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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은 '신유교주의 포르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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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검색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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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허트(Michael Hurt)가 쓴 〈케이팝은 신유교주의 포르노다(K-pop Is Neo-Confucian Pornography)〉를 읽었다. 얼마 전 이 글의 영어원문이 SNS에 올라왔을 때 조금 읽다가 뒤로 미루어두고 잊어버렸는데, 이틀 전 한국어 번역문이 공개되었다. 한국어 번역 텍스트를 두 번 읽은 뒤 내린 결론은 (적잖게 고생했을 한국어 역자에겐 미안하지만) 이 글에 괜히 시간을 투자해 영어로 읽을 필요는 없었으며, 마찬가지로 이 글이 유효한 통찰을 준다고 믿을 이유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를 꼽고 싶은데, 첫째, 이 글의 논지 전개는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서부터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둘째, 조선 후기 정치사상을 전공한 지인에게 이 글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그에 따르면 이 글에서 "유교"에 대해 언급하는 대부분의 사항들은 틀렸다.


그러니까 이 글의 주장은 그냥 논리적으로 틀렸다.


1.

문화연구식 글쓰기의 나쁜 클리셰를 거의 압축하듯이 모아놓은 이 글의 주요 논지는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정리될 수 있다.


A. (신)유교는 여성을 성애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며 주체성을 박탈한다(필자는 암묵적으로 유교가 여성을 "포르노"의 대상으로 만든다고 전제하는 것 같다).
B. 현대 한국에서 유교주의는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발휘하고 있으며, 특히 여성인물의 재현에서 그러하다.
C. 로타와 최근의 (일부) K-Pop은 여성을 "소녀"로 묘사하는데, 이때 "소녀"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능동적인 주체성을 박탈당하고 성적 대상으로서의 정체성만을 갖는다.
D. 따라서 (로타 등을 포함한) K-POP은 신유교주의적 포르노다.

이 네 가지의 명제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좀 더 간단하게 만들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신유교주의(P)는 여성을 포르노의 대상으로 만든다(Q), K-POP(R)은 여성을 포르노의 대상으로 만든다(Q), 따라서 K-POP(R)은 신유교주의(P)적 포르노다. P⇒Q, R⇒Q, 따라서 R⇒P. 청소년기에 위기철 선생의 〈논리〉 3부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것이 일종의 오류논증이라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사람은 죽는다, 닭도 죽는다, 따라서 닭은 사람인가?). 그러니까 이 글의 주장은 그냥 논리적으로 틀렸다.


유교적 여성관의 특징이라고 지적하는 사항들은 여성혐오라고 부르는 것들의 사례를 모아놓은 것과 차이가 없다.


좀 더 진지한 독자들을 위해 비판을 덧붙여 보겠다.

첫째, 필자는 자신이 "한국의 모든 것을 유교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 글만 놓고 봤을 때 그는 정확히 자기 자신이 정의하는 바보에 해당한다. 그는 한국학 연구의 낡아빠진 오류를 비판하지만, 정작 2010년대의 한국문화를 설명함에 있어 신유교주의 말고 그 어떠한 문화적 원천도 언급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현대사회가 그러하겠지만) 한국은 굉장히 다양한 문화적 원천들의 충돌과 타협을 통해 만들어진 사회다. 당장 90년대 이후의 한국 대중문화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80년대까지의 유산은 일단 괄호에 넣는다고 하더라도, 미국과 서유럽, 홍콩,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서 거시적인 설명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자신이 주된 소재로서 언급하는 포르노의 경우, 아주 당연하게도 (주로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그러나 매우 폭넓게 유통되는) 일본 포르노의 영향 없이 한국의 포르노 문화를 말할 수 없다. 필자가 주요한 사례로 꼽는 로타의 경우도 일본의 특정한 사진풍을 그대로 가져온 게 아니냐는 비판을 누차 받아왔다. 간단히 말해, K-POP의 포르노적 성격을 규명할 때 왜 일본 포르노 문화가 아닌 신유교주의의 영향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어야 하는가?

둘째, 그가 유교적 여성관의 특징이라고 지적하는 사항들은 너무나 크고 광범위해서, 그냥 우리가 (최근의 유행을 따라) "여성혐오"라고 부르는 것들의 사례를 모아놓은 것과 차이가 없다. "여성을 남성에 비해 계급적, 권력적으로 낮은 위치에 두는 것", "여성의 정숙이 자원으로서, 혹은 인간으로서 그를 정의하는 가치의 핵심"이라는 것, "여성의 신체에는 주체가[주체성이] 없다"는 것, "사회는 자라서 아이를 낳는 능력으로 여성을 평가"한다는 것 등등의 진술이 나오는데, 여성주의 및 여성혐오에 관해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항의 대부분이 특별히 "유교적"이라기보단 대부분의 남성중심적 문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서구 중세 로맨스를 보면 이런 여성혐오 정도는 언제든 삽으로 퍼낼 수 있을 만큼 가득한데, 그걸 분석거리로 삼는 게 중세 페미니스트 문학비평의 한 흐름이기도 했다). 일본에는 저런 문화가 없나? 미국 청교도 문화에는 그런 게 없었나(필자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 같은 건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른 문화권 혹은 다른 포르노 문화의 여성관과 "유교적" 여성관의 유의미한 차이를 짚어내지 않는 한 필자가 주장하는 "유교적 여성관"이 딱히 유교적일 이유도, 따라서 K-POP이 딱히 "신유교주의적 포르노"일 이유도 없다.


그가 유교에 대해 아는 것은 막연히 위계적이고, 여성억압적인 동양의 나쁜 풍습이라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2.

그렇다면 그가 유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진술들은 얼마만큼이나 정확할까? 늦은 시간 나의 귀찮은 질문에 답변해 준 Jean Soh 선배에게 감사드리면서 그의 코멘트를 정리해서 옮겨본다.

1) 전통적인 신유교적 입장에서 논개는 실존인물인지도 확실하지 않고 충, 효, 열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오랫동안 도외시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전투에서 패배한 진주지역의 양반들이 지역살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의"라는 영역을 굳이 만들어서 포장한 인물이다.

유교는 여성의 신체에 대해서 (허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여성의 정숙, 즉 순결하고 번식에 용이한 유기체라는 개념이 여성의 삶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논개의 죽음은 정당성을 얻는다"라고 보지 않는다. '정숙=순결'이 아니다. 유교는 기본적으로 관계윤리, 즉 자신에 대한 수양은 자신이 책임지면 되지만, 진짜 유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건 관계가 설정되면서부터다. 논개의 경우 충, 효, 열 어디에서 속하지 않는다. 누구의 아내도 아니었고, 부모를 위해 죽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가를 위해 죽은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조선에서 논개를 표창하는 데 엄청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같은 인용문의 "[여성이] 번식에 용이한 유기체[가 되는 게 중요하다]"라는 말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럼 남자는 번식에 용이하지 않다는 말인가? 번식에 용이하지 않은 유기체는 어떤 것인가?

2) "조선 유교주의에서는 남성만이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자아 수양을 할 수 있다. 조선 유교는 여성은 현자가 될 수 없으며 자아와 신체를 초월하기 위한 필요나 능력도 없다고 상정한다. 남성은 고전을 연구하며 심적인 자아를 남기며 조상숭배 제도를 통해 육체적인 자아도 남긴다. 그러나 여성은 물리적인 신체를 통해 번식하고, 가족 구성원을 유지하기 위한, 육체적인 신체로서만 존재한다. 심신수양의 상징인 '기'는 남성 신체의 대표적인 개념이다. 조선 유교에 따르면 여성은 물리적인 신체가 강조되며 남성은 신체를 초월하기 위한 측면이 강조된다."
⇒ 이게 사실이라면 조선후기에 성인이 되기 위해 글을 쓰고 교류하고 "성인은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말을 했던 양반여성들은 뭐가 되나?

"조선 유교학자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이런 말을 하는 조선유학자들은 없다. 음과 양은 동등성을 갖는 짝이다. 유교가 대중화되면서 음양/천지/상하/고저와 같은 반대되는 개념들의 짝이 양-천-상-고/음-지-하-저와 같은 연속적 개념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여성들을 폄하하거나 남성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존재했지만, 유학자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유교는 (민주주의가 무의식적으로 시민에서 남성이란 말을 빼고 인간이라고 지칭한 것과 유사한 의미에서) 인간들이 본성적으로 동일하다고 믿는다.

"미래의 신부감을 고르는 데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여부가 중요했다"는 말은 앞뒤가 안맞는다. 신부가 애를 낳아보고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그 신부가 임신할 수 없는 몸인지의 여부를 어떻게 확인하나. 물론 여성의 경제활동이 제한되고, 제사가 중요한 가부장사회에서 아들을 낳는 것이 여성의 중요한 역할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미래의 신붓감을 고르는 데는 남자와 여자의 사주팔자가 잘 맞는지를 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해도 남자와 사주가 안 맞는 여자와 결혼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애를 못 낳는 부부도 상당히 많았고,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혼을 만약 쉽게 하거나 첩을 통해 아들을 얻어서 적장자로 만들 수 있었다면 조선후기에 그렇게 많은 입양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3) "조선시대에서 '좋은 소녀'는 소년과 내외해야 했으며 혼자 외출할 수 없었고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 조선시대에 정말 좋은 집안들은 여성교육에 엄청 신경 썼고, 교육받은 여성이 일종의 가문의 교양의 지표였다. 물론 여성의 말은 담장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억압이 존재했고, 학파마다 여성에 대한 교육수준이 달랐지만, 조선시대 내내 여성이 교육받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롤리타 얘기의 경우, 애초에 어린애들이랑 섹스하고 결혼하는 게 문제가 안되는 [조선]사회에서 소녀가 무슨 의미가 있나?

4) 서양개념으로 충분한 설명을 굳이 유교를 가져오는 이유를 모르겠다. 조선시대에 여성에 대한 억압이 없던 건 아니지만 지금과 양상이 달랐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하다. 조선은 처녀에 대한 규제보다는 남편 없는 여자(이혼당했거나 남편과 사별한 여자)의 성에 대한 관리에 더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언급된 것들이 다 유교의 잔재면 저 가운데 서양의 영향과 유교의 영향의 퍼센티지는 각각 어떻게 되는지 묻고 싶다.

위와 같은 코멘트를 종합하면, 필자는 기본적으로 유교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마 그가 유교에 대해 아는 것은 막연히 위계적이고, 여성억압적인 동양의 나쁜 풍습이라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K-POP의 포르노적 성격을 비판할 수 있고, 유교가 얼마나 현대 한국사회에서 부적합한 이데올로기인지도 말할 수 있다.


3.

결론을 내리자. 필자에게 현대 한국을 학문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만한 역량이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는 현대 한국문화에 작용하는 다양한 힘들도 모르고, 유교에 대해서도 잘 모르며, (인접분야에서 훈련받은) 내가 볼 때는 딱히 문화적 텍스트를 잘 분석하는 것 같지도 않다. 다양한 개념들을 거의 불필요한 수준으로 소환하곤 하지만 글의 기본적인 뼈대부터 오류논증이라는 건 건 치명적이다. 우리는 K-POP의 포르노적 성격을 비판할 수 있고, 유교가 얼마나 현대 한국사회에서 부적합한 이데올로기인지도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걸 말하기 위해 가치 없는 글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가며 읽을 필요는 없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BeGray]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