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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소 고지〉 미군 명예훈장을 받은 병역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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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용석(병역거부자,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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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양심적 병역거부자' 영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아카데미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음향편집상과 효과상을 수상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이 병역거부자는 미군에서 수여하는 무공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무공훈장과 병역거부자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만큼이나 흥미로웠던 건 이 영화의 감독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는 멜 깁슨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병역거부를 가장 심하게 반대하는 세력이 보수 기독교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아주 보수적인 기독교인 영화감독이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셈이다. 흥미로운 여러 조합에 대한 기대를 안고 〈핵소 고지〉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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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얼음강〉 스틸컷. 병역거부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처음은 아니다. 한국 영화로도 신동일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강지환이 병역거부자 주인공을 맡은 〈방문자〉가 있었고, 최근 영화로는 〈혜화, 동〉으로 이름을 알린 민용근 감독의 〈얼음강〉이 있다. 〈얼음강〉은 최근 브로콜리너마저의 싱글 '살얼음'의 뮤직비디오로 쓰이기도 했다.

총을 들지 않는 전쟁 영웅

주인공 데스몬드 도스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가 믿는 예수재림제칠일안식교는 고기를 먹지 않고,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 병역거부를 하는 기독교 교단으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안식교인들은 여호와의증인과 더불어 병역거부를 해왔으나,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심각한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군에 입대하되 총을 들지 않는 비전투 요원으로 복무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국가가 개별 종교의 신앙을 권력으로 꺾은 비극적인 일이다.

도스의 아버지는 1차세계대전 참전 군인으로 전쟁 후유증 때문에 심각한 폭력성을 가족들에게 드러내고는 한다. 도스는 아버지의 폭력성을 닮아가는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서 종교적인 삶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비폭력주의자인 도스는 전쟁에 자원입대를 하지만, 비폭력주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의무병으로 복무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일체의 무기를 잡지 않는 집총거부를 선언한다.

병역거부자라고 해서 모든 종류의 전쟁과 군대를 거부하는 건 아니다. 군대에는 입대하더라도 특정한 전쟁, 혹은 특정한 명령만을 거부하는 병역거부자도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선택적 병역거부자라고 부른다. 외국 군대가 쳐들어온다면 자기는 총을 들고 싸우겠지만, 침략 전쟁인 이라크 전쟁에 파병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병역거부를 선언한 강철민 같은 사람들이 선택적 병역거부자다. 팔레스타인의 무고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것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의 병역거부자들도 선택적 병역거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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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이등병이었던 강철민은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며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그는 소견서에서, 자신은 애국자이며 외국 군대가 쳐들어오면 가장 먼저 총을 들고 달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데스몬드 도스는 종교적인 신앙에 입각해서 모든 종류의 폭력을 거부한다. 그는 전쟁터에서 총을 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는 부대원들의 폭행에도 그저 맞기만 할 뿐 반격하지 않는다. 그런 그를 부대원들은 이해할 수 없다. 스펙타클하고 화려한 연출을 보여주며 죽음을 무릅쓰고 동료들을 구하는 후반부보다 "겁쟁이"라 비난받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묵묵히 지켜가는 훈련소 장면이 이 영화의 백미처럼 느껴졌다. 한 인간의 종교적 신념, 그 양심의 무게에 대해 영화는 질문하고 있다.

종교적 신념과 양심을 지킨다는 것

도스 때문임은 명확하게 밝히며 도스의 내무반 전체를 괴롭히는 하사관, 도스에 앙심을 품은 동료들은 도스를 구타한다. 집단 내부에서의 고립감에 비하면 차라리 육체적인 고통은 견디기 쉬웠을 것이다. 군당국은 도스의 신념을 꺾기 위해 그의 가족과 애인을 이용하기도 한다. 익숙한 풍경이다. 위에서 잠깐 이야기한 강철민도 마찬가지였고,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시민들을 강제진압하라는 명령에 불복종한 이길준 때도 그랬다. 군 당국은 늘 개인의 강력한 신념을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사람들이 아끼는 이들을 통해 병역거부자의 마음을 흔든다.

심한 육체적 고통, 그보다 더 힘든 정신적인 고립감, 그리고 인간 마음의 가장 약한 고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공격까지 견딜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인간이란 때로는 한없이 비굴하고 비겁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이 믿는 바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기도 한다. 나는 10년 전에 봤던 다큐멘터리 〈송환〉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감옥 안에서 수십 년을 전향하지 않고 버틴 비전향 장기수들. 김동원 감독은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오기가 그분들을 버티게 한 것이 아닐까'라고 질문한다. 데스몬드 도스가 초인적인 인내로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종교적인 신념의 다른 이름이, 아니 모든 종류의 양심과 신념의 솔직한 이름이 바로 '오기'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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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송환〉포스터. 개인의 신념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보여준 영화 〈송환〉. 〈핵소고지〉와 더불어 본다면 좋을 거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비폭력주의자인 그가, 군수공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징집의무가 있던 것도 아닌 그가 굳이 자원입대를 했는지는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누가 너 보고 군대 오라고 했어? 안 와도 되는 놈이 왜 와서 분위기 흐리고 우리까지 힘들게 해!'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다른 군인들의 마음이 오히려 설득력 있게 다가올 정도다. 데스몬드 도스는 끔찍한 전쟁에서 조국과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해서 전쟁에 뛰어든다. 비폭력주의자의 생각치곤 상당히 의외였다. 2차 세계대전이 저물 무렵 미국 사회의 분위기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조금 더 납득이 되었을까? 징병검사에서 탈락했다고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오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병역거부자조차도 자진 입대를 하게 되는 것일까?

이 영화가 묻지 않는 것

데스몬드 도스가 종교적 신념을 지켜가는 고난의 과정을 아주 자세히, 감동적으로 보여주긴 하지만 병역거부자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응당 던질 법한 전쟁의 본질과 평화의 내용에 대한 질문은 전혀 던지질 않는다.

주인공 데스몬드 도스조차 "주여 한 명만 더 구하게 해주소서"라고 기도할 뿐, 그 무수한 죽음을 유발한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전쟁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거의 유일한 캐릭터는 도스의 아버지다. 전쟁 후유증으로 지독한 폭력성을 보여주는 그는 그 모습 자체로 전쟁이 개인의 삶에 남기는 흔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도스의 명령불복종을 다루는 군사법정에 나서서 "조국의 위해 싸우고 소중한 모든 것을 잃게 하더니 이제는 나 몰라라 하는 겁니까?"라고 외치는 그는 어쩌면 국가를 위한 전쟁에 참전한 젊은이들의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영화는 시종일관 일본군을 악마처럼 묘사한다. "생사에 관심이 없는" 존재들이고, 어디에 숨었는지도 모르게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좀비 같은 기운을 풍기며, 전쟁에 미치 사람들처럼 묘사된다. 일본군 안에는 A급전범부터 도스처럼 조국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전쟁에 참전한 사람,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강제로 끌려온 일본의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들까지 다양한 사람이 있을 거다. 하지만 영화는 전쟁이 그들 각각에 어떤 의미인지에 관심이 없다.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는 건, 일본군의 전쟁 책임을 오히려 더 명확하게 하는 작업이다. '일본군'이라는 집단으로 뭉뚱그리고 그들을 쉽게 악마화한다면, 일본군에 대한 정서적 반감을 높일 수 있겠지만 정말로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들은 묻히기 십상이다.

물론 〈핵소 고지〉는 일본군의 책임을 묻기 위한 영화는 아닐 거다. 하지만 전쟁에 직간접을 참여한 다양한 계층들의 삶에 조금만 더 관심을 두었다면 영화의 서사가 더욱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평화를 위해 해야 할 질문들

이 영화는 아주 충실한 종교영화이고, 전투 장면을 훌륭하게 재현한 전쟁영화이다. 하지만 병역거부자가 주인공이라고 하더라도 전쟁과 평화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영화라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기실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조국, 애국심' 같은 추상적인 것들이다. 대개의 경우 전쟁 시에 추상적인 단어들을 목소리 놓여 외치는 사람들은 사기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들은 전쟁의 본모습을 감추기 위해 추상적인 가치로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린다.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필요한 것은 조국이나 민족이나 애국 같은 거대한 것들이 아니라, 개개인들의 소중한 일상에 대한 감각이다. 조국이나 민족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보다, 가장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전쟁의 영향을 받는 것들을 살펴야 한다. 〈핵소 고지〉가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혹은 아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전쟁에서 죽고 다치는 이는 누구인가?"
"누가 돈을 버는가? 누가 전쟁을 통해 이익을 얻는가?"
"전쟁은 개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미국의 젊은 남성 노동자에게, 일본의 젊은 남성 농부에게, 중년의 여성과 어린이에게, 노인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와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