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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늘려 분배하던 시대는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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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새 제품이에요. 사용하지 않았거든요." 분명 중고 휴대전화기 매장이다. 그런데 그는 슬며시 새 휴대전화기를 내놓았다. 포장부터 쓴 적 없는 제품이란 티가 났다. 다만 한두 해 전에 출시된 모델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두 명이 팔던 채소를 열 명이 파는 상황

그는 수많은 휴대전화 영업맨들이 쓰는 기법을 썼다. 보조금이 많은 휴대전화 단말기(전화기)가 나올 때마다, 그 전화기를 사기 위해 통신서비스에 가입했다. 사실상 무료로 전화기를 얻는다. 그러고는 전화기를 쓰지 않고 두었다가 의무가입기간이 끝나자마자 해지했다. 그렇게 수십 대의 전화기를 확보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보조금이 사라지고 전화기 값이 다시 오르는 때가 온다. 그때쯤 그 전화기를 꺼내 중고 휴대전화로 팔았다. 사실상 신제품이라,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대당 몇만원이라도 벌 수 있다.

그는 성실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행위는 부가가치를 높이는 노동이었을까? 그는 우리가 신성하다고 말하는 '생산적 노동'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무언가를 생산하는 노동자였을까?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사회를 연구해온 제임스 퍼거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인류학)라면 이런 종류의 일을 '분배노동'으로 분류할 것 같다. 분배노동이란 이미 생산된 몫을 나눠가지려 하는 노동을 뜻한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생산노동'과 대조되는 용어다.

휴대전화 단말기를 팔던 이를 떠올려보자. 그는 전화기나 서비스가 늘어나는 데 기여하지 않는다. 전화기와 서비스에서 생긴 부가가치를 나눠가지려 노력할 뿐이다. 그 노력을 노동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생산노동이 아니라 분배노동이라는 게 퍼거슨 교수의 생각이다.

퍼거슨 교수는 저서 '분배정치의 시대'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변화를 관찰하며 이 문제에 파고든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80년대 이후 빠르게 부유해졌다. 현재 GDP(국내총생산)는 1985년에 견줘 9배쯤 커졌다. 1994년 넬슨 만델라의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집권하면서 인종차별 정책이 끝난 뒤에도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 2010년에는 신흥 경제 강국의 모임인 브릭스(BRICS)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으로 이뤄졌던 'BRICs'의 's'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합류로 비로소 대문자가 된다.

하지만 아프리카 경제의 기대주로 촉망받던 이 나라에서 일자리는 늘지 않는다. 1980년대 10% 남짓이던 실업률은 최근 25% 안팎으로 올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성장잠재력을 인정받으면서도 괜찮은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퍼거슨 교수가 관찰한 것은 '경제는 괜찮으나 괜찮은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드는' 상황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어떻게 운영돼왔는지다.

우선 목격된 사실은 분배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분배노동이란 공식 부문에 고용되어 재화의 생산에 기여하는 활동과 대비되는, '타인들의 자원에 대한 권리를 평가하거나 주장함으로써 생산된 재화의 분배를 디자인하는 작업'이다.

노동과 고용은 전통적 복지국가를 구성하는 핵심 축이다. 서구 복지제도는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의 임금노동을 기초로 설계됐다. 이 제도 안에서 정상적 노동자는 고용되어 임금노동에 종사하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드는 생산활동에 기여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행상이나 좌판, 어쩌면 중고 휴대전화기 거래상까지도 잠재적으로 생산활동에 기여하는 사람들로 여긴다. 그러면서 이 영역을 자영업이나 소상공인, 더 넓게는 '비공식 부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퍼거슨 교수는 분배노동이 생산적 노동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은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다. 다만 분배 몫을 찾아가고 있을 뿐이다. 관찰의 예를 들자면 이렇다. 한 남자는 날마다 담배 한 갑을 사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한 개비씩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어떤 길목에서는 두 여자가 거리에 앉아 행인들에게 채소를 팔았는데, 시간이 흐른 뒤 열 명이 앉아 채소를 팔고 있었다. 이들을 보며 '고용이 늘어났다'고 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서구 복지국가에서 상정하는 '정상적 노동자'가 되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경제의 일부를 차지하는 비정상 활동도 아니다. 하지만 분배노동은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계속 확대되고 있다. '마땅히 생산에 기여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잠정적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퍼거슨 교수는 이들을 '생존주의적 기업'이라고 한다. 노동자라고도 기업가라고도 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인구 44%가 보조금 받는 남아공

퍼거슨 교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인구의 44%가 한 가지 이상 보조금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한다. 보조금의 상당 부분이 무조건적이다. 어떤 조건을 달성해야 보조금을 주는 전통적 복지국가 제도와는 차이가 크다. 가족 형태를 따지지 않는 보조금도 주고 있었다. 예를 들면 아동보조금은 '아동의 주요 돌봄제공자'가 받는데, 이 사람은 아이의 부모나 친척일 필요가 없다. 가족이 아니라도 돌봐주는 이에게는 보조금을 준다.

분배노동이 고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과, 인구의 상당수가 무조건적인 보조금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점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서구 복지국가와 매우 달라 보였다. 서유럽 복지국가에선 직업훈련수당 등 취업을 준비하거나, 실업수당 등 일자리를 잃고 다른 곳을 찾는 활동을 전제로 보조금을 준다. 또 4인 가족이라는 특정한 가족 형태를 전제로 제도의 틀을 짠다. 서구 복지국가는 4인 가족 남성 가장들의 완전고용을 이상적 형태로 상정하고 디자인되어 있다. 사회 구성원들은 임금노동으로 생산에 기여하며, 시민권을 얻기도 한다.

그런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분배노동이 생산노동을, 실업이 분배노동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국가는 무조건 폭넓은 보조금을 줬다. 복지국가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보편적 전제가 뒤집혔고, 그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정책적 대응을 한 셈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국가들이 맞닥뜨리게 될 상황이다.

제조업 분야 글로벌 대기업의 좋은 일자리들이 저임금 환경을 찾아 세계를 떠돌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유럽에서 미국, 일본, 중국, 동남아로 밀려가는 제조업 공장 일자리들은 더 밀려날 곳이 없을 때 사라지고 말 것이다.

20세기 전성기를 누렸던 서구 복지국가들이 전제했던 '괜찮은 일자리'는 더 이상 생겨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늘어나는 고용은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다. 어쩌면 퍼거슨 교수가 말하는 분배노동을 위한 고용이 한 축일 수 있다. 매우 효율적으로 노동을 쥐어짜는 우버(차 공유회사)와 태스크래빗(잡일·심부름 대행회사) 같은 '긱이코노미'(임시로 계약하고 일하는 경제 형태)의 고용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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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현금소득 분배하는 시스템 검토해야

결국 생산에 조금도 기여하지 않지만 보수를 주려고 억지로 만든 일자리이거나, 또는 생산에 기여하되 극단적인 효율성 원리에 따라 사회적 보호도 없이 최소한의 보수만을 받는 일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생산과정에서 사람의 기여는 줄게 된다.

그렇다면 '일자리를 늘려 분배하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틀린 방향이 아닐까? 그 일자리가 생산을 위한 게 아니라 이미 생산된 몫을 나누려고 생겨난 것이라면 더 그렇다. 일자리를 차지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는 불공정과 불평등이 예정되어 있다. 일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사활을 건 다툼이 일어날 것이다.

차라리 억지로 고용해서 분배하기보다, 새로운 분배책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 현금소득을 국가가 직접 개인에게 분배하는 시스템을 검토해볼 때가 됐다. 기본소득제 논의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이런 해결책은 벌써 일부 가동 중이다.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이 그것이다.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주는 기초연금은 무조건적 성격의 보조금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기초연금 지급이 시작된 뒤, 노인고용률은 높아지고 노인자살률은 낮아졌다. 규모는 작지만 서울시의 청년수당과경기도 성남시의 청년배당도 비슷한 성격이다. 이를 받은 청년들은 한결같이 더 적극적인 삶을 살게 됐다고 말한다.

대학과 일부 기업에서 실행 중인 안식년 제도는 한 직장에서 체계적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에게 소득을 나눠준다. 국가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충분한 소득을 나눠주는 제도다. '뷰티풀 펠로우'(아름다운가게에서 사회혁신기업가의 성장을 지원하는 사업)나 '아쇼카 펠로우'(아쇼카재단에서 사회적기업가를 선정해 지원하는 사업) 같은 프로그램은 혁신가들을 찾아 활동비를 몇 년간 나눠주기도 한다.

'분배정치의 시대'는 정말 오고 있는 것 같다. 생산과 성장이 어떻게 이뤄질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기술과 규제 거버넌스(협치)가 핵심이 될 것이다. 핵심 분야의 연구개발과 규제 체계의 개편으로 투자를 늘리는 방식이다. 이를 어떻게 실행하느냐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떻게 효율적인 분배를 할 것인지에는 답이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내놓은 유일한 답은 '고용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함께 자동화가 진전되고 4인 가족 시스템도 사라져가는 가까운 미래까지 일자리와 임금으로 생산물을 나눠 갖는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을까?

더 많은 '분배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정치는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며 불확실한 대안을 만들려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분배 아이디어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