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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私傳01_아메리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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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_아메리카노_AMERICANO

이슬람교 수도자들이 비밀스럽게 마셨다는 커피. 잠을 쫓게 해주는 커피는 밤새 기도를 하는 수도자들에겐 최고의 명약이었으리라. 이때만 해도 커피는 제의적 또는 종교적 자장 안에서 소비되었다. 그러나 커피가 비밀의 봉인을 풀고 대중에게 퍼지기 시작하자 커피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회적 상품이 되었다. 유럽의 커피하우스가 그 증거다. 17세기 유럽의 커피하우스는 '근대'로 돌진하는 변혁의 중심 공간이었다. 그로부터 400여 년이 지난 지금. 현대인의 하루는 커피와 함께 시작한다. 바쁜 출근길이지만 커피 한 잔을 잊지 않는다. 대개 아메리카노라고 부른다. 아메리카노 커피는 어쩌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아메리카노란 카페 아메리카노(Caffe Americano)를 줄인 말이다. 레시피는 간단한다.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넣으면 된다. 그런데 커피 유래에 대한 전설이 많이 존재하듯이 아메리카노 탄생의 유래도 분명치 않다. 누구는 저 멀리 18세기 미국의 보스턴 차 사건(1773년)에서 유래를 찾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제2차 세계대전을 시발점으로 본다. 보스턴 차 사건은 한마디로 차(茶)에 높은 관세를 매기려는 영국에 대항한 식민지(미국) 사람들의 분노 표출이다. 차를 항구에 내리지 못하게끔 바다에 버렸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인들은 커피에 눈을 돌렸고 그러면서 차처럼 물을 많이 타는 미국식 커피 스타일이 잡히게 됐다고 한다. (보스턴 차 사건에서 정작 중요한 건 이 사건이 미국 독립운동을 촉발한 계기란 점인데 이는 추후에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을 유래로 보기도 하는데 이태리에 주둔했던 미군들이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 마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메리카노(americano)는 이태리어로 원래 미국인을 뜻하거나 미국풍, 미국의 등의 의미가 있지만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는 미국인을 조롱하는 no!라는 뉘앙스가 덧붙여졌다고 한다. 아무튼 아메리카노는 말하자면 에스프레소 파생 상품이다. 다시 말해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를 전제하지 않고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커피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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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건 아메리카노의 세계화 성공엔 스타벅스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아메리카노가 에스프레소의 본고장 이태리에선 무시를 당했다 하더라도 바야흐로 세계 커피 시장은 세계 곳곳에 진출한 스타벅스(와 스타벅스 컨셉의 유사 에스프레소 커피전문점) 덕분에 아메리카노 전성시대가 되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의 주도권을 쥐면서 신자유주의 질서와 전략의 성공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론의 공간이었던 카페나 커피하우스 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고 아메리카노라는 새로운 커피 질서에 편입되었다. 이제 휴식과 여유를 갖고 산지별 다양한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공론의 공간으로서의 카페보다 획일화되고 규격화된 아메리카노 추출 레시피로 무장한 익명의 커피전문점이 도시인의 카페인 에너지 충전소로 더욱 각광받는 시대가 되었다.

*원글은 커피앤컬처 웹진 '커피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