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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병역거부자가 꿈꾸는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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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이해서, '병역거부' 병역거부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살펴봅니다.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가 단순히 입영영장을 받아든 시기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병역거부자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오히려 병역거부자가 되는 일이겠지요. 병역거부의 경험이 병역거부자들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는지, 이미 감옥에 다녀온 병역거부자들은 현재 삶에서 병역거부자임은 언제 어떻게 느끼는지,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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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석진(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

강경대의 죽음을 마주한 전투경찰

"이제 실천할 때이다. 이제 모든 관념적 사고는 끝났다. 이제 행동만이 남았다. (중략) 더 이상 내 일상적인 삶에 대한 미련은 없다. 더 이상은 내 인생을 빼앗길 수 없다. 뛰리라. 이제 드디어 뛰리라. 마침내 난 외치리라"

1991년 4월 30일에 썼던 일기의 일부이다. 이 글을 쓰고 4일 뒤 나는 탈영을 했고 전투경찰대의 해체와 군대의 민주화·자주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며 '양심선언'을 했다. 당시에는 병역거부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군대를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의무를 거부한다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간혹, 군 복무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이런 경우는 요즘도 간간히 기사화된다), 의식적으로 그리고 자신의 신념에 의해 군 복무를 거부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의 나는 사실 군 복무에 대단히 적극적인 청년이었다. 현역으로 가기 위해 운동을 하기도 했고 입대 후에는 특수부대 같은 곳에 지원하는 것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배치된 곳은 시위진압을 주 임무로 하는 전투경찰기동대였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당시 전투경찰대는 군에 입대해 소정의 군사훈련을 마친 병사 중에서 무작위 차출에 의해 구성되었다. 서울 동대문의 기동대에 배치된 후 9개월여 간의 복무기간 동안 나는 내가 수행해야 하는 군 복무에 대해 큰 고민을 하게 되었고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특히, 당시 노태우 군사정권의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해야 하는 내 처지는 나를 점점 더 자괴감에 빠지게 했으며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했다. 그러던 중 1991년 4월 26일, 시위에 참가한 한 학생이 전투경찰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학생은 바로 명지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강경대였다. 더군다나 강경대를 죽인 전경대원들은 내가 복무하던 중대와 같이 진압작전에서 여러 번 함께 했던 친구들이기도 했다. 강경대가 죽던 날, 나는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또 하나의 젊음이 꺼져 갔다. 이제 채 시작되지도 못한 젊음이 이 시대에 의해 꺾여갔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쇠파이프를 휘둘러 죽인 전경을 욕하고 벌하면 되는가. 아니면 극렬 시위를 했기 때문에 죽어 마땅하다고 해야 옳은가. 누가, 무엇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이렇게 처참하게 만들었는가. 무엇 때문에 이리도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을 가져야 하는가... (후략)"

강경대의 죽음은 내가 어떻게든 버텨보려던 군 복무의 당위성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우리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라는 객관적 사실은 당시 내가 해야만 했던 전투경찰의 임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굳어지게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시청에서 시위 진압 대비 근무를 서다 그곳을 나와 강경대 타살사건 대책위원회가 있던 연세대학교로 가서 양심선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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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월 명지대학교에서 열린 강경대 열사 장례식에 참석해 추도사을 읽는 당시 전투경찰 박석진

내가 양심선언을 하던 해에는 유독 군인·전경 양심선언자들이 많았는데 그들과 수배 중에 우리는 군대의 문제 그리고 안보정책의 문제들을 함께 공부하고 토론했다. 병역거부 운동이 유럽을 중심으로 외국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안 것도 그때였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군대가 문제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군대 내부의 반인권적인 문제들, 비민주적인 제도들 그리고 종속적인 한미동맹의 문제까지... 이후 양심선언 군인·전경들은 군대와 군사문제에 보다 중심을 둔 '민군관계 연구모임'을 구성하고 군사안보와 관련한 조사와 관련 소식지를 내며 활동했으나 지속되지 못하고 1990년대 말경에는 활동의 맥이 끊기고 말았다. 함께 하던 선후배, 동료들이 활동을 그만두었고 나 역시 학업과 생활 등의 문제로 운동적 삶에서 점차 멀어져갔다. 그러던 중, 한 선배의 제안으로 평화·통일 관련된 단체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이후 주되게는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현장에서 활동을 했다. 평택미군기지가 확장되던 대추리와 도두리, 군사훈련장이 확장되면서 삶의 터전을 빼앗길 상황에 있던 파주의 오현리,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마을 등... 그 싸움들 속에서 나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 그리고 국가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군대가 오히려 국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 정책들을 강행하는 역설을 보게 되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의 창립일이 4월 26일 까닭

2013년 가을, 8년여를 일하던 단체를 그만두고 나는 꽤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직업 활동가를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26년 전 내 삶을 바꾸게 했던 양심선언처럼 새로운 길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 함께 했던 양심선언 선후배들과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을 만났고 그 과정에서 든든한 후원자이자 지금은 우리단체의 대표인 박래군을 만났다. 그리고 그것은 특별한 행운이었다. 결국 나는 군대의 잘못된 정책과 싸우는 일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2014년에 만들어진 단체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이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의 창립일이 강경대가 숨진 날과 같은 4월 26일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의 영문명은 'Civilian Military Watch'이다. 즉 시민에 의한 군대 감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는데 군대라는 조직에 대한 그리고 군인들이 제출하는 안보정책들에 대한 시민사회의 보다 날카로운 감시와 비판이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30여년 간 군사독재정권의 지배를 통해 확인했듯이 우리 군대를 지배하는 인식적 요소가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의 요구와 정반대의 지점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그것은 시시때때로 우리사회를 후퇴시키고 있다. 최근 군 동성애자에 대한 군 당국의 불법적인 색출과 조사사건을 떠올려보라. 또 최근 주한미군 사드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한 한반도 평화의 위기처럼 군대가 안보를 위해서라며 추진하는 정책들이 가져오는 반평화적 결과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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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3일, 성주 소성리에서 열린 사드 저지 평화행동에 함께한 열린군대를 위한 시민 연대 회원들

그런 이유로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군대 및 국사안보정책과 관련된 모든 일에 관심을 둔다. 이제 회원이 100여명 갓 넘은 작은 단체에서 그것이 가능하냐는 의구심도 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그것은 한 부분에 집중되거나 어떤 사안이 터졌을 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부분에서 미리 확인되고 준비되어야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군대 및 군사안보사안과 관련한 모든 부분을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며 실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단체가 우리 사회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군대 및 군사안보사안과 관련한 시민사회진영의 플랫폼 같은 역할 말이다. 그래서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매주 '열군의 주간 뉴스브리프'라는 이름으로 군사안보정보지를 발행하고 있다. 뉴스브리프에서는 한 주간의 군사안보 관련 보도기사들을 분석해 보도된 기사의 정도에 따라 10개의 주요기사를 추려 정리하는 한편 그 중 하나의 이슈에 대해 '토픽앤톡'이라는 이름으로 열군의 의견과 주장을 담은 글을 게재한다. 신문으로 보면 일종의 사설인 셈이다. 또 작년부터는 군대 및 군사안보와 관련한 주요 분야를 선정해 각계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연속 기획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군사안보사안에 대한 정책적·인식적 노력에 더불어 열군은 가능한 현장투쟁에도 적극 참여하려 애쓴다. 최근 사드 배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주 소성리에 열군은 수시로 회원들과 내려가 그곳의 주민 및 평화활동가들과 함께하고 있다. 모든 고민과 정책의 시작점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아직은 작은 단체이다. 하지만, 하려는 일은 작지 않다. 우리사회 도처에 남아있는 군사주의의 폐해를 극복해 보다 민주화되고 평화로운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열군의 실천에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