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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4년차, 나는 병역을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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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상

이 다짐을 행동에 옮기고, 소리내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폭력이라는 단어와 함께 청소년기로 돌아가 보고자 합니다.

폭력. 폭력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국어사전)] 수단이나 힘에는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힘까지도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폭력 자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모든 사람이 평등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 전 까지는요. 차별과 편견, 억압과 불평등을 낳는 강자에 대항하여 약자가 '행하는, 행할 수밖에 없는' 폭력을 저는 지지합니다. 제가 반대하고 저항하고자 하는 폭력은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행할 수 있는, 행해도 괜찮은, 당연한, 일상적인' 폭력입니다.

저의 청소년기는 폭력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공부를 잘 하지 않았고, 그래서 잘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보통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길 원했고, 튀길 원했지요. 학교는 사회의 다른 조직이 그렇듯 철저한 경쟁 시스템으로 돌아갔고, 그 안에서 개인이 지닌 다양한 개성은 위험하거나 반항하는 것으로 치부되어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쓸모없고 귀찮은 존재였고, 변화하거나 고쳐져야 하거나 도태되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회가 원하는 모델로 나를 고치기 위해서 행사되었던 '사랑의 매' 라는 이름의 물리적인 폭력들과, '다 널 위해서 그래.' 라는 이유들로 행해진 정신적인 폭력들이 저의 청소년기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것을 행사한 주체는 학교, 선생님, 부모님을 비롯한 저를 둘러싼 모든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문화와 구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폭력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그것이 제가 속한 사회 속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당연한, 일상적인' 과정으로 여겨지는 문화였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행할 수 있는, 행해도 괜찮은' 사람들은 모두 저보다 강자였지요.

타인으로부터 내게 전해진 그 폭력은, 나로부터의 폭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약한 나 자신에게 행하는 폭력, 내가 친구에게 행하는 폭력, 내가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행하는 폭력으로.

이렇게 저의 청소년기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적인, 쉬운' 폭력의 일상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0년 8월 31일, 102보충대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또래 친구들처럼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저에게 '군대'는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성' 이라면 '당연히' '가야 하는' '삶의 코스' 같은 것이었습니다. 고민을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청소년기의 나에게 '사회가 정해놓은 삶의 모습'을 강요하던 그들의 세뇌는 성공했습니다.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강원도 화천군 사창리라는 곳에 위치한 육군 27사단 78연대 연대본부중대 탄약계원으로 자대배치를 받아 군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거나 겪은 것들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을 두서없이 나열해 봅니다. 눈, 추위, 반말, 고성, 얼차려, 구타, 부족했던 밥과 찬 밥, 부족한 물로 인해 씻지 못한 날, 6·25때 사용하던 수통, 명령, 복종, 계급, 간부 회식이 끝나고 자고 있던 병사들을 깨워 뒤처리 시켜서 그들이 먹은 것들 정리하다가 느낀 분노, 일상의 대화 속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는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 누군가의 자살과 '그 사람 어쩌다 알게 됐어? 피곤하게 엮이지 마.'라는 이야기, 군인답게 행동하라는 말, 총소리, 남자다워야지 라는 말, 총선 전에 좌파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북한에 의해 남한이 망할 것이라는 어느 목사의 이야기를 담은 신문을 가지고 치렀던 정신교육, 북한새끼들은 죽여야 된다는 이야기, 맞아야 정신 차린다는 이야기들 등. 그리고 그런 군이라는 조직 안에서 철저하게 조직에 순응하고, 맞추고, 닮아가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살았던 나. 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지난했던 군복무를 마치고 2012년 6월 9일, 전역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전역 후에, 저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계기는 여행이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고, 그곳에서 저는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하루하루는 나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도 괜찮다는 위로와 안도,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질문할 줄 알고, 거부할 줄 아는 사람들을요. 강정마을에서 군사기지를 반대하며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활동가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것을 연극으로 만든 예술인,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평화와 평등을 실현시키려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

그들과의 만남은, 제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숙제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여행에서 발견한, 내 삶의 지향으로 가기 위한 행동과 실천. 내가 되어야 할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나 자신이 되는 것이라는. 이 글을 읽는 지금까지도, 저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무엇인지 모를 제가 되어가고 있겠지요. 숙제를 푸는 과정 속에서 저는 느꼈습니다. 내가 나로 존재하기를, 자유롭기를 원한다고. 그리고 다른 사람도 자유로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그러면 내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고. 그들과의 만남은 또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생명, 평화, 인권, 전쟁 없는 세상에 대한 장막을 걷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생명이 우선되고 평화가 실현되며 인권이 보장되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게 되었고, 그 꿈의 방향을 좇아 걸음을 옮기며 살아가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자연스레 나의 일상에서부터 불평등의 해소라는 목표가 생겼고요.

작년까지 3번의 동원훈련을 마쳤습니다. 훈련 기간과 훈련을 받지 않는 일상, 그 간극에서 생겨난 고민은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경험한 군대라는 조직, 내가 생각하는 군대라는 조직은 한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추구할 수조차 없게 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불평등의 구조와 문화를 지니고 있는 조직이자, 군대 밖 사회에 존재하는 불평등의 구조와 문화를 유지하고, 강화하고, 재생산해내는 데에 있어 큰 영향력을 미치는 조직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비군 훈련 거부를 고민하며 여러 자료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현역 양심적 병역거부와는 다른, 예비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이야기들을 접하며, 저는 절망했습니다. 거부에 대한 실형과 벌금은 그대로 적용되면서, 해당 훈련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월되는 상황.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로, 남은 나의 삶이 휘둘려도 괜찮을까? 그러면, 나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을까? 저는 예비군 훈련을 가면, 나로 존재할 수 없기에 자유로울 수 없고, 예비군 훈련을 가지 않으면,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과 함께 벌금과 실형이라는 삶의 족쇄가 채워지기에 또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이곳을 영원히 떠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렇게 3번의 동원 훈련이 지나고, 자괴감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나의 지향과 가치를 스스로 포기한 것 같은 마음에, 일상에서의 자존감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불평등의 구조와 문화를 유지하고 강화하고 재생산 하는 조직의 행위에 가담하는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예비군 4년차, 나는 병역을 거부합니다.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