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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는 없고 인권침해만 있는 '병역기피자 신상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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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용석(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병역거부자)

1974년 홍성군 광천읍의 어느 시골 집. 담 기둥에 붉은 색 페인트로 '기피자의 집'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당시 읍 병역계 공무원이 그 글자를 썼는데, 그 집에는 실제로 병역기피자가 살고 있었다 한다.

중앙일보는 1974년 7월 15일 기사에서 이 사건을 소설 '주홍글씨'에 빗대어 소개했다. "법의 집행자가 불법적으로 법을 집행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아무리 법의 제재라 해도 법은 법에 정해진 것 이하도 이상도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정희의 유신정권이 서슬 퍼런 시절임을 감안한다면 굉장히 강한 어조로 비판한 것이다. 이 일이 문제가 되자 병역계 공무원은 결국 문제의 글자를 지울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유신시대에 해프닝으로 끝난 사건이 반세기가 지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부활했다. 병무청이 시행하고 있는 이른바 '병역기피자 신상공개'가 그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에는 담벼락에 공개했던 것을 인터넷 홈페이지로 옮겼고, 당시에는 한 공무원의 일탈행동이었다면 지금은 병역법 개정을 통해 국가 기관인 병무청이 이를 시행한다는 점이다.

병무청 신상 공개 2/3가 '양심적 병역거부자'

한국은 고위층이나 유명인들의 병역비리에 아주 민감하다. 권력을 이용해서 반칙을 저지르는 치들에 대해 민감한 것은 아주 당연하고 타당한 일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바라는 열망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제도화해야 하는 정치권이 군대와 관련한 문제들을 대할 때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지 못한 채 이상한 접근을 하는 것이 문제다.

병역기피자 신상공개제도 처음 논의된 것은 2014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였다. 당시에는 고위층 자제들과 유명인들 가운데 병역기피성 해외체류자들에 대한 대책으로 신상공개가 논의되다가 형펑성을 이유로 국내 거주자까지 확대되었고, 병역법 개정안은 결국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병역기피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으로 통과되었다. 2015년 7월 1일 시행된 이 법에 따라 2016년 12월 20일 최초로 병역기피자 237명의 이름과 나이, 주소, 입영일자, 병역기피 사유가 병무청 홈페이지에 공개되었다. 나는 이 신상공개 제도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신상공개 제도는 실효성이 없다. 병무청이 공식적으로 밝힌 신상공개 제도의 목적은 "병역의무 기피 예방 및 성실한 병역이행 풍토 확산"이다. 하지만 이는 단 한 차례의 시행만으로도 실효성이 전혀 없다는 게 드러났다. 병무청이 신상 정보를 공개한 237명 가운데 여호와의증인 병역거부자들이 최소 160명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3분의 2 이상이 병역거부자라는 것은 의도와 목적이 어떠했든 간에 현실적으로 이 제도의 대상자는 '병역거부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병역거부자들은 군대를 거부하면 감옥에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군대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신상정보 공개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징역마저도 감수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병역이행 풍토 확산 캠페인을 하고 있는 셈이다.

병무청은 올해 2월 병역기피자 신상공개 대상자 900여 명에게 소명서를 제출하라는 통지서를 보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병역거부자들도 포함되었다. 900여 명 가운데 상당수가 소명서를 제출하고 실제로는 병역기피자 신상공개 명단에서 제외될 수도 있지만, 이 자체가 제도가 아무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물론 제도가 안착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병역거부자가 신상공개 대상자의 3분의 2가 넘는다는 걸 감안한다면 앞으로도 효과는 없을 거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모욕주기, 낙인찍기... 인권 침해적 요소 다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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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와 병역거부자들이 함께한 병역기피자 신상 공개 중단 촉구 기자회견 ⓒ 전쟁없는세상

신상공개 제도는 인권 침해 요소가 다분하다. 신상공개 제도는 일종의 모욕주기이면서 낙인찍기다. 이 글의 서두에 소개했던 사건을 보더라도, 오죽하면 유신정권이 막강하던 1974년 중앙일보에서조차 "아무리 법의 제재라 해도 법은 법에 정해진 것 이하도 이상도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겠는가. 유엔에서 회원국들에게 권고하는 대체복무제도조차 없는 나라에서, 그래서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고 있고 그 숫자가 전 세계 병역거부 수감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병역기피자 신상공개는 인권 침해를 가중시킬 뿐이다.

실제로 유엔 자유권규약 위원회는 2015년 대한민국의 4차 정기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권고를 세 가지 주요 권고 사항 가운데 하나로 삼았는데,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할 것을 권고하면서 병역거부자들의 신상정보가 공개되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시했다. 한국 정부가 국제 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유엔 인권이사회 상임이사국이라는 지위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신상공개 제도를 즉시 중단하고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국방부와 병무청은 늘 한국 군대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회피한다. 사고나 문제가 발생하면 온갖 호들갑을 떨지만 문제에 대한 진단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언 발에 오줌누기식 대책만 쏟아낸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군대 가기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방부와 병무청은 이 질문에 대해 과연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을까? "참으면 윤 일병 되고, 안 참으면 윤 병장 된다"는 말이 왜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지는지 고려하지 않은 채, 국방부와 병무청이 해야 할 개혁들을 뒤로 미룬 채, 입영 대상자들에게 병역기피의 책임을 미루는 제도는 시행하기 전에 이미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잘못은 가장 빠르게 바로잡는 게 최선이다. 실효성은 없고 인권 침해 요소만 가득한 신상공개제도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 병역이행 풍토 확산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되, 그것은 입영 대상자들이 아닌 스스로에게 엄한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