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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가 덮쳤던 도호쿠에서 희망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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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3년이 지났다. 지난 번 글에서처럼 간접적으로 도호쿠 지역의 실상을 접하면서 궁금해졌다.
대재난을 겪은 지역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일본은 다시 일어서고 있는 것일까? 사회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도호쿠 지역을 방문해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던 도호쿠는 일본 혼슈 동북지방의 아오모리 현, 이와테 현, 미야기 현, 아키타 현, 야마가타 현, 후쿠시마 현의 6개 현을 뜻한다. 이 가운데 미야기, 이와테, 후쿠시마 3개 현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전체 1만5천여명의 사망자 가운데 미야기 현이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일본은 47개 도/부/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개의 현/도/부 인구는 도쿄나 오사카 나고야 같은 대도시를 끼고 있는 경우 500만~1200만명 가량이고 적게는 80만명이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지방 현은 100만~300만명 가량의 인구가 살고 있다.
후쿠시마 현은 200만명, 미야기 현은 150만여명이 살고 있다. 미야기 현의 경우 인구의 10% 가량이 사망이나 행방불명됐다.

동일본 대지진은 지진, 쓰나미, 원전 사고의 세 가지로 나누어 봐야 한다. 지진은 도쿄까지 포함해 일본 동부 지방 전체를 강타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인명 피해는 대부분 쓰나미에서 나왔다. 쓰나미가 바로 이 3개 현의 해안지역을 덮쳤다.

도호쿠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는 미야기 현에 있는 센다이다. 우선 센다이를 방문했다. 센다이는 대도시이며 내륙지방이다.
도착하자마자 만난 센다이의 풍경은 활기찼다. 네온사인이 번쩍였고 길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번화가 식당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
동일본은 회복되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한 군데 사회적기업을 방문했다. 편부모 가정의 아이들의 방과후 교육을 맡는 기관을 운영하는 '아스이크'(ASUIKU)였다. 대표인 눈 맑은 청년 유스케 오하시(大橋雄介, Yusuke Ohashi)씨를 만났다. 그를 통해 들은 센다이 이야기는 달랐다.
그는 후쿠시마 현 출신인데, 동일본 대지진 이전 그는 미야기 현 센다이의 NPO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3.11 대지진 이후 아스이크를 설립했다. 이 비영리단체는 지진 피해지역에서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그가 지진 피해지역 어린이들을 돕겠다고 나선 이유는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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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케 오하시 대표.

대재난 이후 가장 힘든 이들은, 가장 어려운 지역의 가장 약한 이들이었다. 결국 어린이 문제로 관심이 집중됐다.
어려운 이들은 대재난 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유스케씨는 대재난 뒤 긴급구조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센다이 시의 5개 지역 중 2개 해안 지역이 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입었다. 거기 사람들은 내륙으로 이동해 3개월 동안 체육관에서 살아야 했다.
그곳은 거의 노숙인들의 거처 같아 보였다. 피해자 일부는 정신이상자처럼 보일 정도로 엉망이었다. 옷도 없고 씻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중학생이나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옷을 입지 않은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삶을 버틸 수 있는 정신적 힘이 없어 보였다. 다들 정신을 놓고 지냈다. 모두 그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던 것은 당연하다. 어떻게든 나가서 지낼 곳이 있는 이들은 대부분 나갔다.

3개월 뒤 이들은 임시주거시설로 옮겼다. 체육관에서 가건물 형태의 주택으로 옮긴 것이다. 센다이에는 90군데 임시주거시설이 있었다. 한 곳에 20-300 가구가 살 수 있는 곳이다. 합산하면 거의 2천개의 주거시설이 제공됐다.

여기서는 피긴급구조시설에서와 다른 종류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피난지역에서는 모두 힘들었지만 같이 있었다. 그래서 혼자 버틸 수 있는 힘은 없지만 모두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임시주거시설은 각 가족이 한 칸씩을 차지하고 따로 산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같이 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한 주거시설에 사는 이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긴급구조시설에서는 음식을 주고 자원봉사자들이 생활을 도왔다. 그러나 임시주거시설에서는 스스로 경제활동을 해서 생계를 꾸려가야 했다. 임대료를 낼 필요는 없었지만 여전히 먹고 살아야 했다. 생활의 어려움이 다시 삶을 덮쳐왔다. 생활 스트레스가 커지자 이웃 사이 갈등이 더 커졌다.

예를 들어 많은 시설에서 수공예가 중요한 일자리였다. 그런데 일에 대한 정보와 자리가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진다. 어떤 이들은 커뮤니티에서 소외 배제된다. 공동체가 너무 가깝고 다 보이고 프라이버시가 별로 없다 보니 뒷소문도 많이 생긴다.

특히 원래 센다이 시에 살지 않다가 재난으로 들어오게 된 사람이 2천여명이 있었다. 이들은 새로 온 사람들은 일자리도 없고 관계도 없다. 고립되어 있었다. 그들 스스로도 서로 누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정보를 정부는 제공하지 않았다. 프라이버시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나 비영리단체가 나서서 어려운 이들을 도우려고 해도 도울 수가 없었다.

임시주거시설 사이에도 경제적 수준이 달랐다. 지원이 중구난방이어서였다. 어떤 시설은 지원이 많았고, 어떤 곳은 적었다. 예를 들어 가장 큰 임시주거시설은 일본 왕과 왕비가 방문했는데, 모든 엔피오가 거기 지원하고 있었다. 자원이 많아 조정이 안 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주거시설 사이에도 갈등이 생겼다.

집이 있는 이들 사이에도 피해가 큰 집과 그렇지 않은 집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새로 지을 수 있는 임시주거시설 숫자가 제한되어 있다. 땅과 재원이 넉넉지 않아서다. 그래서 센다이 시정부는 개인이 소유한 아파트 일부를 빌려 임시주거시설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를 준 임시주거시설이라고 하는데, 센다이 시 지역에 8천 개가 만들어진다. 좀 더 나은 곳에 입주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 갈등이 빚어진다.

피해자와 비피해자 사이 갈등도 생긴다. 센다이 지역에 원래 살던 비피해자들은 피해자들이 지원 더받으려고 속인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한다. 피해가 거의 없는데도 돈과 음식과 서비스를 계속 받는다는 비판이다.

문제의 시작은 자연으로부터 왔지만, 문제의 확산은 커뮤니티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진 뒤 3년이 지나자 구호물품과 자원봉사가 거의 끊기고 있다.
이런 문제를 목격하면서 유스케 대표는 3.11 대재난 백서를 직접 써서 출판했다.

유스케 대표가 그 모든 상황을 종합한 뒤 낸 결론은 이렇다.
지진 이전부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지금 더 가난하고 소외되어 있다. 경제력이나 사회적 자본이 있는 이들은 임시주거시설에서 금세 나올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빠져나올 수도 없다. 실은 지진 이후 드러난 모든 문제가 지진 이전부터 있던 문제다. 대재난이 그 문제를 보이게 만들었을 뿐이다. 소외계층의 문제, 빈곤문제, 농촌문제 등이 모두 그렇다.

유스케 대표의 눈에 가장 크게 띈 문제는 아동 빈곤이었다. 예를 들어 임시주거시설에서 한 홀어머니를 만났는데, 아이가 10명이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갈 나이가 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는 임시주거시설에서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질문으로부터 유스케 대표의 활동이 시작됐다.
그가 시작한 아스이크는 센다이 시정부와 협력해 새로운 프로그램 시작했다. 아스이크는 교실과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지방정부는 돈과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의 협업이다. 아스이크가 문제와 해법을 제시하고, 거기 필요한 자원 중 일부를 시정부에서 제공하는 것이다. 시정부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은 어려운 아동이 어디 있는지를 알려주고 그 아동을 찾아갈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다.

아스이크의 미션은 명확하다. 빈곤 아동들이 나중에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역량을 갖추게 해주는 일이다. 아스이크가 교육대상 아동 가운데 대부분이 편모 슬하에서 자라고 있다. 이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 능력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는 계속 이어진다. 이들이 학습능력을 갖추고 최소한 고등학교에 진학하도록 하는 게 이 단체의 목표다.

이를 위해 아스이크는 방과후 학습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학습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편모가 경제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아이 혼자 방치되어 있을 시간이다.

문제는 실제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다. 아스이크는 교실 e-러닝을 방법론으로 택했다.
작은 그룹마다 교사를 투입해 가르치는 방식은 재정적으로 어렵다. 처음에는 자원봉사 교사를 투입해 진행할 수 있겠지만, 장기간 자원봉사를 하는 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는 잦은 교사 교체로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수업의 질도 관리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집에서 e-러닝을 하도록 지도하기도 어렵다. 이 아이들에게는 더욱 어렵다. 따라서 컴퓨터를 제공하고 교실에서 자원봉사자의 간단한 지도 아래 e-러닝을 진행하도록 한다. 아이들의 흥미도 끌면서 수업을 할 수도 있고, 사업모델로도 확장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지역에 프로그램을 열더라도 새로운 교사를 채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아스이크는 좋은 파트너십을 만들어 냈다.
우선 e-러닝 프로그램을 기존에 교육사업을 하는 기업으로부터 기부받았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추가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 사회공헌활동이다.
또한 지역 생활협동조합과 손을 잡고 교실 공간을 기부받았다. 생협은 주로 조합원을 위한 교육공간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공간을 방과후 학교 수업에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에 지역 취업지원센터와 함께 협업을 시작했다. 교육대상 아동의 부모나 형제는 대부분 일자리 문제를 겪고 있다. 아동 상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문제를 취업지원센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센다이의 휘황찬란한 불빛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재건 거품이었다.
돈이 돌고 있다. 그러나 생산이 회복되어서 돈이 도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돈을 풀어 건설공사를 벌이면서 일시적으로 도는 것이다. 공사가 끝나는 2-3년 뒤면 모두 사라질 거품이다.
사람이 몰리고 있다. 그러나 지역이 매력을 회복해서 사람이 몰리는 게 아니다. 주변의 더 어려운 이들이 살아갈 수가 없게 되어 대도시로 온다. 그나마 여기에는 재건 거품이 있으니 지금은 일자리가 있다.

문득 한국의 폐광지역이 떠올랐다. 지역기업 강원랜드가 새로운 시설을 지을 때마다, 태백 정선 영월군에는 돈이 돈다. 일자리가 생긴다. 장사도 된다. 그러나 그 때뿐이다. 2-3년이 지나 공사가 끝나면 다시 제자리다. 한 때 휘황찬란했던 탄광지역 도시는 완전히 몰락한 상태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물건 대신 카지노 상품권을 팔거나 '깡'해주면서 살아간다.

유스케 대표가 전해준 센다이의 모습은 우울했다. 하지만 센다이에서 사회 혁신을 꿈꾸는 유스케 대표의 모습은 희망적이었다. '문제가 보이게 되면 오히려 풀기 쉬워진다'는 그 청년의 말 속에서 고도성장기와는 다른, 새로운 일본사회가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은 다음 세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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