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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의 피해자는 왜 국가의 편을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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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합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이 있고 현충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6월에는 유난히 애국심, 국가주의 등을 강조하는 일이 많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은 지나친 애국심과 국가주의는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평화를 위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금 다른 방식과 시선으로 국가와 전쟁, 전쟁을 몸소 겪은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는 글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글 | 최현숙( 구술생애사 〈할배의 탄생〉 저자)

원고청탁서의 가제 그대로를 글 제목으로 한다. 가제를 처음 들었을 때의 당혹감 때문이다. 조금 풀어쓴 글의 의제는 "왜 전쟁에 참여한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이 국가를 옹호하나?"였다. 원고를 청탁한 측의 생각이나 마음을 몰라서도 아니고, 그들이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저 호명에 어리둥절해하다, 곧이어 기막혀 한숨 쉬고 분노할, 어떤 (전부는 아니니) 참전용사 노인들의 표정이 떠올라서다. 아니, 노인들의 표정보다, 지난 박근혜 탄핵정국 속 태극기와 촛불 사이, 그 거리의 '암담함' 때문이다. 하여 글의 제목도 내용도 거기에서 시작한다. 1950년에 20세로 참전한, 1930년생 올해 87세의 한 노인을 떠올리며, 김영철이라는 이름도 붙여보자.

"이게 나라냐?"라는 피켓은 촛불과 태극기 양쪽 모두 나왔다. '나라'의 의미가 서로 간에 천양지차라는 이야기다. 김영철 노인에게 나라는 어떤 것일까? 자아 정체성과 콤플렉스가 형성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 청년기에 '김영철의 나라'는 아예 없거나(일제시대), 남들 덕에 찾았지만 위태롭고 혼란스러웠다가(해방정국의 좌우 갈등), 동족상잔의 6.25까지 터졌다. 참전을 피할 수 없던 그는 전쟁에서 요행히 살아남았고, 그의 나라는 결국 반쪽으로 갈라졌다. 와중에 뒤흔들리고 찢겨진 것은 나라만이 아니었다. 김영철들 개개인과 친족과 동네의 생명과 관계와 재산과 미래가 온통 뒤흔들렸다. 남한 정부가 그의 나라로 정해졌지만, 분단 이후 정권과 사회와 김영철은 계속 혼란스러웠다. 그 혼란을 제압한 군사독재정권은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선동 악용하며 국민들을 '다스렸'고, 그 '다스림'에 거역하는 사람들은 밀리고 제거되거나 숨어야 했다.

좌우갈등의 혼돈 시절에 국민들은 각자의 계층과 입장과 나이와 직업과 지역에 따라 다양한 경험(피해와 가해, 혹은 그 뒤엉킴)과 기억과 해석을 겪었다. 하지만 이후 독재정권은 국민들의 기억과 해석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국가(제도 교육, 언론과 미디어, 공공 행사 등)에 의해 선별되고 강요/강제되고 왜곡된 기억은, 개인 고유의 다양하고 이질적인 기억과 해석을 억압하고 왜곡시키고 삭제했다. 해방 공간의 집단 기억은 편향적으로 왜곡/정리되었고, 공산주의에 대한 미움과 분노만 발언이 가능했고 지지되었다. 국가가 허용한 기억만 국가가 허용한 해석으로 확성(擴聲)되었다. 김영철은 (살기 위해) 의심 없이 복창했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믿어 버렸으며, 증명하기 위해 떠벌렸다. 집안 건사를 위해 자식들을 단속했지만, 자식들이 커가면서 결국 싸움이 되거나 자식들이 먼저 나서 '그 얘기'는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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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과 꼰대 사이, 가난한 남성성의 시원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 표지, 저자 최현숙 님은 노인들 생애사를 기록하며 그들의 생애사적 맥락을 만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참전을 피한 노인들의 생애구술을 듣다보면, 맥락상 가해자가 국군이나 미군이던 서사가 결국에는 '빨갱이 새끼들' 깔때기로 빠져버리거나, 태평양전쟁과 6.25에 대한 기억이 뒤섞여 있고, 4.19와 5.16이 구분 없이 뒤섞여 있는 등, 기억과 해석이 뒤엉킨 경우가 많다. 기억력이나 못 배움의 탓도 있지만, 고유의 기억과 강제된 기억이 뒤엉킨 것으로도 해석된다.

국가가 허용한 집단 기억과 전체주의 속에서, 극우 반공주의는 집단 정체성과 콤플렉스가 되어 개인과 공동체의 내면에 깊게 뿌리박혔다. 위태로워서 더 뭉치고 떠받들어야 하는 국가 혹은 '대통령 각하'는 지난 태극기 광장에서는 '마마'로까지 퇴행했다. 극우 반공주의의 핑계이자 명분인 분단은 여전히 한반도의 원죄이며, 분단을 악용해왔던 남북한 정권은 샴쌍둥이다.

자고로 극우는 강력한 지도자를 열망하고, 순종하는 국민은 강한 지도자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다양한 목소리가 거리와 광장에 넘칠 때마다, 많은 노인들 입에서는 "우리나라는 독재자가 나와야 한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이는 전쟁 이후의 혼돈을 정리한 박정희와, 그 시절 자신의 고난과 근면과 보람과 자긍심을 항변하는 말이다. 그들은 그때가 찬란한 시절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사회주의 정권 소비에트가 세워지고, 확장/강화되며, 썩어 붕괴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살아낸 후 소련 해체 이후를 사는 "소보크"(소비에트 시절의 발상, 사고방식, 행동 등을 하는 사람들을 비하하여 부르는 속어,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약칭)들과도 샴쌍둥이다. 소보크들은 젊은 세대들의 상업주의와 속도와 효율을 바라보며 스탈린을 그리워하고 있고, 그 나라 젊은이들도 그 나라 김영철들을 비웃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과 정권교체로 이어진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은 김영철에겐 정치와 경제의 몰락기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시작되어 2008년 금융위기로 끝난 "그들의 잃어버린 10년"은, '좌파 정권이 경제도 망가뜨린' 경험이 되었다. 그 즈음 노인이 된 김영철은, 가정과 사회에서 퇴출당하기 시작했다. 이어진 신자유주의 각자도생과 아이티(IT)와 디지털의 속도와 효율성 속에서, 노인들의 부적응과 소외와 불안은 가속화되었다. 소위 '고령사회'와 허술한 사회 안전망으로, 노인 세대는 이제 가장 큰 '문제 집단'으로 취급되고 있다. '죽지 않아서 문제다'로 요약되는 소위 '노인문제'는 김영철이 가는 곳마다 왈가왈부되고 있다. 장수(長壽)는 김영철에게도 국가에게도 자식에게도 재앙이 되었다. 그 와중에 준댔다 안 준댔다 줬다가 뺐다가 한 '20만 원(기초노령연금)'에 대해 김영철은 '박근혜 덕'으로 감사해했다. 가난했던 젊은 시절 그들을 먹고 살게 해 준 박정희와, 다 늙은 지금 자식도 못 주는 20만 원을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넣어주던 박근혜는, 그들이 사랑하는 '조국'이며, 그들이 지킨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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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미FTA 비준 촉구 시민대회에 참석한 '애국시민'들. 그들의 논리에 동의할 순 없어도, 최현숙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그들과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출처: 한겨레21

전쟁의 역사(歷史, 役事)는 김영철에게 옛날이야기도 남의 이야기도 아니며, 통계도 담론도 아니다. 동네와 땅과 사람관계 속에서 겪고 당하고 끼어들고 도망치면서, 죽고 죽이며 통곡하고 망가진, 김영철의 삶이다. 그 결과 남한 국가가 수호되었다. 이용당했든, 자발적이든, 끌려갔든, 목숨 걸고 싸우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요행히 김영철은 살아남았다. 그의 입에 붙은 "전쟁을 안 겪어 본 놈들은 모른다."는 말은, 듣기 싫지만 지당한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김영철들에게서 나왔다. 어떤 에미 애비도, 어떤 자식도, 서로를 선택할 수 없다.

김영철의 논리에 동의할 수는 없어도, 그의 생애사적 맥락과 심정이 이해는 되어야 만남을 시작할 수 있다. 이해조차 못 하겠다는 것은 소아적 자기중심 탓이다. 만남의 시작은 호명이다. 김영철에게 '국가폭력의 피해자'라는 호명은 무례하다. 전쟁의 권력관계를 모르고 역사적 통찰도 갖지 못한, 무지하고 불쌍한 노인 취급 역시 무례하다. 그들과 만나고자 한다면, 그들이 원하는 이름으로 불러야한다. 그들은 애국시민이다. '애국시민'은 그들의 생애와 고난과 보람을 담은 호명이다.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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