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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뒤 한국, 쓰나미 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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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와초등학교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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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를 겪은 사람들은 다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던가요?"
"두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에게 진짜로 벌어진 일을 밝혀 세상에 들려 주세요.' '우리가 겪은 비극으로부터 사회가 뭔가를 배우면 좋겠습니다.'"

지난 번 글에서 밝힌 대로 한국계 미국인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미나 손의 다큐멘터리 발표회에서 내가 던진 질문에 손 감독이 한 대답이다. 일본국제교류기금과 국제문화회관이 도쿄에서 진행하는 '아시아 리더십 펠로우 프로그램' 중 한 발표회에서였다.

쓰나미 피해자들은 여전히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신들이 겪는 고통이 헛된 것이 아니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그 고통으로부터 사회가 무언가를 배우고 한 걸음 나가야 치유가 시작될 것 같았다. 세월호 사건이 어른거려 먹먹했다.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가 덮친 도호쿠 지역은 여전히 상처투성이다. 남은 이들에게는 일상이 고통의 쓰나미다.

오구마 에이지 게이오대 교수에 따르면 재난 3년이 지난 시점까지 27만 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10만 명이 임시주거시설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이 속속 떠나면서 인구가 30%나 줄어든 마을이 수두룩하다.

경제 기반은 무너졌다. 정부가 돈을 풀어 건설 공사를 벌이면서 공공근로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지역 토호의 권한을 키우고 주민들의 정부 의존성을 높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회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 지역의 성폭력과 가정폭력이 그 전보다 늘어난 것으로 보고된다. 이대로라면 늙거나 병들거나 가난해서 떠날 수 없는 이들만 남은 지역이 될 지도 모른다.

대재난은 한 사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미래를 앞당겨 보여준다. 쓰나미를 맞은 도호쿠 지역도 마찬가지다. 이미 활력을 잃어 인구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미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곳이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의 미래를 쓰나미가 앞당겨 보여준 셈이라고 오구마 교수는 해석한다.

오카와초등학교에서는 전교생 108명 중 74명과 교사 10명이 세상을 떠났다.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되고 조사가 진행되어 올해 2월에 보고서가 나왔다. 그들은 쓰나미 경보 뒤 50분을 학교 운동장에서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가만히 있으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다렸다는 세월호의 승객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경고가 나온 뒤 바로 학교 뒷산으로 피신했으면 모두 살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왜 이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기다리고만 있었을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교육시스템일까, 명령과 복종의 문화일까, 대재난에 둔감한 시민의식일까?

1만5천명에 달하는 쓰나미 사망자 중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이런 사연이 있었을까? 그들의 진실은 얼마나 드러나 있을까?

오카와초등학교 유족들은 지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여전히 진상 파악이 부족하다고 여겨서다. 이들은 '사실이 애매한 채로 남아 있으면 우리가 미래에 무엇을 남기고 노력해 나가야 하는지도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한다. 정부나 언론은 진실을 덜 드러낸 채로 '일본은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럴수록 상처는 계속 덧난다.

세월호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두 가지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진짜로 벌어졌던 일을 피해자의 시선으로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리고 사건 발생과 구조과정에서 나타난 한국사회의 문제를 시민의 시선으로 드러내야 한다. 특정인의 법적 책임을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사회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3년 뒤 되돌아보면, 한국사회는 세월호 사건으로부터 무엇을 배웠을 것인가. 무언가를 변화시키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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