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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계소득은 GDP만큼 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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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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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의 1인당 GDP가 발표되었는데 크게 높아진 수치가 나와서 많은 분들이 놀란 모양이다. GDP는 커지는데 내 주머니는 왜 계속 가볍고 내 삶은 힘든 것인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지난 번 여기 게재했던 글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다.

지난 번 글 '한국인은 문화적으로 자살을 선호하는가?'에서 나는 한국인의 자살률이 아메리칸 인디언 청소년의 아주 높은 자살률에 육박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분명 문화적인 이유는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한국인의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수직상승했다. 1992년 10만명당 8.2명이던 것이 2013년 33.5명이 됐다. 그 기간 동안 급격한 문화적 변화나 국민의식의 변화가 생겼을 것 같지는 않다. 실제 경찰 조사 결과로도 가장 큰 자살 이유는 경제적인 데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1990년대 중반 이후에 경제적인 삶과 관련해 생긴 변화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아니면 최소한 '자살을 택한 이들이 경제적인 것과 관련되었다고 인식하는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이 먼저다.

그런데 숫자를 들여다보면 참 답답해진다. 어쨌든 한국은 계속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모범적으로 성장한 나라다.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나라는 세계 12위 경제대국이 됐다. 1인당 국민소득은 60년 동안 100배 넘게 뛰어올랐다. 민주화가 이뤄졌고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기도 한다. 밀가루 배급 받아 살아가던 경제에서 자동차 스마트폰 만드는 글로벌 기업도 나왔다.

문제가 되는 1990년대 이후만 봐도 그렇다. 1990년대 초반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간신히 1만 달러대에 진입했다. 지금은 2만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평화로운 선거를 통해 정권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은 남쪽의 일방적인 우위로 결판이 났다.

외국 싱크탱크 연구자가 '자살을 명예롭게 여기거나 하는 문화적 이유'를 거론할 만도 하다. 대놓고 이야기하자면 이런 질문일 것이다. 도대체 뭐가 불만이냐고.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뜨고 소득 요인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분명 국민소득은 늘었다. 국가 전체로도 그렇지만 1인당 소득도 가계소득도 기업소득도 다 같이 늘어났다.

그런데 눈에 띄는 숫자가 있다.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사이의 불균형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은 비슷하게 움직였다. 즉 국민소득 전체가 늘어나면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은 비슷한 정도로 늘어났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둘 사이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특히 가계소득 증가속도는 점점 떨어져서 경제성장률보다 뒤처지는 정도가 점점 심해진다. 한국의 가계소득 증가율과 경제성장률 사이의 격차는 OECD국가들 중 가장 크다. 물론 가계 사이의 소득 격차도 문제가 되겠지만, 그 이전에 기본적으로 가계 전체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좌절감과 박탈감이 커졌을 것이다. 가계 중에서 가장 뒷줄에 서 있는 이들의 좌절과 박탈감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자살률이 수직상승하던 그 20여년 동안 벌어진 일이다.
산업연구원에서 나온 보고서 '한국경제의 가계•기업간 소득성장 불균형 문제 : 현상, 원인, 함의'에서 두 개의 그래프를 인용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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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래프를 보면, 가계소득은 GDP 성장률에 견주어 크게 뒤쳐지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초중반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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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래프에서 경제성장률과 가계소득 증가율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그 격차가 세계에서 가장 크다. 즉 경제성장의 혜택이 가계소득으로 제대로 순환되지 않는 정도가 세계에서 가장 심하다.

가계소득은 왜 이렇게 뒤처지게 되었을까?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노동소득의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다. 나라 전체로는 소득이 늘어났지만 그 소득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임금으로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국민소득 가운데 일하는 이들에게 분배된 몫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은 2000년 이후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또 실질임금은 비슷한 시기 사실상 정체 상태로 접어들었다. 특히 실질임금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노동생산성보다도 뒤처지게 된다. 즉 노동생산성이 높아져서 생긴 몫이 일한 사람들에게 분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 1980년대 이후 벌어지는 양상과 비슷하다. 미국에서도 1980년대 이후 가계소득이 부진해지고, 노동소득분배율이 낮아지며, 실질임금이 정체 또는 후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상황 때문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을 주요 과업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폴 크루그먼,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불평등 해소문제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그 시기 이후 특히 이런 현상이 생겨났을까?

흔히 미국을 금융 선진국이라고 부른다. 기업과 시장이 주도하는 사회라고도 한다. 신자유주의의 출발지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이름은 1980년대 이후에 얻은 것이다. 그 이전 미국은 상당히 다른 양상의 사회였다.

딘 베이커 CEPR(경제정책연구센터, 미국 워싱턴의 정책싱크탱크) 소장은 그의 책 <가장 최근의 미국사>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 사람들이 미국 경제의 특징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대부분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집권 뒤 보수적 정부 아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정책의 특징을 딘 베이커 소장은 '부의 상향재분배'라고 부른다. 시장에서 저절로 생겨나고 확대된 게 아니라 정부의 의도적인 정책적 노력의 결과로 생긴 새로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기업에 대해 우호적인 규제가 도입되고 노동자에 대해 적대적인 정책이 생겨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협상력이 낮아진 데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일어난 이 모든 현상이 레이건 대통령이 펼쳤던 이른바 '레이거노믹스'의 결과라면, 한국에서 이런 현상이 생기기 시작한 1990년대에 어떤 정책적 노력이 있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도 사실상 의도적인 '부의 상향재분배'가 있었던 것일까? 또는 생산된 부가 분배되지 않도록 하는 인위적인 노력이 있었던 것일까?

이 글에서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으며, 앞으로 좀 더 상세하게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다. 앞으로 여기에 쓸 글들에서도 이 대목을 좀 더 다뤄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