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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정상회담, 일본은 오바마를 어떻게 움직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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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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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일본 아베 총리와 마주앉게 됐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에 나섰다. 그 동안 일본은 새로운 동북아전략과 정상국가화를 추진하면서 한국을 지지세력으로 만들기 위해 끈질기게 정상회담을 추진했고 한국은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을 이유로 냉담했었다. 결국 일본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움직여 자신이 원하던 한미일 정상회담을 얻어낸 셈이다.

그런데 일본은 미국을 어떻게 움직였을까? 한국 대통령은 왜 미국 대통령을 자기 편으로 만들지 못했을까? 그 근원을 파고 들어가면 워싱턴 여론을 움직이는 오랜 일본의 전략을 만나게 된다.

워싱턴에서 동북아 문제와 관련된 논의과정을 살펴보면서 놀란 점이 하나 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견이 있는 내용에 대해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대부분 일본 입장에 서 있다는 점이다.

나는 최근 세 차례 연달아 한일 관계를 다루는 세미나에 참석했었다. 두 차례는 스팀슨센터(Stimson Center)라는 외교안보 전문 싱크탱크에서 열린 일본의 외교전략 관련 보고서 발표회한일관계 관련 세미나였다.

이 가운데 한일관계만을 주제로 열린 한 차례의 세미나가 흥미로웠다. 이 세미나에는 스팀슨센터 연구원이 사회자로 참석하고, 일본 게이오대학의 소에야 요시히데 교수와 한국 아산정책연구원의 우정엽 연구위원이 발표자로 참여했다.

소에야 교수는 한일관계 악화 이유로 두 정상의 조합을 들었다. 두 사람의 조합이 최악이라는 이야기다. 은근히 그동안 일본은 계속 사과하고 있는데 한국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점을 꼬집었다. 계속해서 사과하라는 말만 반복한다는 이야기다. 특히 일본 쪽에서는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일제강점기 위안부들에 대해 보상을 시도하는데 한국 쪽에서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우정엽 연구위원은 한국이 원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책임 표명과 배상이라는 점을 강조해서 말했다.

나머지 한 차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싱크탱크로 유명해진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에서 열렸다. 일본 민주당 대표를 지낸 마에하라 세이지 전 외무장관이 각종 정책현안에 대해 발표하고 현지 정책연구자들과 토론을 벌였다. 흥미롭게도 마에하라 전 장관의 발표 내용 중 한국과의 외교는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둔 이슈 중 하나였다. 그는 아베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표명했지만 영토문제 등 다른 이슈들에 대해서는 거의 동일한 입장을 보였다.

이 세미나들은 내용에 있어서는 크게 새로울 것이 없었다. 한국과 일본이 반복해서 주장하던 내용을 학자와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되풀이한 것이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쟁점이 형성될 때마다 미국 현지의 외교전문가들은 대부분 일본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청중 가운데 일부 시민운동가나 한국 패널만이 한국 주장에 동조할 뿐이었다. 그것도 전반적으로는 감정에 치우쳐 격앙된 채 일본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것으로 비치기 쉬운 태도였다. 일본의 주장은 많은 경우 세련된 용어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발표되었다. 질의응답 시간은 한국인이 손을 들고 흥분해 발언하면 미국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사례를 들어가며 일본 입장을 지지하며 반박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이들은 모두 미국 싱크탱크(독립적 정책연구소)에서 연 행사였다. 하지만 이 행사를 조직한 사람이 이들 싱크탱크에 소속된 일본인이거나, 일본 관련 재단 또는 연구기관의 후원을 받아 열린 행사였다. 특히 여기 참석해 발표한 일본인들 중에는 일본 정부에 동조하는 인사도 있고 매우 반대하는 인사도 있다. 국가주의자도 국제주의자도 보수도 리버럴도 섞여 있다. 각각 다른 입장의 정책연구자들이 각각의 세련된 논리로 역사와 영토 등의 현안에 대한 일본 입장을 미국 워싱턴에 전파한다.

싱크탱크들은 미국 정치의 거름과 같다. 워싱턴을 둘러싼 수백 개의 싱크탱크에서 나오는 아이디어가 자료와 인맥과 언론과 의회 증언 등을 통해 결국 의회와 백악관에 영향을 끼친다. 한일문제 등 외국과 관련된 이슈는 의외로 현지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세미나가 열리면 관련 분야 연구자들은 자리를 꽉 채운다. 그래서 이 곳 세미나에서 나온 이야기가 관련 분야 정책연구자들을 움직이고, 그 연구자들이 언론 기고와 의회 증언과 보고서 발표 등을 통해 여론을 형성한다.

미국 대통령이 다뤄야 할 이슈는 셀 수 없이 많다. 그 모두를 직접 검토할 수는 없다. 결국 본인과 그 지지세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 이슈를 빼고는, 워싱턴에서 형성되는 여론에 따라 방향을 정할 수밖에 없다. 그 여론 형성 과정에 가장 기초가 되는 재료를 제공하는 곳이 싱크탱크들이다.

그런데 그런 워싱턴의 싱크탱크들과 일본은 오랫동안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워싱턴에서는 보수적인 곳도 물론이거니와, 나름대로 진보적인 곳도 거의 마찬가지다. 인적 교류와 재무적 후원과 지식의 상호 교환이 점점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에 비해 한국은 거의 존재감이 없다시피 하다. 최근 조금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곳들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한국 내에서는 보수적 색채를 강하게 띤 곳들이다. 예를 들면 전경련이 후원하는 한국경제연구원은 워싱턴에서 가장 활발하게 한국 관련 이슈에 개입하며 이벤트를 벌이는 한국 싱크탱크다. 한국 내에서는 지나치게 대기업 옹호적인 입장 때문에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낮은데도 그렇다. 최근에는 정몽준 의원이 설립한 아산정책연구원이 활동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이들 한국 싱크탱크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듯 워싱턴에서 발언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나 현재의 야당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마련이다. 왜 미국의 전문가들이 한국의 진보개혁진영에 대해 그토록 거부감을 갖고 경계하기까지하는지를 쉽사리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한편으로 그들의 무지 때문이었지만, 우리 쪽의 게으름 때문이기도 했다.

한편 진보적, 개혁적 정책아이디어를 가진 한국인들은 워싱턴에서 존재조차 찾기 어렵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 때의 햇볕정책 때부터 진보개혁진영이 가져온 남북관계와 외교안보정책의 존재는 거의 과거사가 되어버린 듯하다. 한국 내에서 주요 이슈로 다뤄진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세계에는 어떻게 설명할지 실험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막 기지개를 켜고 있는 보수적 싱크탱크들과는 대조적이다. 정권과 관계 없이 오랜 시간 동안 이 곳에 뿌리를 내리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일본과는 물론 천지차이다. 한국에 대한 워싱턴 여론은 당연히 한 쪽으로 쏠리게 되어 있다.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는 워싱턴 벚꽃축제가 시작됐다. 백악관과 의회와 대법원 등 3부 뿐 아니라 미국 역사를 담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과 마틴 루터 킹의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이 열렸던 링컨기념관이 모두 모여 있는 중심부 '내셔널 몰'에는 연분홍 꽃잎으로 흐드러질 것이다.

올해로 10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축제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이 축제는 1912년 일본이 미국에 엄청난 분량의 벚꽃을 선물하면서 시작됐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이 진행된 직후다. 봄바람에 휘날리는 꽃잎들은 한반도를 강점한 일본이 서구의 환심을 사며 새로운 열강 그룹에 진입하는 가입비 중 일부였던 셈이다.

한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워싱턴 싱크탱크에서 일본의 후원으로 잇따라 열린 세미나와 발간된 보고서들은 어쩌면 일본이 심고 있는 또 하나의 벚나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아이디어와 힘과 논리를 무기로 싸우는 국제정치의 전쟁터와 같은 워싱턴에서, 문득 막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