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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프라이드〉 약자와 약자가 서로의 자긍심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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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욜 (인권재단사람,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무지개 깃발의 자리

1997년 초로 기억한다. 당시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기 위한 민주노총의 대투쟁이 여의도공원에서 있었는데 나도 학생 운동하는 선배들을 따라 그곳에 갔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튀는 깃발이 하나 있었다. 무지개 색이었다. 구분하기도 어려운 투쟁 깃발들 사이에서 화려함을 뽐내고 있던 그 깃발은 아무리 세어도 색이 6가지였다. '깃발 만들다 남색을 빼먹었구나' 생각하며 선배들에게 저 사람들 누구냐고 물어보았는데 동성애자들이란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성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무지개 깃발 아래 모인 사람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말 보고 싶었다. 외딴섬처럼 공원 구석에 있던 무지개를 자석 끌리듯 찾아갔다. 혹시나 나에게 아는 척이라도 할까봐 거리를 두고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는데 깃발 아래 모인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집회는 참여한 것 같은데 집회대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서 '동성애자들은 사람들과 잘 못 어울리는 구나' 생각했다.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을 받아줄 것 같지 않은 집회 분위기, 분명히 여의도 공원에 함께 있는데 다른 공기를 마시고 있는 것 같은 어색함은 1997년 무지개를 처음 만난 나에게 짙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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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 집회에 참여한 성소수자들의 무지개 깃발. 우리는 어디에나 늘 있었지만, 어디서도 늘 우리의 자리를 확인해야 했다. 사진출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페이스북

또 하나의 기억은 2003년 9월 27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이라크전쟁 발발을 규탄하는 국제반전공동행동이다. 2천 명 가까이 모인 이 자리에 아홉 번째 발언자로 연단에 올라섰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반전운동에 꾸준히 참여했고 여러 번 자유 발언을 했었다. 하지만 집회 주최측에 발언자로 초대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발언 내용은 잊은 지 오래지만, 이 집회를 준비하기 위해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향린교회에 모여 회의 할 때 분위기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발언자를 결정하고 행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는데, 발언 횟수도 얼마 없는데 동성애자 발언을 꼭 넣어야 하느냐라는 의견부터 동성애자 발언을 뒤로 빼자는 말까지, 회의 내내 가시방석같은 자리에 앉아있던 느낌이었다. 뻔뻔하지 못했던 내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이런 경험은 성소수자들이 껴도 되는 자리인지 아닌지를 늘 확인하게 만든다. 집회에 가서도 앞자리에 앉을지 주변부에 머물지 망설여진다. 성소수자들이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함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집회에 참석하면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깃발 띄우면 사람들이 더 싫어하는 거 아냐" 하는 말을 나눈 적도 꽤나 있었다.

연대, 우리가 서로의 일부임을 확인하는 환대의 과정

연대는 나에게 늘 어려웠다. 단순히 깃발을 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깃발 아래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존재가 도움이 되는 건지, 환영을 받고 있는지, 누군가 수군거리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게 된다. 지금이야 성소수자들이 다양한 사회운동에 중요한 일원으로서 참여하고 있고, 때로 연대를 만들어가는 동력이 되기도 하며, 차별금지법 제정과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등이 사회 운동의 핵심의제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처음엔 성소수자로서 누군가의 인권을 지지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음을 고백해 본다. 그래서 〈런던프라이드〉는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영화였다.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이 광부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모금을 하고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두 집단이 만나 가까워져 가는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광부파업에 연대했던 영국 성소수자 운동의 경험을 한국에서도 재연해보고 싶다는 영감을 주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영화 〈런던프라이드〉는 광부파업에 연대했던 성소수자들의 다양한 활동과 성소수자들을 만나는 광부노동자들의 변화과정을 담고 있다. 성소수자들이 광부와 연대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공권력에 탄압받는 게 익숙했던 성소수자들이 어느 날 보니 자신들을 탄압한 그 공권력이 파업 중인 광부노동자에게 투입되었고, 성소수자처럼 광부들이 탄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우릴 도와준 적이 없다는 이유로" "그 광부들이 어릴 적 나를 패던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망설인다. 근거 있는 망설임이었지만 이들은 "레즈비언 게이 서포트 마이너"(LGSM)를 만들어 모금을 시작했고, 파업노동자들에게 그 돈을 전달한다. "바깥에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돌아보라(당시는 에이즈 위기의 시대로 많은 게이들이 이름없는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을 때였다)"는 조롱과 변태라는 욕을 들으면서 모은 돈이었다. 여튼 그 후원금은 성소수자들이 광부파업을 지지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고, 성소수자들과 광부들은 탄광마을과 게이바를 오가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 광부 파업이 성소수자에게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었고, 광부들 중에는 성소수자들의 지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광부 노동자들이 1985년 열린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에 참여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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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런던프라이드〉 포스터.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생기는 자긍심에 대한 영화. 많은 사람들이 꼭 보시길.

우리는 아픔으로 만나고

나에게 이 영화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노동자와 성소수자, 서로 달랐던 존재가 만났다는 것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너무나 아픈 시기에게 꼭 필요했던 사람들이 만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받았던 국가 탄압을 다른 이가 받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라고 해서 시작한 모금은 우리가 서로의 일부임을 확인하고 그 아픔이 무엇이든지 간에 보듬고 환대하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위로를 받았고 용기를 얻었으며 힘이 되어주었다.

당시는 에이즈 위기를 비켜설 수 없었던 시기였다. 치료제 없이 죽어간 동료 게이들을 잘 알고 있었던 시기였을 것이다. LGSM 멤버 조나단은 자신이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했고 연대운동을 조직한 주인공 마크는 에이즈로 죽음을 맞이했다. 영화를 보며 가장 먹먹했던 순간은 바로 낯선 이에게 폭력을 당해 병원에 입원한 게딘이 자신의 건강보다 HIV감염인 파트너 조나단의 건강을 챙겨달라고 광부노조 가족에게 부탁하고, 조나단이 에이즈 감염사실을 광부노조 가족에게 털어놓는 장면이었다. '에이즈'가 뭐든 상관없다는 듯 그의 손을 꼭 잡아주는 광부노조 가족의 모습은 마치 약자와 약자가 연대하는 모습의 완성형 같았다.

런던프라이드는 슬픔과 분노가 가득했던 시대에 약자와 약자가 서로의 손을 잡고 어떻게 버티고 변했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무엇보다 마크가 아마도 자신이 에이즈 감염사실을 인지하고 떠났다 다시 돌아와 퍼레이드에 함께 했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광부노조에서 LGSM 지지 철회안건이 통과되었기 때문에 떠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어쩌면 광부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LGSM의 활동이 피해를 입을까봐 떠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결국 동료들 품으로 돌아왔으니, 이들과 함께 광부노조와 함께 퍼레이드 선두에서 목소리 높였으니 어쩌면 마크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의 자긍심이 되어

반가운 성명이 나왔다. 29개의 노동조합, 27개의 노동사회단체, 227명의 개인들이 참여한 이 이 성명서는 동성애자 육군 A대위가 영외에서 합의에 의한 성적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라는 유죄 선고를 받은 사건에 대해 규탄하고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굳이 알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 같은 노동자들이 참여한 이 성명서의 끝에는 런던프라이드 영화 속 광산촌 노동자들처럼 "빵을 위해 동시에 장미를 위해" 두 손을 맞잡을 거라는 다짐이 담겼다. 노조할 권리와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누려야 할 권리'들'이라는 사실을 배워가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서로의 일부임을 확인해가는 것. 연대는 그렇게 꿈틀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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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형법 추행죄 폐지를 위한 거리 캠페인. 많은 노동, 시민, 사회 단체와 개인들이 성소수자들과 연대하고 있다. 영국의 성소수자들과 광부들처럼, 우리는 서로의 자긍심이 될 거다. 사진출처: 인권재단 사람

우리 사회 다양한 고통 사이에서 핀 연대는 절박함만큼이나 힘을 준다. 자긍심은 나를 긍정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서로에게서 나를 발견할 때, 그리고 기꺼이 우리 사회 고통들과 손을 잡을 때 더 빛나고 있음을 영화 런던프라이드는 말하고 있다. 시대는 변했지만 지금 우리가 누구와 손을 잡고 함께 가야하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꼭 많은 분들이 볼 수 있길.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