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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적은 평등이 아니라 불평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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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면 게을러진다. 그러면 성장이 정체된다. 성장하지 않으면 모두가 먹고살기 어려워진다. 조금은 불평등해야 경쟁에서 이겨 큰 몫을 차지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혁신하게 되고, 그래야 성장이 일어난다.'

성장론자들이 오랫동안 믿었던 신화다. 복지 논쟁에서, 임금 책정을 둘러싼 논란에서 항상 등장하는 이데올로기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그것도 변방의 변화가 아니다. 자본주의 한복판인 미국과 주류경제학계에서의 변화다. '불평등'이 전세계인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최근 상황을 보면 분명 그렇다.

출발은 미국이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미국의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이 10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근접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2014년 10월 보스턴 연준이 연 '경제기회와 불평등' 콘퍼런스에서 미국의 불평등 정도와 지속적 확대 추세를 우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미국의 불평등이 19세기 이래 가장 오래도록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점도 실증적으로 지적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 의장은 보통 경기 상황이나 통화정책에 대해 발언한다. 많은 경우 '전략적 모호성'을 동반한다. 그 한 마디가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연준 의장이 경기 상황이나 통화정책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그런데 불평등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중앙은행의 책임자가 불평등을 거론하게 된 것은, 그만큼 불평등 문제가 시스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되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옐런 의장은 2008년 금융위기 때 불평등이 일시적으로 작아졌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던 것이 경기가 조금 회복되면서 오히려 다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 역사상 대부분 기간보다 높은 불평등도를 보이게 됐다.

물론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불평등이 커지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 대부분 가정의 생활수준이 정체하거나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연준이 미국의 6000가구의 가계수지를 1989~2013년 기간 동안 조사한 결과, 상위 5% 가구의 실질소득은 38%가 커진 반면 나머지 95% 가구의 실질소득은 10%도 커지지 않았다. 상위층으로의 소득 집중도가 높아졌다.

또 상위 5%가구의 보유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54%에서 63%까지 커졌는데, 하위 50% 가구가 보유한 자산의 비중은 3%에서 1%로 작아졌다. 부와 빈곤의 대물림 현상이 심각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미국의 계층 이동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지적이다.

재닛 옐런의 이런 지적은 이전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나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등이 이전에 여러 저작물에서 지적했던 내용이다. 대체로 미국 경제가 20세기 이후 가장 높은 정도의 불평등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진단에는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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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촌으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뒤로 강남구 일대의 고급 고층 아파트들의 마천루가 보인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불평등이 커지는 현상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주요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7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았을 때, 사실 OECD국가들의 불평등 및 빈곤율은 이미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뒤 소득불평등도는 좀 더 극적으로 커진다. OECD가 집계한 결과, 데이터 수집이 가능한 17개 회원국가에서 2010년까지 3년 동안 근로 및 자본소득의 불평등지수는 그보다 앞선 12년 동안의 상승폭만큼 커졌다.

게다가 저소득층 가구의 소득은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감소하거나 더딘 회복세를 보였다. 아동과 청년 빈곤율이 높아진 반면 노인층의 소득은 상대적으로 변화가 작았다. OECD국가의 노인빈곤율은 평균 20% 가량 하락하면서 아동과 청년빈곤율을 하회했다.

한 때 아시아에서 '중산층 국가'의 모범을 보여주던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1970년대 일본은 '1억 총중류'라는 말이 유행하며 전 국민이 중산층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나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는 여느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불평등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소득 불평등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계속 상승하고, 고령자들의 삶은 점점 더 열악해져 '표류노인'이라는 새로운 유행어가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평생고용 신화는 깨어지고 저임금 임시직 노동자 비중이 현격하게 커졌다.

이 모든 논의에 한 획을 그은 것이 바로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의 <21세기 자본론>이다. 피케티 교수는 '세습자본주의'라는 한 마디로 최근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불평등의 흐름을 정리한다. 자본주의가 지금처럼 진행되다가는 자본 소유의 집중도가 점점 더 높아져서 세습받지 않고서는 자산을 보유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다.

피케티는 불평등 논의를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버티는 가장 중요한 윤리적 기반은 '능력주의'(meritocracy)이다. 개인이 정해진 규칙 안에서 노력을 통해 소득을 늘리고 자산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은 과거 그 어떤 경제체제보다도 자본주의를 윤리적으로 정당화하는 논리였다.

그런데 피케티 교수의 논리에 따르면, 21세기 자본주의는 그런 윤리적 근거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불평등이 그 원인이다. 피케티는 1980년대 이후 현대자본주의가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시기이던 프랑스의 '벨 에포크 시대' 또는 미국의 '도금시대'로 귀환하기 시작했다고 봤다. 벨 에포크 시대와 도금시대는 불평등이 극에 달했을 때인데, 여러 수치로 볼 때 1980년대 이후 분석대상 국가들이 그 시기의 불평등도와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동과 달리 자본에서 나오는 소득은 이를 보유한 소수에게 집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한 나라의 국민소득 중 자본소득의 비중이 늘어나면 소득불평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자본을 소유한 부자들이 더 많이 저축하면서 자본은 더 크게 늘어나며 불평등이 세습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피케티는 자본수익률(r)과 경제성장률(g) 사이의 관계에 따라 불평등도가 달라지며, r>g인 상태에서는 자본소득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커지며 불평등이 심화하게 된다는 이론을 세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수익률은 4~5% 수준에서 유지되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선진국에서 경제성장률이 이를 현저히 밑돌고 있다. 따라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웃돌며 불평등이 심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자본소득의 비중도 더욱 높아지면서 세습자본주의 시대가 개막되리라는 게 피케티의 생각이다.

자본소득이 커지면 자본소유자들이 높은 저축성향을 보이며 이를 다시 저축하며 더 키우게 된다. 이런 자본이 상속되면서 후세대는 자본을 물려받아야만 경쟁할 수 있는 세습자본주의 시대에 살게 된다. 결국 능력과 노력을 통해 시장의 승자를 가린다는 자본주의의 약속은 형편없이 깨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사실 가장 보수적이라는 주류 경제학계에서조차 이렇게 불평등 논의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게 된 데는 다른 배경도 있다. 불평등이 지나치게 커진 나머지 이제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데까지 이르게 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2014년 8월 흥미로운 보고서를 내놓는다. '미국의 소득불평등이 인구 대다수를 경제성장의 이득으로부터 배제시켜, 결과적으로 미국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게 골자다.

신용평가회사가 불평등 문제를 우려하는 보고서를 내놓는 것은 이례적이다. 신용평가회사는 투자자들을 위한 평가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투자 대상의 안정성을 주로 분석하는 곳이 불평등 문제에까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불평등이 금융시장 자체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자각이 있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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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2014년 말 경제성장의 최대 걸림돌로 소득 불평등을 지목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OECD는 '소득 불평등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1980년대에는 소득 상위 10%가 소득 하위 10%보다 7배 더 많은 소득을 가져갔으나 현재는 9.5배 더 가져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소득 불평등 확대는 성장에 영향을 끼친 가장 큰 단일 변수"이며 분명한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론적으로 OECD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정부의 적극적 재분배 정책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부유층의 세부담을 늘리고 국민들에게 양질의 공교육 및 건강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정부 지출을 써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부유층에게 소득이 생기면 그 소득이 사회 전체로 퍼지게 된다는 '낙수효과'를 부정하는 내용이다.

한국 사회를 돌아보자. 피케티의 '세습자본주의'는 이 땅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극소수 재벌과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1955~1963년 출생자들을 흔히 베이비붐 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이 이제 막 60대로 진입하고 있다. 자식들은 이제 사회 초년병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1970년대부터 대규모로 지어지기 시작한 서울 및 수도권의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었던 세대다. 이들 중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모을 수 있던 이들이 그 아파트를 사고 자산을 불렸다.

이들이 그렇게 형성한 자산을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을 시작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산 세습은 인구의 0.1%도 되지 않는 거액 자산가, 거대자본이 국가의 비호를 받으면서 형성한 부를 세습하는 재벌의 3, 4세 세습과 다른 의미를 띤다. 숫자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이 세대는 특혜를 받은 게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재산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그 자식들은 그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로 나뉜다. 출발선이 달라진다.

이 나라는 전쟁의 폐허 속에 모두가 똑같이 맨손으로 출발해, '내집마련'을 목표로 삼아 한 시대를 살아온 나라다. 그러던 사회가 한 세대를 거치면서 처음부터 출발선이 다른 시대를 맞게 됐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는 전혀 다른 질서를 지닌 사회에 살게 되는 셈이다.

한국사회의 역동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는 어쩌면 사회 전체가 '세습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물려받지 않으면 소유할 수도 없다. 단순화해서 이야기하자면, 노력할 유인이 없으니 역동성이 떨어질 것이고 성장은 정체될 것이다.

어찌 보면 피케티가 설정했던 문제도 불평등 그 자체는 아니며, '세습자본주의를 구축해 시장 진입의 기회를 막을 정도로 심각해진 불평등'이다. 바로 그 문제가 한국사회에 등장하고 있다.

공무원시험에 몰리는 청년들의 관심이 이를 방증한다. 가진 것 전혀 없어도 시험만 잘 보면 평생 경제적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어쩌면 유일하게 세습자본주의로부터의 자유로운 영역이다. 한국사회가 그런 평등의 공간을 열망하는 청년들에게 그런 공간을 넓혀주기는커녕 비웃거나 부추기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평등은 더 이상 성장을 가로막지 않는다. 오히려 불평등이 성장을 가로막는다. 자본주의의 적은 평등이 아니라 불평등이다.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