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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브레인' 이봉조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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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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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의 별세 소식에 새벽 선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할 일이 많은 분인데..." 내 머리에 스친 두 번째 생각이었다. 이보다 먼저 떠올랐던 첫 생각은 그를 만났던 장면들과 이어져 있다.

이봉조 전 차관을 내가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전 열린 통일과 관련된 한 토론회에서였다. 창원에서 열리는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함께 한 무리의 일행과 함께 기차에 올라 대화를 나누며 '통일부 차관까지 지낸 분인데 참 소탈하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전 차관과 본격적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것은 2012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 안철수 당시 대선후보 캠프에서였다. 당시 나는 정책 전반을 조율하고 기획하며 그 내용을 언론과 연설문 등에 반영하는 정책기획실장 업무를 맡고 있었다. 이 전 차관은 통일분야 정책전문가들의 포럼을 이끌면서 안 후보를 자문하는 역할을 했다.

안 후보를 앞에 두고 그를 포함한 몇 명이 둘러앉아 통일과 안보 주요 이슈에 대한 토론을 장시간 벌이던 장면이 떠오른다. 안 후보는 매우 바쁜 선거운동 과정 중에도 긴 시간을 내어 정책전문가들과 주요 이슈에 대한 토론을 벌이곤 했었다.

이 전 차관은 매우 신중하면서도 화해, 평화, 공동번영이라는 정책기조에 대해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대북문제와 관련된 후보의 말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했었다. 이 차관은 대북문제에 대한 언론 답변이나 연설문이나 토론 원고에 대해 토씨 하나까지 밤새 고치며 새벽까지 전화로 의견을 나누던 기억이 생생하다.

워낙 다양한 분야를 조율해야 하니 정말 1분 1초가 모자라고 잠잘 시간이 없던 게 당시 상황이다. 그리고 캠프를 둘러싼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매우 거칠고 강하게 제시해 곤란한 일을 겪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이 전 차관은 늘 정제되었으면서도 예의 바르고 겸손한 조언을 보내주었다. 인간의 욕망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나고 갈등이 최고조에 있는 선거판에서, 유연하고 따뜻한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하루를 버티는 에너지가 되곤 했다.

선거 캠프가 문을 닫은 다음 날 나는 이 전 차관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저희 아버지가 평생 공직에 계셨습니다. 놀랍게도 차관님 모습에서 아버지 모습을 문득문득 발견했었습니다. 좋은 공직자의 말과 행동은 저런 것이구나, 하고 깨닫곤 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이 전 차관은 이런 답을 전했다.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 오래 기억하겠소. 뛰어난 능력을 맘껏 펼치지 못한 것 아니오? 또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오.

애써 맘을 추스르며
이봉조 드림"

이듬해 나는 선거 때 느꼈던 상념을 담은 책을 한 권 냈고 그 책을 이 전 차관에게 보냈다. 이 전 차관은 이런 내용이 담긴 말을 전했다.
"대단한 일을 경험했고 또 그 일에서 얻은 교훈을 알려주겠다니 고맙고 또 한편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오."

이 전 차관은 선거 뒤에도 안철수 후보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에도 참여했으며 새로운 정당의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제도권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고 지냈다.

대신 나는 2013년 한 해 동안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해 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는 취지의 '소셜픽션'이라는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관련된 소셜펀딩과 시민참여 컨퍼런스와 책을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도 대선 때 소진됐던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회복하고 에너지를 충전한 느낌을 받았고, 그런 이야기를 이 차관에게 전했다.

그런 내게 이봉조 전 차관은 와병 중에도 이런 내용이 담긴 새해 메시지를 건네주었다.
"여세를 모아 유쾌, 상쾌, 통쾌한 2014년 되기 바랍니다. 이원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힘찬 성원을 보냅니다. 이봉조 드림"
이미 암세포가 그의 몸에 번지고 있던 때였다.

이봉조 전 차관은 평화와 통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뜨거운 열정을 세상 누구보다도 겸손하고 신중하게 표현할 줄 알던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결단하고 실천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실 수 있는 이었다.

유연함은 때로 꽉 막힌 단단함을 뚫는다. 겸손함은 많은 경우 오만함을 이긴다. 대화와 경청이 유창한 연설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따뜻한 햇볕이 차가운 바람보다 더 빨리 북쪽 나그네의 외투를 벗겼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햇볕정책'이 그런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안철수 의원의 통일정책 브레인이던 이봉조 전 차관은 그런 '햇볕정책'을 삶과 생활로 지니고 있는 듯한 사람이었다. 그가 할 일을 못 다 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더 많은 이봉조들이 나타나서 고인의 뜨거운 겸손함을 배워 뜻을 이어가기를 기도한다.

이게 그 새벽 내게 든 첫 번째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