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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와 비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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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교사 정규직화를 놓고 논란이 거세다. 오랫동안 빈자리, 새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학교는 비정규들을 고용했다. 새로운 수업이 생겨도, 육아휴직이 끊이지 않아 대체가 상시적이어도 '알고 보면 일시적'이라는 핑계를 댔다. 비정규직이란 행정적으로는 고용 기간을 정한 계약 형태일 뿐이지만, 당사자들은 계급으로 느낀다. 더 어렵고 덜 중요한 일을 도맡아야 하고 정규직이 받는 혜택을 덜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들을 정규직 자리에 밀어넣자고 하니, 공립학교에서는 '임용시험을 통해 뽑힌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고, 사립학교에서는 '원래 기간을 정한 자리에 뽑힌 사람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한다. 수업 내용이 같다고 해도 입직 과정이 다르면 다른 교사다. 입직 과정에 따른 차별은 합당하다. 그게 현재의 규범이다.

사실 입직 과정 논란은 학교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규직화가 진행되고 있는 전국 곳곳의 공공기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과거 오랜 기간 공공기관들은 새로 생기는 업무를 용역으로 돌리며 비용을 절감했다. 그 덕에 '신의 직장'이 됐다. 지금 그 용역 노동자들을 본사로 받아들이려 하니 기존 정규직과 공기업 입사 준비생들이 입직 공정성을 들어 반대한다.

기간제나 용역이나 파트타임 계약을 무조건 죄악시하는 시각은 문제다. 하지만 입직 공정성을 내밀며 차별을 정당화하는 시각은 더 큰 문제다. 같은 종류의 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그 일을 얼마나 잘하고 있느냐다. 과거 입직 경로를 현재 업무 평가에 적용하는 것은 구시대적이다. 또한 입직 경로가 강조되는 자리일수록 특권이 클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 특권을 가질 자격을 놓고 다투는 게 이런 논란의 본질이다. 아무래도 이번 논쟁은 성과 없이 상처만 남기고 끝날 것 같다. 어떤 결론이 나도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정규' 자리를 기간제 교사들이 차지하면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지옥을 맞는다. 학생 수는 빠르게 줄고 있다. 앞으로 교사 자리는 크게 늘어나기 어렵다. 교사만큼 안정적인 일자리는 찾기 어렵다. 청년들에게는 기성세대가 매몰차게 막차 문을 닫고 자기들끼리만 천국을 향해 출발하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기간제 교사들을 '비정규'로 내버려두면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던 경력 기간제 교사들은 지옥을 맞는다. 좋은 교사일수록 더 큰 지옥이다. 사회적으로는 시험 한 번 잘 보는 게 10년을 직업인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강화된다. 시험공화국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다. 직장보다 직업이 중요하다고 믿으며, 안정된 자리를 찾기보다는 자기 일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열중하던 이들은 좌절할 것이다.

특권이 있는 자리에 사람을 더 밀어넣으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거꾸로 그 자리에 놓여 있는 특권을 다른 쪽에 나누는 게 옳다. 파트타임이나 기간제라도 일만 잘한다면 차별 없는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공공부문이라도 맞지 않는 일은 중간에 그만둘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경력자가 중간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직장 내 복지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그 비용을 누가 대느냐고? 당연히 안전한 자리를 차지한 이들, 더 많이 버는 이들이 내야 한다. 중산층 이상 증세가 필연적이다. 계약에는 죄가 없다. 하지만 차별은 죄다. 차별은 사람을 비정규로 만든다. 차별이 특권을 만들고, 특권이 '정규직'에 대한 일그러진 사회의식을 만든다. 없애야 할 것은 특정한 계약 형태가 아니다. 차별과 특권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