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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이 연 '거래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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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theby gerhard richter

영국 소더비 경매의 모습.

미술품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미인도>가 천경자 화백의 작품인지 아닌지는 26년째 논란 중이다. 1980년대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가 위작 논란에 휩싸였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작가가 작품을 창작하자마자 꼬리표를 하나 붙여놓고 암호화한 뒤, 누군가에게 팔거나 줄 때 소유권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기록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위작 논란은 사라지지 않을까?

그림에 꼬리표를 붙이고 암호화하고 소유권이 바뀔 때마다 기록해두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디지털 예술작품이라면 이미 가능하다.

스타트업 '애스크라이브'는 전문적으로 진품 검증 서비스를 제공한다. 애스크라이브 플랫폼은 예술가가 디지털 작품을 올려놓고 팔 수 있는 곳이다. 이 기업의 핵심 서비스는 작품이 예술가가 창작한 '진품'임을 검증하고 그 소유자가 누구인지 확인해주는 것이다. 수없이 복제되고 세계 곳곳에 퍼져나가는 디지털 그림이지만 진품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모두가 모든 기록을 알 수 있다

애스크라이브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다. 디지털 암호화 화폐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사용되는 그 기술이다. 디지털화폐와 미술품 소유권이 관계 있느냐고?

비밀은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소유·거래하는 방식에 있다. 일반 화폐처럼 은행을 경유하는 대신, 가상화폐는 소유와 거래 기록을 암호화해 인터넷상의 특정한 장소에 보관해둔다. 그리고 누구든 키가 있으면 열어볼 수 있게 한다. 결국 모두가 모든 기록을 알 수 있다. 은행이 아니라 기록 자체가 소유권과 거래이력을 증명한다.

이 과정을 목격한 애스크라이브 창업자들은 비트코인 열풍을 다른 각도에서 봤다.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예술작품을 소유할 수는 없을까?" 디지털 미술품이라면 만드는 순간 소유자를 기록하고, 누군가에게 팔리면 소유권 이전도 기록할 수 있다. 그 기록을 공인된 제3자가 검증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암호화되고 공개된 곳에 보관하는 방식으로 검증·관리하는 것이다.

화폐에는 꼬리표가 붙어 있지 않다. 땅에도 꼬리표가 붙어 있지 않다. 국가라는 제3자, 은행이라는 제3자가 땅과 돈의 소유권을 지정해준다. 국가는 토지대장에 땅 소유권을 명시해놓는다. 은행은 계좌마다 이름과 액수를 써서 봉인해둔다. 사람들은 국가와 은행의 기록을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땅이나 돈을 가질 수 있다. 아니, '갖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확인시킬 수 있다.

예술작품이든 뭐든 땅과 화폐처럼 국가나 은행처럼 보증하는 기관이 기록·관리하면 문제는 풀린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막대한 비용 때문이다.

정부가 모든 그림의 소유권과 거래기록을 관리하는 그림등기소를 만들 수도 있다. 모든 우산을 등록하고 거래가 있을 때마다 우산 소유권 이전 기록을 전문자격증이 있는 우산 거래사를 통해 검증받도록 관리하는 우산공단을 설립할 수도 있다. 볼펜이 생산될 때마다 일단 맡겨두고 필요한 사람에게 담보를 잡고 빌려주는 볼펜은행을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그림과 우산과 볼펜의 거래는 투명해지고, 가짜 그림 시비와 잃어버린 우산 수와 볼펜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은 현저히 줄어든다.

투명한 어항 속에서 주고받는 거래

amazon warehouse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의 창고.

이를 실행하는 데 유일한 걸림돌은 '비용'이다. 세상 만물을 모두 등기와 은행 같은 방식으로 관리하려면 천문학적 돈이 든다. 거대한 기관을 끝없이 세워야 한다. 사람들은 우산과 볼펜을 얻고 사용하기 위해 수많은 서류에 서명해야 한다. 이게 모두 거래비용이다.

블록체인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비트코인 거래는 신용카드 거래나 은행 계좌 이체와 달리 제3자의 확인이 필요 없다. 거래 당사자들끼리 거래하면서도 투명하게 소유권 이전 내용과 거래 조건이 기록된다. 소유권과 거래 기록은 공개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거대한 중개기관이 확인하는 대신, 다수 대중이 확인하도록 시스템을 뒤집은 것이다. 주고받는 과정만 보면 어쩌면 현금 거래와 같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투명한 어항 속에서 주고받는 거래다. 중개인이 사라지면서 예술작품 거래에도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된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인 '아트스톡 익스체인지'의 김용태 대표가 제안하는 방법을 살펴보자. 아트스톡 익스체인지는 작품의 증권화를 제안한다. 작품 소유자는 아트스톡 익스체인지에 지분을 상장할 수 있다. 이 지분을 산 사람은 시장에서 매매할 수 있다. 지분을 모아 작품을 가져올 수도 있다. 작품이 팔릴 때 투자이익을 얻는다. 작품 가격은 투명하게 시장에서 결정된다. 예술작품이 증권화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블록체인 기술 기반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중개인이 필요 없다. 거래비용은 최소화된다. 이런 방식의 거래가 일반화되면 유서 깊은 미술품 경매 시스템은 무너진다. 소더비나 크리스티 같은 경매시장의 높은 수수료와 불투명한 가격 책정을 불평할 필요도 없다.

블록체인 이용 거래가 일으키는 변화는 미술품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회계학 용어로 거래원장(ledger)을 모두 암호화해 공개 장소에 기록하는 기술이다. 이러면 거래 확정에 제3자가 완전히 필요 없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영역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미국 기업 아마존의 예를 보자. 아마존이 세계적 기업이 된 것은 이들이 가진 막대한 규모의 데이터베이스 때문이다. 데이터베이스가 있어야 인공지능도 힘을 발휘한다. 데이터베이스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들어준다. 이들은 아마존이라는 제3자의 신뢰를 얻는다. '아마존에서 파니까 물건이 오기 전에 돈을 먼저 보내도 괜찮다'거나 '아마존에서 파니까 멀쩡한 물건일 것이다'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거꾸로 아마존은 그 '신뢰'를 이전 브랜딩 과정에서 확보해 다량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 기반 위에서 알파고와 알렉사로 위용을 자랑한 인공지능도 힘을 쓸 수 있게 된다.

이제 우리는 아마존의 데이터 독점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는 아마존이 권력기관이나 재벌보다 우리를 통제하는 힘을 갖는 건 시간문제니 말이다.

그런데 '신뢰할 만한 제3자'가 필요 없어진다면? 아마존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도 없고, 독점기업이 될 수도 없다.

오픈바자(openbazaar)는 바로 그런 온라인쇼핑몰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사용자는 물건을 사거나 팔기 위해 웹사이트를 방문하고 로그인을 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과 연결하는 프로그램만 다운로드하면 된다. 거래는 비트코인으로 하는데 은행을 거치지 않고 수수료도 없다. 이 프로그램은 오로지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을 연결해주기만 한다. 은행도 없고 아마존 같은 기업도 중간에 끼어 있지 않다. 다만 블록체인 방식으로 거래 유효성을 검증한다. 이런 거래가 일반화하면 아마존이 설 자리는 없어진다.

소유주 없는 계좌를 가질 수 있는 자동차

좀더 생각을 발전시켜보자. '신뢰할 만한 제3자' 대신 불특정 다수가 접근할 위치에 기록을 남기고 확정할 수 있다면 중개인이 사라지는 효과만 생기는 게 아니다. 모든 사물과 주체가 스스로 정체성을 확정할 수 있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나 자신임을 증명할 수 있는 이는 내가 아니다. 국가의 주민등록시스템, 학교의 학적부, 기업의 사원등록명부가 증명해준다. 조직이나 사물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스스로를 확인하려면 보통 세무서나 법원을 동원해야 한다. 자동차가 스스로를 확인하려면 정부가 발급한 자동차등록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모든 개체가 중앙의 누군가가 확인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임을 다른 개체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면? 모든 명부가 정부나 법원 없이 독립해 확인할 수 있다면? 비용이 줄어든다. 중개기관도 필요 없다. 무엇보다 이 모든 단위가 실질적으로 독립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을 예로 들어보자. 사실 영업부서와 회계부서가 굳이 한 회사에 소속될 필요는 없다. 회계부서 쪽에서 보면 영업부서는 제품을 판매하고 대금을 받아오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부인이고, 영업부서 쪽에서 보면 회계부서는 그 결과를 정리해주는 외부인이다. 두 부서가 같은 조직에 속한 이유는 떨어져 있으면 거래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서로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 일일이 계약서를 작성하고 협상하고 그 모든 것을 정부나 은행 같은 중개기관이 확인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 확인 가능하다면? 기업은 세포처럼 분열해 나갈 수도 있다.

블록체인이 기록하는 것은 금전 거래만이 아니므로, 독립성은 더 커질 수 있다. 모든 활동이 기록되고 그 관계 자체로 확인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언제 무엇을 고쳤고 어디로 운전하고 다녔는지,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등을 모두 자동 기록할 수 있다. 기록은 온전히 그 자동차에 속한다. 자동차 등기소나 은행은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재무 기능까지 더한다면? 그것도 자율주행차라면?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여보자. 이제 자동차는 소유주 없는 계좌를 가질 수 있다. 자기 기록을 점검해 정비소에 가서 정비하고,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고, 필요하면 주차장에서 휴식하고, 적절한 요금을 책정해 운행하고, 대금을 회수해 자기 이름의 계좌에 넣어둘 수 있다. 남은 돈으로 새로운 자율주행차를 사서 자신처럼 운행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정부나 은행이라면 사람에게만 계좌를 열고 독립적으로 활동하겠지만, 블록체인에는 그런 제약이 없다.

모든 개체에 독립성 부여하는 기술의 힘

부서는 기업이 되고, 회계장부는 암호화된 블록으로 온라인에 저장되고, 자동차는 독립을 선언하는 시대. 엉뚱한 상상 같지만, 모든 거래와 개체에 독립성을 부여하는 기술의 힘은 이렇게 크다.

500여 년 전 이탈리아 북부에선 '복식부기'라는 낯선 회계장부 기입 방법이 등장했다. 거래가 많아지니 상인들의 편의를 위해 발명된 이 회계 기법은, 우리가 아는 자본주의를 여는 기폭제가 됐다. 복식부기를 통해 회계는 거래 당사자가 아닌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투명한 방식으로 기록되기 시작됐다. 기업주가 아니라도 실적을 투명하게 검증할 수 있으니, 주식회사가 가능해졌고 증권시장이 가능해졌고 글로벌기업이 가능해졌다.

복식부기가 회계를 상인들의 두뇌에서 해방시켜 세상에 내놓았다면, 블록체인은 회계를 조직의 금고에서 꺼내 세상에 내놓는 셈이다. 복식부기를 발명한 루카 파치올리가 그 결과를 몰랐던 것처럼, 비트코인을 만들면서 블록체인 기술을 처음 선보였다는 '나카모토 사토시' 역시 그 결과를 모두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중개인 없는 세상은 이제 가능하다. 이런 세상은 절차와 증빙과 관료 시스템에 지친 대부분의 사람에게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블록체인에 대해 마지막으로 풀어야 할 질문은 여기 있을지 모르겠다. 중개인 없는, 모두가 독립적인, 100% 투명한 세계는 바람직한가?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