거부할 권리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맥락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여성의 군대 참여가 실질적 '성평등'을 위한 조치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모두에게 덜 폭력적이고 덜 차별적이며 덜 군사주의적이고 더 민주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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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교육, 건강, 정치 등 사회의 거의 전 영역에서 엄청난 성 격차로 성평등 수준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에서, 성폭력을 당해도 신고조차 쉽지 않은 한국에서, 여성을 군대에 보냄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성평등이란 없다. 이 사회에서 남성만이 징집 대상이 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는 '남녀 불평등'이 아니라 21개월을 '잃어버린' 남성들의 박탈감, 혹은 강요 당한 희생에 대한 분노다. 문제 해결의 출발은 21개월의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환경적 조건을 마련하는 것에 있다. 잊을만 하면 한 번씩 튀어나오기를 거의 20년 째 반복하고 있는 군가산점제와 같은 망령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케케묵은 헌재 판결을 들먹일 것도 없이 군가산점제는 공직에 뜻을 둔 극소수의 군필남성에게만 이득이 될 뿐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공직으로 나가지 않을 대부분의 군필남성과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등 징병제도에서의 약자들)에게 차별적인 전시적 보상제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를, 우리를 억압하는 거대한 구조에 도전하는 것보다 내 옆의 개별 존재, 특히 나보다 약하다고 여겨지는 존재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 훨씬 쉽지만, 그런 인식과 태도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질적 사회 병폐로 고착시킬 뿐이다. 그보다 징집 절차의 투명성 및 공정성을 확보하여 특권 계층의 병역비리를 근절하고, 방위산업 비리 및 부패를 엄단하여 국방예산 집행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재고하는 것이 실질적 문제 해결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동시에 군대를 조금 더 인권 친화적인 공간, 상식이 통하는 공간, 폭력적이지 않은 공간으로 만들어서 군인들의 생활의 질과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훨씬 타당하고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내가 당한 만큼 너도 당하는' 인권의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모두에게 덜 폭력적이고, 덜 차별적이며, 덜 군사주의적이고, 더 민주적인 인권의 상향평준화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엄한 데 힘 좀 그만 빼고 정말 고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말 싸워야 할 상대가 누구인지 이제는 명확해 질 때도 되지 않았나.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