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우창 Headshot

'남녀임금차이의 진실.jpg'의 진실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최근 1년 여 간 눈길을 끄는 사실 중 하나로 바로 다음과 같은 종류의 안티페미니즘 게시물이 (대학 커뮤니티를 포함한) 남초 커뮤니티에 산포되는 걸 꼽을 수 있다(링크). 2017년 9월 8일 MLBPARK에 "남녀임금차이의 진실.jpg"이란 제목으로 게시된 이 글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양성간 임금수준의 차이는 제도적·사회적 '성차별'에 기인한 것이 아니며 남성과 여성에 내재한 어떤 본질적 경향으로 인한 당연한 결과, 즉 남성이 좀 더 높은 수당을, 여성이 보다 낮은 수당을 지급하는 일을 선택하는 '자연적' 기제가 있거나 혹은 남성이 여성보다 더 효율적이고 유능한 인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게시물에는 (주로 남성들로 추정되는 이들의) '여성들이 힘든 일을 안 하니까' '남자가 일을 더 잘 한다'는 식의 동조 및 '차별에 불편함을 느끼는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조롱의 의사표현이 댓글로 달린다.

이런 류의 안티페미니즘 게시물에서 사용되는 수사적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게시물 자체가 말하는 것처럼 현존하는 성적 '차별'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차이'로 환원된다. 둘째,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학적·공적인 권위를 가진-적어도 그렇게 추정되는-"영미권 연구자"의 주장이 인용된다. 셋째, 본성적 차이의 결과물을 "사회적 억압"의 산물로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은 합리적·과학적·학술적 결과물을 감정적으로, 편의에 따라 부인하는 비합리적·이기적 존재로 묘사된다. 요컨대 '서구의 지적 권위'에 따라 여성주의자들을 비합리적 존재로-따라서 그들의 주장 또한 비합리적인,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규정하고 안티페미니즘의 주장을 과학적·선진적인 것으로 포장하는 수사적 기법이 사용된다.

여성주의·성차별 관련 연구 및 논쟁에 대해 귀동냥하는 사람들이 쉽게 의구심을 가질 수 있듯, 이 게시물의 내용은 상당히 문제적이다. 카드뉴스가 인용하는 발화자들이 실제로 어떤 인물이며 무슨 말을 했는지를 검토해봐도 우리는 게시물의 '지적 권위'가 상당히 의심스러운 것이며, 제작자가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인용대상을 편의적으로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연구자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출처나 링크조차 표기하지 않는 게 매우 이상하지 않은가.

첫째, 여성 "하버드 경제학 교수"로 인용되는 클로디어 골딘(Claudia Goldin)의 경우, 그의 주장은 엄밀히 말해 양성 간 임금격차는 동일노동 내 임금차별보다는 특히 여성이 가사 및 육아 등의 이유로 (노동시간이) '예측가능한' 업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여기에 노동시간형태에 따른 임금차이가 함께 작용한 결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노동 시장이 두 성이 다르게 일하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하기 때문이다"(because the labor market incentivizes them to work differently). 다시 말해 그의 요점은 현존하는 임금차별의 사회적 원인을 동일업무 내 수당차별이 아닌 다른 형태로 설명하는 데 있지 "임금격차는 성차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거나(골딘은 아마도 자신의 주장이 이런 형태로 단순화되는 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 임금차별을 초래하는 '자연스러운' 요소들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데 있지 않다. 애초에 골딘의 분석은 현대 미국의 노동시장을 대상으로 한 경험적·역사적 연구이기에 한국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며, 덧붙여 이런 방식으로 임금격차를 설명하는 논리는 오늘날 여성주의 사회과학도들 또한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는 게시물 제작자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지적 권위"를 상당히 악용하고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 나는 다음 세 가지 게시물을 참고했다.

- https://en.wikipedia.org/wiki/Claudia_Goldin
- http://harvardmagazine.com/2016/05/reassessing-the-gender-wage-gap
- http://www.npr.org/2016/04/12/473992254/on-equal-pay-day-why-the-gender-gap-still-exists
- 한국 노동시장에서 이 문제를 소개하는 글로는 허프포스트 코리아에도 실린 김선함 님의 연재기획를 참고할 수 있다(이 게시물을 참고하라고 귀띔해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둘째, "전 하버드 대학의 교수이자 현재 토론토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조던 페터슨(Jordan B. Peterson)의 경우, 위키피디아만 찾아봐도 상당히 문제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다(위키피디아에서는 게시물에 인용된 '성적 차이'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지 않는다). 해당 항목에 따르면, 그는 다양한 차별을 수정하기 위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거부하며(즉 그에 따르면 MLBPARK의 한국인 사용자들은 백인들에게 "노란 원숭이들"로 불려도 특별히 문제될 게 없을 것이다),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내각이 2016년 입안한 Bill C-16, 즉 "성적(gender) 정체성 및 표현"에 관한 차별금지·인권보호법을 비난하면서 캐나다의 연구지원기구에서 펀딩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만약 진보-자유주의 스탠스의 남성 이용자들이 자신들이 스스로 말해왔듯 "일베와 메갈의 양대 혐오세력"을 거부하는 상식적인 시민임을 주장하는 이들이라면, 한국으로 치자면 자유한국당급 수꼴에 해당하는 페터슨의 주장을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면 곤란하다(세 번째 인용대상인 크리스티나 호프 서머스Christina Hoff Sommers도 정치적 스탠스는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 주장의 학문적 신뢰도 또한 덜 문제적이지 않다).

요약하면 이 게시물은 제작자의 안티페미니스트적 '선동'을 위해 의도적으로 왜곡·선별된 내용으로, 이 내용이 서구 학계의 표준적인 "과학과 합리성"에 해당된다고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woman equality

나는 단순히 팩트체킹을 넘어 생각해볼 거리 세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첫째, 이 게시물이 일관성을 갖춘 카드뉴스 형식으로 제작되었음은 한국 온라인의 안티페미니즘이 단순히 몇몇 익명 사용자들의 개인적인 반동이 아닌 보다 조직된, 적어도 주도면밀하게 의도된 형태로 발전하고 있음을 추정하게 한다. 나는 아직 한국 온라인 안티페미니즘을 특별히 추적해본 적은 없지만, 이런 형태의 게시물이 처음 등장한 게 아님을 감안할 때 이처럼 정기적으로 영미권의 논자를 선별하여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메시지로 왜곡하고 (혹은 이런 내용의 영미권의 온라인 안티페미니즘에서 원본소스를 받아 번역하고) 깔끔한 카드뉴스 형태로 제작 및 유포하는 그룹 혹은 개인이 존재한다는 추측이 특별히 틀릴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자유경제원-뉴라이트 식의 조잡한 이데올로기를 지속적으로 카드뉴스로 만들어 유포한 "자유주의" 페이스북 페이지만큼은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한국의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이 여기에 대처하지 않는다면 성평등의 달성까지 나아가야 할 거리가 훨씬 더 길어질 수 있다.

둘째는 수사적 전략에 관한 것이다. 2010년대 중반의 온라인 페미니즘 발흥에서 자주 등장한 수사적 전략 중 하나는, 페미니스트들이 영미권의 여성주의자 혹은 여성주의 학술연구를 가져오면서 다양한 여성혐오·성차별의 존재를 부인하는 남성들을 "미개"하고 비합리적인 존재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가짜"(fake) 서구 학술장의 기원을 만들어내어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하고자 했던 "나무위키 젠더 이퀄리즘 날조 사건"에서 안티페미니스트들이 이러한 수사적 전략을 차용했음을 알 수 있다(http://begray.tistory.com/403https://namu.wiki/w/나무위키%20성%20평등주의%20날조%20사건 참고). MLBPARK의 게시물은 한국 온라인 안티페미니스트들이 "서구 학술장"의 지적 권위를 상상적으로 만들어내는 전략을 계속해서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확실한 사실은 한국의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이 여기에 전통적인 악플·조롱으로 대응할 경우 이는 정확히 안티페미니스트들이 의도한 "비합리적인, 따라서 목소리를 인정할 필요가 없는 페미니스트들"이라는 프레임에 걸려드는 선택일 거라는 점이다.

셋째, MLBPARK의 해당 게시물에 달린 댓글에서 볼 수 있듯-물론 SNULife를 포함한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해당 게시물에 우호적인 사용자들은 카드뉴스 내용의 출처를 검색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공정하게 말하자면, 해당 게시물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접근한 이들은 있었다). 어느 정도 영어를 읽을 수 있다면 위키피디아만 찾아봐도 그 문제점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일종의 '가짜뉴스'에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비판적 집단지성은 작동하지 않았다. 반드시 MLBPARK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데, 우리는 특히 '외국어 학술자료'로 간주되는 내용에 대해서 온라인 사용자들의 비판적 집단지성이 기능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특히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작된 내용일 경우 이용자들의 확증편향이 그대로 작용할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온라인 공간을 통한 시민들의 정치적 의견"은, 특히나 가짜뉴스의 시대에, 그 자체로 옳바른 판단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페미니스트들을 포함해 진보진영에 속하는 이들은 초월적인 집단지성을 믿거나 섣부른 회의주의로 빠지는 대신 이런 류의 이데올로기 산포에 어떻게 전략적으로 대응할지 연구하고 고민하는 쪽이 더 효과적인 행동양식이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BeGray]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