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원재 Headshot

"한국인은 문화적으로 자살을 선호하는가?"

게시됨: 업데이트됨:
DEFAULT
연합뉴스
인쇄

얼마 전 워싱턴에서 했던 한 강연에서 나는 한국의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율을 언급했다. 외국에서는 한국경제가 최근 수십년 동안 보여준 놀라운 성장세와 평화적으로 진행된 민주화 과정에 감탄하지만, 그 그늘에는 이런 현상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고민을 나누고 싶었다.

참석했던 미국인 정책연구자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나치게 높은 자살률 탓이었다. 유서와 함께 월세를 남기고 동반자살한 세 모녀의 이야기에는 모두 고개를 떨궜다.

한 미국 싱크탱크 연구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기까지 했다. "혹시 한국인은 문화적으로 자살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가? 역사적으로 자살을 명예롭게 여기는 전통이 있다든지..."

놀랄 만도 하다. 가장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33.5명이다. 이 수치는 미국사회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계층인 아메리칸 인디언 청소년들의 수치에 필적한다.

"아메리칸 인디언(원주민) 어린이들이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 1면 톱 기사 내용이었다. 한 인디언 보호구역에서는 인디언 아버지와 딸이 잇따라 같은 나무에 스스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살고 있는 많은 아메리칸 인디언 청소년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원래 아메리칸 인디언 공동체에서 청소년 자살은 거의 찾기 힘든 일이었다. 인디언 부족들은 아동 양육에 뿌리 깊은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 부족은 어린 부족원들을 공동체 차원에서 책임지고 보호했으며, 따라서 자살 같은 극단적 선택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생명을 존중하는 전통적 믿음도 한 몫을 했다. 그 원인은 사회적인 데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디언 어린이들은 보호구역에 살고 있는 부모와 떨어져 있는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많은 경우 부모들의 반대에도 사실상 강제로 보냈다. 인디언들을 미국과 유럽권 문화에 동화시키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이 학교들은 곧 학교폭력과 성폭력이 잦은 문제학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들 학교에 다니던 인디언들이 지금의 부모세대다. 그 부모들의 가정에서는 끊임없이 가정폭력과 아동학대가 벌어졌다. 그 부모세대의 자녀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아이들의 자살을 조장한 셈이다.

지금 인디언 보호구역 거주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미국 전체 자살률보다 세 배 이상 높다. 어떤 보호구역에서는 열 배나 된다. 정확한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미국 뉴멕시코 주에서 최근 발표한 통계를 보면 그 수치를 어림할 수 있다. 뉴멕시코 주의 청소년(15~24세) 가운데 아메리칸 및 알라스카 인디언의 자살률은 10만명당 37.5명이다. 뉴멕시코 전체 평균은 22명이다. 미국 전체 평균 청소년 자살률은 10명 안팎이다.

놀란 미국 정부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법무부 주도로 특별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현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 중이다.

수백년 전 자신들의 땅을 빼앗기고 강제로 서구화된 경험이 있으며 격리 수용되어 살아가야 했고 그 때문에 미국 땅의 원래 주인이면서도 식민지 주민처럼 살아가야 했던 인디언들이다. 산산이 부서진 부모의 삶을 보며 좌절하는 젊은 세대는 더 이상 갈 곳 없는 절망 속에서 자살을 선택했다.

그런데 뉴멕시코 인디언 청소년들의 자살률에 필적하는 사회가 한 군데 바로 한국이다. 10만명당 33.5명. 그런데 불과 수십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루고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키워 세계로 내보낸 한국인은 그 아메리칸 인디언 청소년들만큼 많이 자살한다.

'문화적으로 자살을 선호하는 사람들인가'에 대한 대답은 물론 '아니오'였다. 1990년대 초반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10명을 넘지 않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세 배로 뛴 그 20여년 뒤 자살률도 세 배 이상으로 뛰었다. 그런데도 자살자 5명 중 1 명은 '경제적 이유' 탓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도대체 이 나라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 사회적인 이유를 설명하고 해결하지 않고는 어떤 경제성장률 수치도 어떤 정치적 수사도 빈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대한민국은 경제성장을 이루고 민주주의를 얻어냈는지는 몰라도, 가장 뒤처진 친구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도록 방조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