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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포기하지 않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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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딸기(강정평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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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10년 동안의 싸움

지난 5월 18일은 강정해군기지 반대대책위가 만들어지고 10년이 되던 날이었다. 2007년 4월26일 일부 마을 주민들의 박수로 날치기 통과된 해군기지유치신청 동의안으로 촉발된 이 문제가 10년을 넘길 것이라고 그 누가 생각할 수 있었을까.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채 강행되었기에 당연히 주민들의 의견을 물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은 너무나 어리석은 것이었을까. 마을 주민들은 여의도 국회로, 제주도청으로, 삼보일배로, 제주 일주 행진으로, 도지사 소환 운동까지 해보지 않은 것이 없이 다했다. 하지만 국가는 불법을 합법으로, 합리적 우려를 루머로, 정당한 저항을 빨갱이로 낙인찍으며 가혹하게 마을 주민들을 탄압했다.

2011년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이 육지로 알려지고 전국적인, 전세계적인 연대의 손길이 닿았을 무렵, 나 또한 제주에 내려왔다. 마을 삼촌들은 좀 더 일찍 와 주지 그랬냐며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미 찢겨진 마음들은 되돌릴 수 없이 갈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끝없는 연대의 발걸음에 힘을 내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연행과 구속 일인당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벌금뿐이었다. 한번 시작된 공사는 멈추는 법이 없었고 마을의 해안선은 급속히 파괴되었다. 깊은 절망과 좌절, 세상에 대한 원망은 곧 서로에 대한 서운함으로, 미움으로 마을을 잠식해 갔다.

강정에 산다

나는 강정에 산다. 10년의 투쟁 중 절반이 조금 넘는 시간을 옆에서,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온갖 폭력의 목격자로, 저항자로 이곳에 살고 있다.

국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강정에 왔던 전국각지의 경찰들은 상부의 지시와 명령에 철저히 복종했다.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넘어가도 고착을 해제 하라는 명령이 없이는 한 발짝도 공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밥을 먹고 있으면 밥 먹는 식판과 함께 들려 나갔고, 손을 잡고 있으면 손가락을 하나씩 꺾어 들고 나갔다. 발버둥 칠수록 경찰 손아귀의 힘은 세졌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는 경찰들은 말단 중에서도 가장 말단. 무전기를 들고 있는 지휘자들은 대장 행세를 하지만 사실상 중간관리자였고 가장 윗선은 서장이나 청장 때로는 총리, 청와대였다. 현장에선 언제나 말단 권력과 싸울 수밖에 없었는데, 때로는 이 말단 권력인 의경들과 싸우는 것이 괴롭기도 했다. 우리나 그 의경들이나 힘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힘없는 이들끼리의 싸움밖에 남지 않는다. 늘 책임자들은 너무나 멀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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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띠잇기가 끝나고 해군기지 진입도로에서 찍은 사진. 강정투쟁10년, 구럼비 기억행동 주간을 알리고 있다. (사진 제공: 호수)

국가 공권력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 보호하거나 희롱하거나

애원하고 애원해서 겨우 바꾼 것은 여성들을 들어낼 때 여경이 와서 할 것, 그리고 장시간 고착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초기에는 남자 경찰들이 와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끌어냈는데 오랜 항의 끝에 여경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그때 참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는데, 경찰들이 여경을 마치 '누이들'처럼 대하는 것이었다 상급 경찰은 여경들의 직위로 호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으로 부르기 일쑤였다. 오죽했으면 듣다 못한 활동가들이 상급 경찰에게 여경들에게 하대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그리고 여경들은 여성활동가들의 제압이 끝나면 남자 경찰들의 보호 속에서 에어컨 나오는 차에 들어갔다. 여경들이 머리카락이라도 풀어지고 생채기라도 나면 상급 지휘관은 관련자를 색출했고 반드시 보복했다. 그에 반해 현장에서 투쟁하던 여성들은 온 몸이 멍투성이에 속옷 끈이 풀어질 정도로 고착을 당해도 관련자들이 처벌되거나 책임지는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호의 대상자인 아군의 여성과 희롱하고 강간하고 살해해도 무관한 적군의 여성을 나누는 전쟁의 한 단면처럼 국가는 이곳에서 국가에 충성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었고, 그 한복판에서 강정주민들과 지킴이들, 평화활동가들은 국민이 아니었다. 제압하고 무력화시켜야 할 그 무엇이었다. 국가에 의문을 품는 것으로도 죄가 되는 것, 그 주장의 합리성이나 정당성은 무시되는 경험은 군대의 모습과도 무척이나 닮아 있다. 분쟁의 현장에서 국가는 거대한 군대가 되어 작전을 수행하듯 저항자들을 압사시킨다. 그렇게 2016년 2월 26일 해군기지가 완공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끝났다고 했고 그만하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강정에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 많다. 내가 지금까지 강정에 있는 것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 이곳에서의 경험이 나의 삶에 큰 배움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서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으로 투쟁에 참여할 수 있었다. 격렬한 투쟁의 현장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여자들은 뒤로 빠져'라는 암묵적 지시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현장을 통제하는 지휘관(!)은 없었지만 각자가 스스로 판단해 결정했고, 그러한 행위들은 현장에서 큰 힘으로 발휘되었다. 그리고 지킴이라는 신이주민들의 공동체가 만들어지면서 다양함이 논의되고 합의를 이뤄가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었다. 지도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모여서 공동의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잘 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너무나 지지부진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공동의 합의를 이뤄가기 위해 애를 쓴다.

더불어 나에게 큰 배움이 된 것은 사람을 존재 자체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성별, 학벌, 나이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투쟁의 과정에서 활동을 통해 신뢰를 쌓고 존재로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모습은 때로 폐쇄적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주었다. 서로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한편으론 온전히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 성별, 나이, 학력에 관계없이 공동의 활동을 하기에 동료로서 마주할 수 있는 공동체를 이곳 강정에서 경험하고 있다.

강정에서 만난 평화

나는 이곳에서 평화의 구체적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 모습은 그럴싸한 이론이 아닌, 삶의 과정에서 군사주의적인 질서를 거부하고 스스로가 새로운 관계를 찾아 헤매이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잘 된다고 호들갑 떨지 않고, 잘 안 된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매일을 살며 내 삶에서 군사주의를 걷어내는 것.
매일 아침과 점심, 저녁에 울려 퍼지는 우렁찬 군가 소리에 기죽지 않고 매일 낮 12시 인간띠 잇기를 하며 춤을 추는 것.
일사분란하게 치고 들어오는 국가 권력의 폭압 속에서도 인간성을 잊지 않고 기어이 노래를 부르는 것.

때로는 작지만 다양한 행동이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방팔방에서 나중으로 미룰 수 없는 인간의 존엄을 위해 맞서는 많은 친구들에게도 큰 소리로 이야기 하고 싶다. 여기 제주 강정에서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국가의 부속이 아닌 존재함으로서 존중되는 삶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