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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뜨가 밀어낸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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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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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촉망받던 직원 두 명이 최근 그만두고 '보데이가'라는 회사를 차렸다가 곤욕을 치렀다. 이들은 동네 곳곳에 생활필수품 무인판매 상자를 차려놓고, 미리 등록된 사람들이 물건을 꺼내 가면 신용카드로 자동 결제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러고는 미국 도심의 코너마다 있는 수많은 보데이가(구멍가게)를 대체하겠다고 했다.

화려한 인터뷰 기사에 대해 여론의 반응은 의외로 거칠었다. 트위터에는 비판이 잇따랐다. '돈 없는 아이에게 무인판매 상자가 외상을 줄 수 있을까?' '사라진 아이 찾는 엄마에게 행방을 알려주는 서비스도 가능한가?' 사람들은 보데이가의 '혁신'이 파괴할 구멍가게들의 가치를 먼저 찾기 시작했다.

나는 보데이가 사건에서 파리바게뜨를 떠올렸다. 사람이 빠진 '혁신'은 어쩌면 혁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파리바게뜨는 제빵업에 '혁신'을 가져왔다. 반쯤 만든 냉동생지를 빵집에 보내고, 오븐에 넣어 굽기만 한 뒤 팔도록 했다. 이 정도의 일만 해낼 수 있는 인력을 대량으로 키워 파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혁신'으로 순식간에 전국을 지배하는 프랜차이즈가 됐다. 수많은 동네빵집을 손쉽게 밀어냈다.

하지만 이 '혁신'은 빵집 사람들이 스스로 혁신할 기회는 주지 않는다. 원래 빵집 주인은 새로운 빵에 투자하며 주민들에게 이를 알리는 기업가이자 마케터였다. 제빵사는 자신만의 빵을 만드는 장인이었다.

그런데 파리바게뜨 본사는 신제품 개발도 고객 취향 파악도 본사가 하고, 빵은 반쯤 만들어 가맹점으로 보낸다. 프랜차이즈 본사만 기업가이자 마케터이자 장인이다. 나머지는 모두 기계처럼 따르기만 하라는 이야기다. 빵집 입장에서는 경영도 노동도 혁신할 기회조차 없어졌다.

프랑스, 독일, 미국에서는 즉석 빵 자판기가 성업 중이다. 소비자가 돈을 넣으면 반조리된 빵을 즉석에서 구워주는 기계다.

어쩌면 파리바게뜨와 함께 빵집은 자판기처럼 변했다. 빵집 현장에서 혁신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혁신할 수 없다면 기업가정신도 장인정신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시키는 대로 마케팅하고, 주어진 대로 냉동생지를 굽기만 하는 빵집 주인과 제빵사에게 모험하며 혁신할 여지는 없다.

빵집만 탓할 일은 아니다. 프랜차이즈 편의점의 주요 제품 진열 위치는 본사가 정한다. 편의점 사장에게는 기업가의 모험심도 장인의 창조력도 필요가 없다. 진열만 잘하면 된다. 고객 데이터를 가진 본사가 혁신할 기회를 독점했다. 납품업자는 본사에 돈을 내고 진열 위치를 얻어내야 한다. 치킨 프랜차이즈는 본사가 메뉴를 정하고 반조리 제품을 보내준다. 수많은 사장은 그저 튀길 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시작된다고 한다. 인공지능 시대, 인간에게는 창의력과 공감능력이 더 많이 필요해진다고 한다. 혁신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실패를 벌하고 생계를 위한 자판기 노동을 강요하며 혁신 추구 욕망을 억누른다. 공무원 되어서 안정된 삶을 살고 아파트 사서 부자 되라는 지대 추구 욕망을 키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처럼, 어떤 '혁신'들은 이런 경향을 오히려 부추긴다.

자영업자들, 중소기업의 현장 노동자들, 사회적경제와 비영리부문 활동가들이 모두 잠재적인 혁신가들이다. 이들 모두가 혁신가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역동적인 사회가 된다. 소수의 예외적인 혁신가를 키우는 일과는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혁신성장' 정책도 완성될 수 있다. 과거에 이런 작은 혁신을 돕기 위해 진행했던 뉴패러다임 사업을 되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