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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움과 불편 사이, 미국에서 생각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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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tterstock / Filipe Matos Frazao
Shutterstock / Filipe Matos Frazao

"잘 사는 나라가 어디어디 있는지 아니?"
"음, 일단 우리나라가 있고요. 그리고... 미국도 잘 사는 나라인가?"

막 미국의 초등학교로 옮겨 적응을 시작한 아이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사회 과목 시간에 이런 저런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길래 짐짓 해본 질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막 한 달 미국생활을 경험한 뒤 아이에게서 나온 대답이 놀라웠다. 내가 이 나라를 처음 만났을 때와 너무 대조적이어서다.

10년 남짓 전 나는 막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고 있었다. 여행자가 아니라 생활인이 되어 만난 새로운 나라는 신기함보다는 좌절스러움을 자주 선사했다. 시장에 가서 물건 하나 사는 것부터 수업시간에 옆 자리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일까지 하나하나가 모두 낯설고 두려웠다.

그 때 부닥쳤던 수많은 문제들을 하나하나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문제를 대하던 내 태도는 분명히 기억한다. 무엇이든 문제가 생기면 나는 나를 먼저 돌아봤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해야 할 과제를 놓치고 나면 분명히 공지됐지만 그걸 알아듣지 못했을 내 귀를 자책했다. 교통경찰에게서 딱지를 받고 나면 규칙을 미리 알지 못한 나의 무지를 자책했다. 물건을 잘못 사와서는 잘못 고른 나 스스로를 자책했다. 어쨌든 이 나라는 앞선 나라이고 나는 거기 맞춰야 하는데, 맞추지 못한 내가 잘못했다고 여기기 마련이었다.

그런 자책은 곧잘 설움으로 이어졌다. '설움'이란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에 내가 맞추지 못해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드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모름지기 지성인이라면 마땅히 잘 해야 하는 영어 발음을 못해서 이상한 메뉴를 주문해서 점심을 굶고 나서 드는 느낌' 같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 아이는 '불편'이라는 표현을 쓴다. '한국은 이래서 좋고 편한데, 미국은 이래서 불편하다'는 식의 표현이다. '불편'이란 내가 더 좋고 편한 방식을 알고 있는데 이 사회가 그 방식을 아직 모르고 있어 생겨나는 어려움을 표현한 것이다. '장사를 하려면 내가 하는 영어 발음 정도는 알아들어야 하는데 그 발음을 식당쪽에서 못 알아들어서 메뉴를 잘못 가져다 주어서 점심을 굶게 될 상황에서 드는 느낌' 같은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한 때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저 앞서가는 나라로 여겨졌다. 세계에서 가장 군사력을 등에 지고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많은 달러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뿌리며 세계 위에 군림하는 나라처럼 보였다. 이 곳의 방식과 이 곳의 원칙은 다 좋고 배워야할 것이라고 여기는 정서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다. 등에 진 군사력은 힘이 아니라 짐이 되어가고 있다. 주머니 속 달러는 떨어진 지 오래라 전 세계에서 빚을 내어 쓰고 있는 나라가 됐다. 이 곳의 방식과 원칙은 심각한 의문에 직면해 있다.

그 사이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쨌든 세계 시민으로 성장했다.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전 세계 광고판에 올려놓았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세계적 모범사례이고 시민운동의 역사는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다. 세계인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한국을 본다. 김치와 고추장이 <워싱턴포스트>같은 미국 주류 매체에 수시로 등장한다. 내가 처음 유학길에 올랐던 불과 십년 남짓 전과는 대조적이다.

그 차이가 설움을 불편으로 만들었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인의 자존감을 키웠다.

한국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 50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룬 나라다. 누가 뭐래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여전히 과제와 의문은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아직도 행복하지 않을까? 왜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일까? 왜 선진국 가운데 노동시간은 가장 높은 축이고 고용률은 가장 낮은 축일까?

그래도 우리의 질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쌓은 피라미드의 위에 서서 앞으로의 진로를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론 그 피라미드를 짓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이 소모되었고 어떤 파라오의 폭정이 있었는지를 마음에 꾹꾹 새겨둔 채로 말이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꼭 그만큼 전진했다. 그리고 그만큼의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역사를 왜곡하면서 자부심의 판타지를 키울 필요도, 어두운 역사에 비통하게 기대 현재의 어둠을 과장할 필요도 없다. 이게 아마 평균적인 한국인이 가질 법한 역사의식일 것이다.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