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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병역거부자 바리스타의 남성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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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 Images/iStock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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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페미니즘과 나

전쟁없는세상은 페미니즘과 평화운동이 굉장히 밀접하다고 생각하고, 평화운동은 페미니즘의 시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페미니즘 책과 글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자들과 평화운동가들이 자신의 삶에서 만난 페미니즘에 대한 경험과 고민을 에세이로 나누려고 합니다. 병역거부와 페미니즘은 어떻게 만나는지, 평화주의와 페미니즘은 왜 만나야 하는지, 저희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 | 타랑(바리스타, 병역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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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하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꽃미남 바리스타들이 열연했던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영향 탓인지 제 머릿속에는 '남장한' 바리스타'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굳이 '들'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극중 남자 배우들의 남성성 역시 전형적인 남성성의 표현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남장'이라는 주인공(윤은혜분)의 수행적 남성성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극 중에선 실제로 '남성인' 바리스타들이 많이 나오지만 주인공은 짧은 머리와 가슴에 두른 압박붕대로 남자인 척 행동하며 '진짜' 남자 주인공들을 혼란에 빠트립니다. 물론 여자답지 않은 굵은 목소리도 주인공의 남성다움에 큰 역할을 담당했을 겁니다. 목소리 톤이나 머리길이 그리고 가슴의 크기는 사회적으로 남성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도구니까요. 주인공은 이미 도구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남자가 아님이 밝혀지기 전까지 남자로 인정받습니다. 그러다 또 다른 남자 주인공의 진지한 사랑고백에 남자연기를 중단하게 되죠.

드라마가 방송될 당시 전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에 수감된 상태였습니다. 실제로 다른 남자들과 좁은 방에서 남장여자가 주인공인 그 드라마를 즐겨 봤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드라마처럼 남자 바리스타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드라마 같다는 말은 스스로가 사회화된 남자임을 인정하는 것과 더불어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남성성의 도구들을 이용해 남자임을 연기하고 있다는 뜻도 포함합니다. 그렇다고 남자역할을 모두 잘 수행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남자인 것과 남자다운 것이 완벽하게 일치할 수 없듯이 병역거부처럼 사회적으로 강요된 남자다움에 저항한 경험도 있습니다. 남자답지 못한 경험이 사회화된 남자로서 가지는 지위까지 박탈하진 않습니다. 병역거부 역시 사회화된 남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바리스타는 남자의 일인가?

어느 카페에 들렀다가 벽에 붙은 구인 광고를 본 적이 있습니다. 지원 자격조건 중에 유독 '군필'이 눈에 들어옵니다. 자연스럽게 '남자'바리스타를 구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곧이어 '나는 안 되겠네......'로 생각이 이어집니다. 익숙한 풍경입니다. 이력서에 군필 여부를 묻는 항목도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주방에서 일한 경험으로 비추어 바리스타들의 작업장 역시 서열중심적인 주방의 연장선이라 생각하면 군대식 규율에 익숙한 사람을 선호하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굳이 남자 바리스타를 뽑는 것 같진 않았는데?' 라는 의문이 들자 '군필'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병역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군대를 다녀왔어도 남자가 아닌 사람은 지원 가능할까? 제대를 했어도 군대를 통해 진정한 남자로 사회화되지 않은 사람은 적응하기 어려울까? 이 과정에서 가장 배제되는 사람은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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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바리스타 대회에 참가한 어느 남성. 실제 노동 현장에서 여성 바리스타가 많이 있는데도 왜 유명 바리스타는 다 남자일까? 우리는 왜 바리스타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남자를 떠올릴까?

세계적인 바리스타 대회에서 입상한 유명 바리스타들 대부분은 남성입니다. 국내 대회 사정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굳이 대회가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졌거나 사람들이 매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커피업계 종사자 대부분은 남성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실제 바리스타들 중엔 여성들이 많습니다. 이전 직장에서도 그렇고 지금 일하는 곳에서도 남성의 비율이 높은 환경은 드물었습니다. 물론 그 중엔 여성이면서 남자다운 사람도 있고, 남성이면서 여자다운 사람도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여자다움이나 남자다움을 과장되게 연기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과장된 연기는 정체성을 숨기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고 살아남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습니다. 공통점은 누가 수행하든 남자다움의 연기가 더 주목받기 쉬웠고 그만큼 인정받기도 수월했다는 겁니다.

남성성, 전략 혹은 특권

지금까지 일하면서 정체성을 심각하게 의심받거나 성적 지향이 주목받았던 경험은 아직 없습니다. 가끔 운전면허가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하고,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물음에 그럴 마음이 없다고 하며, 군대는 언제 다녀왔냐고 물으면 병역을 거부했다고 말하지만 그런 대답들이 털이 많고 목소리가 굵으며 머리가 짧은 제 외모의 남성성을 압도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가끔 반사적으로 '어머?'라는 소리를 내며 놀라거나 섬세한 말과 행동이 이목을 집중시킬 때도 있지만 상처가 될 만큼 놀림을 받거나 지속적인 장난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적지 않은 나이와 일한 경력 그리고 고집스런 자기 주장은 또 다른 보호막이자 권위가 되어서 질문 자체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역할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실제로 일하면서 느끼는 불편이나 불만들을 가급적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입니다. 일대일 면담이나 모바일 메신저 혹은 회식자리나 일상적인 업무 중간 중간 납득이 안 되는 것들을 곧잘 이야기합니다. 그 중 대부분은 사전에 다른 동료들과 합의가 안 된 일회적이고 즉흥적인 것들입니다. 그래서 더 설득력이 없을 순 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해소하기 힘든 스트레스와 곤란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만 이런 느낌을 받을까요? 결코 그렇진 않을 것입니다. 단지 그런 곤란함을 이야기하기에 유리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겠죠. 그리고 저의 유리함은 내가 남자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여성이면서 나이 어린 신입 직원이 지금의 저처럼 불평불만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심리적인 압박과 공개적인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일찌감치 그만두거나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생존전략으로서의 남성성을 연기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언젠가 남성성을 과장되게 연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성 상급자에게 병역거부 사실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반응은 간단히 이랬습니다.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 의도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지금도 전 온전한 남자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그분과 그 이후에 병역거부를 주제로 이야기 나눈 적은 없습니다. 저 역시 그분의 남성성을 문제시한 적도 없습니다. 그분의 말이 내게 "더 이상 너의 남성성을 의심하지 않겠다."로 들렸다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요?

그분의 남성성이 전략이라면 제 남성성은 이미 특권입니다. 전략이든 특권이든 남성성의 연대는 지금도 공고합니다. 사실 전 지금까지 말로만 이야기할 뿐 직접적인 행동으로 말하진 않았습니다. 불평과 불만은 많았지만 그것이 조직적인 차원에서 제기되지도 못했고, 시스템의 조직적인 남성성을 문제제기 하지도 못했습니다. 남성성 자체가 문제가 될 순 없을 겁니다. 남성성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방식과 목적이 문제인거죠. 다양한 남성들의 연대체인 군대가 '여성'을 배제하고, 소비하며, 혐오하는 방식은 이미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또 다른 남성성의 연대를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병역을 거부한 남성의 지위는 조직적인 남성 연대의 테두리 안에서 목소리 내고 있는 사회화된 남자로서의 지위와 충돌하지 않습니다.

병역거부, 어떤 남성성일까?

최근에 같이 일하던 여성 바리스타가 그만두면서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빠는 참 멘탈이 강한 것 같아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 중 저보다 나이가 어리면서 여성인 분들에게 전 오빠나 선배님으로 통합니다. 일을 그만뒀다는 그분은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제 선배였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오빠라고 부르며 남자로 대접합니다. 오빠 동생 할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었지만 갑작스럽게 그만둔다는 소식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분은 보통의 남자들 못지않은 키와 체격으로 여성성을 의심받으며 놀림 당하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제가 강하다고 합니다. 그 말투가 꼭 자기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져서 부럽다는 듯 느껴졌습니다. 사실 전 특별히 강해지려고 노력한 적은 없습니다. 그저 불만이 있으면 그때그때 이야기하려했고, 선후배 관계에 연연하지 않으려 했으며, 일을 못한다고 초조해 하거나 나를 향한 비난에 주눅 들지 않으려 했을 뿐입니다. 이런 사소한 당당함이 그 사람에겐 가질 수 없는 특권이었던 겁니다.

여성이 하루에 사용하는 생리대 개수가 몇 개일지 추측해보라는 질문을 최근에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 대답은 한 개였습니다. 그때까지 생리를 통해 여성들이 경험하게 되는 구체적인 상황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겁니다. 남자로 사회화 된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요? 가끔 스스로를 정체화 하는 말로 '사회화 된 남자'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사회화되었다고 인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사회화되었을 뿐 근본적으로 '남자'인 이유가 없다는 건 병역의무를 치열하게 의심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남자'로 사회화되었기 때문에 '여자'로서는 경험하지 못하고 상상하기도 힘든 특권은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병역거부의 경험은 제 남성성의 사회화를 남들과 크게 다르게 만들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병역거부자의 남성성은, 거부의 경험으로 다르게 사회화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남성의 경험으로 다르게 재구성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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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들> 표지. 이 책의 번역자 현민 역시 병역거부자다.

몇 해 전 『남성성/들』이라는 책 출판을 기념해 병역거부를 했거나 앞두고 있는 남자들이 모여 서로의 남성성/들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습니다.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가 다양하듯 그들의 남성성 역시 보통의 남성성들만큼이나 다양했습니다. 사실 저의 병역거부는 과정 자체가 이미 여성성에 의존적인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 후원회장 역할을 한 사람은 여성이었고 전 그분에게 감정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요구하고 또 지원받았습니다. 거부 이후의 삶도 여성의 경험에 의존적이라는 점에선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성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은 남성성이 과연 가능할까요? 남자로서 실질적인 여성의 경험에 무지한건 제가 경험한 페미니즘이 대부분 책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놓을 수 없는 건 제가 여성들의 이야기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남성이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