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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비군훈련을 거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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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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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성현

2016년의 오늘 저는 제가 예비군훈련 거부라는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게 되었던, 10년간의 이야기를 지금 하려고 합니다.

2007년, 저는 20살에 당시 소속되어 있던 대학생기독교단체에서 열린 수련회에 참석해 그곳에서 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지만, 대학교에 들어와서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개신교로 대표되는 종교적인 가치관과 기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그것들에 대하여 회의적이었던 저는, 수련회에서 그 의문들을 가지고 씨름하던 중에 직접적으로 신을 만나게 되고 종교적인 기준이 아닌 신의 기준에 의해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식상한 내용일지 몰라도 저는 그때 처음으로 '나는 종교적 기준에 의해서 벌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신의 기준에 의해서 사랑받고 용서받을 수 있는 존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을 만나고 그 마음을 깨달은 이후에 저에게 가장 크게 나타났던 변화는, 그때까지 제 눈과 마음에 걸리지 않고 스쳐지나갔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마음에 가장 깊이 내 마음에 깊숙이 들어왔던 일은 2008년 12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사건이었습니다. 포털사이트에서 바라본 가자지구의 피 흘리며 죽은 아이들의 사진은 당시의 저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과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수많은 전쟁들이 일어나며, 미디어는 전쟁에 관련된 사진들을 보여주었지만, 그때만큼 전쟁 사진이 제 마음에 들어왔던 적은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너무 마음이 아팠고, 그때 제가 가졌던 마음은 신이 나를 사랑하듯이, 죽은 저 사람들도 너무나도 많이 사랑할 텐데, 그러한 존재들을 저렇게 죽이는 전쟁과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격은 대체 무엇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스라엘대사관 앞에 가서 시위도 하고 기도도 했지만, 그 폭격은 멈추지 않았고, 인터넷을 통해서 가자지구의 폭격으로 인해 부서진 집들과 다치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다면 내 인생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혼자 그려지지 않는 상상을 하면서 입대 일을 기다렸습니다.


저는 2008년 가을에 병역을 위하여 카투사에 지원해 합격한 상황이었는데, 가자지구 폭격을 본 이후로 처음으로 내가 군대에 간다는 것,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 전쟁은 무엇이고, 평화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11월 30일 입대 일을 기다리면서, 입대 전까지 내내 전쟁이라는 것에 대하여, 기독교인으로서의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것에 대하여 고민하며 지냈습니다. 당시 제 주위에는 저의 고민을 함께 하는 사람을 발견하기가 힘들었고, 제 속내를 쉽사리 터놓고 같이 고민할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제가 속해 있었던 기독교 단체에서도 군대에 대한 이야기와 고민은 군대에 가는 시기에 대한 정도였고, 기독교인으로써 군대에 가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몇몇 학생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다는 것을 기사와 학교 내의 플래카드 등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그들과 교류를 한다거나, 외부의 단체에 문의를 해보려는 시도를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혼자서 이런 자료를 들여다보거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다면 내 인생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혼자 그려지지 않는 상상을 하면서 입대 일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저는 군대에 대해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과 심정적으로 불편한 마음을 품은 채 논산훈련소를 통해서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군대에서의 시간들은 물론 힘들기도 했지만, 그 곳 또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 이다보니 평범한 일상과 즐거운 일들도 함께 존재했습니다. 군대가 주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는 별개로, 군대에 있는 동안, 평화와, 군대, 전쟁,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저의 고민은 점점 깊어졌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저에게 주어진 시간을 이용해서 제가 가진 고민을 해소하려, 전쟁과 평화에 대하여 책을 읽고, 공부를 하였습니다. 문제는 제가 고민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 책을 읽고 공부하고 고민하면 할수록, 또 군대 내부에서 한국군과 미군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볼수록, 군대와 전쟁을 긍정하기보다는 군대와 전쟁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저의 마음과 달리 군대 내부의 한 구성원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또 그 체제에 저항하기보다 순응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던 저는 모순적인 제 삶의 모습을 품고 1년 11개월의 시간을 군대에서 보냈습니다.


상민이를 병역거부로 인해서 감옥으로 보내게 되면서, 여전히 내가 앞으로 몇 년 동안 가야 할 '예비군'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한 이후, 저는 대학교에 복학했습니다. 복학 후 졸업하기까지 제주도에서 강정마을해군기지문제를 알리는 2012년과 2013년 강정생명평화대행진에 참여하였고, 그 외에도 친구들과 같이 강정마을을 찾으면서 국가와 군대가 한 지역과 지역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또 한반도의 평화가 얼마나 위태로우며, 남한을 둘러싼 여러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위협받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2012년과 2013년, 불편한 마음을 가지기는 했지만, 이미 군대에 다녀왔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마음과 대학교에서는 1년에 하루만 가면 그해의 예비군훈련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두 번의 예비군훈련에 참여하였습니다.

2013년 8월 긴긴 대학생활의 끝을 보았고, 졸업하자마자, 평화와 갈등전환에 대해서 교육하는 평화교육단체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이 되었을 때, 양심적 병역거부를 고민하던 친구 상민이가 오랫동안 고민하며 미루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부터 해서 실제적인 병역거부로 인해 재판을 받고, 4월에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저와 상민이는 당시 평화교회를 지향하는 교회에 함께 다니고 있었는데, 교회 내부에서 상민이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많은 논의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 중에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상민이가 '기독교인으로써 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가?'에 대해서 질문을 많이 했는데, 그 자리에서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당시 베트남에서 병역을 거부하고 대체복무를 수행하셨던 평화교회를 지향하는 메노나이트 교회의 교인인 아버지를 둔, 캐런은 도리어 당시 한국에서 병역을 수행한 이후 그 자리에 앉아있는 많은 형제들이 '기독교인으로서 왜 당신들은 군대를 다녀왔는가? 또는 군대를 가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당시 어쨌거나 군대를 다녀온 상황에서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을 그다지 깊이하고 있던 상황은 아니었는데, 그 질문을 받고, 실제로 상민이를 병역거부로 인해서 감옥으로 보내게 되면서, 여전히 내가 앞으로 몇 년 동안 가야 할 '예비군'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예비군훈련 오라는 통지서를 받고 통지서대로 군복 입고, 예비군훈련 참석하면 되는 것인데, 그게 그 당시의 저에게는 잠을 이룰 수 없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군대라는 공간에서 보내야하는 일반 병역의무와는 달리 예비군훈련은 일 년에 며칠만 별로 강도가 세지 않은 훈련을 받으러 다녀오면 되기 때문에 실제로 큰 부담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닌데, 막상 제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적 가치관과 평화에 대한 가치관에 비추어 정직하게 질문해보았을 때, '내가 예비군훈련에 참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에 나는 '예스'라고 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예비군훈련은 불참하게 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누적되는 처벌로 인해서 실제 받는 훈련에 비해 벌금과 같은 처벌이 굉장히 과도하고, 그로 인해 뺏기는 시간이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어떨지 책과 자료를 통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예비군을 거부하겠다고 스스로 결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사실 아무도 저보고 예비군훈련을 거부하라고 부추긴 사람도 없었고, 순전히 저 혼자서 예비군으로 인해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고, 그냥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예비군훈련 오라는 통지서를 받고 통지서대로 군복 입고, 예비군훈련 참석하면 되는 것인데, 그게 그 당시의 저에게는 잠을 이룰 수 없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 고민의 끝에 저는 2014년 3월 5일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는 고난주간 재의 수요일 묵상을 하면서, 제가 가진 신앙적인 이유와 당시 제가 하고 있던 평화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떳떳하게 하기 위해서 예비군 거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2014년 예비군 3년차부터 지금 2016년 까지 3년 정도 예비군훈련 거부를 하고 있는데, 2014년과 2015년에는 예비군훈련 통지서를 받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존재했다면, 올해 여름부터는 결국 누적된 예비군 불참으로 인하여, 실제적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검찰에서 고발을 당하는 상황이 닥치게 되었습니다. 결국 지금까지 3번, 합쳐서 거의 200만 원 정도 벌금을 납부하였습니다.


예비군훈련 거부와 관련하여 출국금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예비군훈련과 관련된 벌금을 내고 나갈 수 있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처음 예비군 거부를 결심하였을 때는 결혼을 하기 전이고 지금처럼 아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 예비군 처벌이 나오면 그에 대한 재판을 청구하고, 벌금이 나오면 벌금을 내든지 벌금이 고민되면 불복의 의미로 감옥에 들어가 노역이라도 살면서 버티자는 생각이었는데, 작년에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또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한 번에 몇 십 만원에서 몇 백 만원의 벌금을 내는 것이 저에게 또 우리 가족에게 가벼운 것이 아닌 상황이 되었습니다.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고, 직장에서 제가 책임져야 할 일이 있으니, 노역은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가 되어버렸습니다.

훈련기에는 예비군 통지서가 한 달에도 몇 번씩 날아오는데, 그때마다 속으로 드는 생각은 그냥 눈 딱 감고 예비군을 갈까 하는 생각과 허무하게 벌금으로 몇 십 만 원 국가에 보태줄 바에는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한 후원이나, 돈이 필요한 사람들, 우리 가족에게 그 돈을 쓰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 그리고 내가 하는 이 예비군 거부를 누가 알아주고, 또 내가 이렇게 속 썩고 돈 뿌려가면서 하는 일이 정말 이 사회와 세상에 평화를 뿌리내리게 하는데 정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마음에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 올해, 베트남에 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출입국관리소에 문의를 한 결과, 예비군훈련 거부와 관련하여 출국금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예비군훈련과 관련된 벌금을 내고 나갈 수 있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 소란 끝에 간 베트남에서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를 할 수 있었는데, 전쟁의 현실이라는 것이 말로, 숫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하고 거대한 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고, 베트남에서 벌어졌던 전쟁은 이미 수십 년 전에 끝이 났지만, 전쟁의 피해는 불발탄 피해로, 고엽제 피해로, 가족의 빈자리와 트라우마로, 살아가던 마을의 파괴로 여전히 남아 현재에도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쟁 중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쟁이 한 인간에게 남긴 고통과 슬픔이 이토록 큰데, 시리아를 비롯하여 과거에 일어났던,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고통이라는 것은 얼마나 큰 것일까를 생각하며, 어떠한 전쟁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베트남에서 전쟁과 평화에 대하여 배우고 고민하면서, 한국에서 제가 하고 있는 예비군훈련이 다시금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감각이 다시 생겨났고, 저 이전에도 또 지금도 전쟁과 평화를 위해서 전 세계에서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게 되면서, 지금 하고 있는 예비군훈련 거부에 대한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제가 예비군훈련을 거부하게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전쟁과 평화'를 고민하면서 걷는 그 길 위에서 만난 구체적인 삶의 문제는 '예비군훈련'이었습니다, 그 문제를 앞두고, 저는 예비군훈련을 갈 것이냐, 말 것이냐는 선택의 자리에 서게 되었고, 예비군훈련 거부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선택의 순간 이후의 과정에서 사실 제가 '예비군훈련 거부'를 끝까지 마칠 수 있을지 늘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 길 위에서 겪을 어려움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을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의 이 선택과 행동, 그리고 제가 이 결정을 통해서 제가 지불해야 할 대가가 단순히 개인적인 '예비군훈련 거부'의 성공과 실패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전쟁과 평화'에 대하여 넓은 관점에서 고민하고 행동하는 또 다른 시작점이 되고,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신앙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전쟁과 평화'라는 이슈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게 되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