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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 뒤의 일본, 리쿠젠타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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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직후의 이와테(岩手)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

제가 참석하고 있는 'Asia Leadership Fellow Program'의 일환으로 한국계 미국인 Mina T. Son 감독의 '제작 중 영화 중간 발표회'라는 특이한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제작 중간에 가편집본을 보여주고 코멘트를 받는 자리였습니다.
도쿄에서 '리쿠젠타카타, 2014년'이라는 제목의 30분 짜리 가편집본 다큐멘터리를 보고 상념에 잠겼습니다.
리쿠젠타카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곳 중 가장 심하게 타격을 입었다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쓰나미 전이나 뒤나 리쿠젠타카타에 살고 있는 중년의 다카는 나쁜 남자였습니다.
동네에서 늘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피해를 주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쓰나미를 계기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착하게 살기로' 결심했답니다.
그는 요즘도 리쿠젠타카타의 바닷가를 무작정 거닙니다.
그리고 원래 바닷가에 있던 물건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물건을 모조리 주워 보관합니다.
사람의 옷도, 깨진 세면대 조각도 그의 수집품입니다.
언젠가 그 바닷가에서 사람의 뼛조각을 발견하고 수습한 뒤 생각해 낸 봉사활동입니다.
그는 스스로 변화하면서 이겨내려고 합니다.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변화하면서 말입니다.

쓰나미 때 아들을 잃은 아버지 주니치는 그 때 하던 가게를 아직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힘겹지만 가게를 이어가는 이유는 아들 탓입니다.
그의 아들은 세상을 떠나기 전 아버지 가게에서 너무나 열심히 일해줬다고 합니다.
주니치는 그 때 그 가게의 간판이 쓰나미에 휩쓸려 어느 자동차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낡고 흠집난 간판을 액자에 잘 넣어 가게에 걸어 둡니다.
아들의 기억이 그 간판을 통해서라도 이어가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는 기억하고 이어가면서 이겨내려고 합니다.

도쿄에 일자리를 구하러 나가 있었던 소녀 가나코는 쓰나미로 자신의 가족 모두를 잃었습니다.
가나코가 졸업한 학교는 바다에 휩쓸려 엉망이 되었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습니다.
"나는 원래 이 동네를 싫어했어요"라면서도 쓰나미 뒤 그 곳으로 돌아간 가나코는 "그래도 학교가 여기 남아 있어서 기뻐요"라며 밝게 웃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잊으면서 이겨내려고 합니다.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은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사회로부터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나요?"
손 감독이 만난 지역주민들은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진짜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세요. 우리가 진짜 어떤지를요."
"우리가 겪은 비극으로부터 일본사회가 뭔가를 배웠으면 좋겠어요."
자신들의 진실이 여전히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자신들의 고통이 그저 헛된 것만은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싶은가 봅니다.

동일본대지진이 덮친 지역은 상처로 가득합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복잡한 어려움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다시 쓰나미처럼 닥쳐오고 있다고 합니다.
구호물품을 놓고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재건 방법을 놓고 싸움이 납니다.
재해지역을 보러 온 '재난 관광객'들로부터 돈을 벌어들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파괴된 곳을 보존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장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역의 성폭력과 가정폭력은 그 전보다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와 주류 언론에서는 '일본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류의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리쿠젠타카타에는 거대한 복구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운타운의 땅을 외부에서 가져온 흙으로 채워 10미터 높이로 다시 조성하는 공사입니다.
사고의 잔해는 모두 땅 속으로 묻히게 됩니다.
그 위에 고층아파트들이 다시 지어지겠지요.
8년을 더 기다려야 사람들은 지금 살고 있는 임시 거처에서 나와서 새로 지어진 집에 입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은 리쿠젠타카타를 밝히는 등을 준비했습니다.
아직도 실종 상태인 사람들의 뼈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길가에 달아 밤을 밝히려고 합니다.
기억하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지만, 불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곳에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그 재난을 적절하게 기억하도록 도와주는 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주는 일.
그게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요.
세상 어디서나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그 일을 마치지 못한 일본에서나.
4월 16일에서 한 장도 달력을 넘기지 못한 채 야만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한국에서나.

미나 손 감독은 그 영화가 완성되려면 2-3년은 더 지나야 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리쿠젠타카타의 사회가 재건되려면 수십년은 더 지나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꿋꿋이 기록하고, 정리하고, 대안을 이야기해야 하겠지요.

시간이 나는 대로 도호쿠에 한번 가 봐야겠습니다.
희망의 싹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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