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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편에 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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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OT 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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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혁신을 위한 생태계 조성 방법을 찾는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스타트업, 사회적기업, 벤처캐피털 등의 혁신가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듣는다.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혁신가들이 성장할 수 있게 돕는 정책을 찾는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우선'을 외치고 그에 맞춰 몇몇 기업이 미국으로 돌아오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이 커졌다. 혁신의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 글로벌 기업들이 갑자기 애국자가 됐을 리는 없다. 값싼 인건비를 찾아 떠났던 기업들이 돌아오는 이유는, 이제 공장에 사람을 거의 쓰지 않아도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건비는 더 이상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신발생산업체 아디다스는 그 극단을 보여준다. 아디다스는 고향 독일로 공장을 다시 옮기려 시험중이다. 독일에 새로 세우는 '스마트공장'은 고급 관리직 160명을 고용하고 직접생산은 완전히 로봇에게 맡긴다고 한다. 이 공장에서 연간 50만 켤레의 신발을 생산하는 게 아디다스의 목표다.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온다. 기술혁명에는 빛이 있다. 아디다스 스마트공장을 설계하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창의적인 일을 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위험하고 지저분한 일은 사람이 직접 하지 않고 로봇에게 맡기면 된다. 그렇게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공동체 활동과 취미생활을 하며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림자도 있다. 밀려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래도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는 보호를 받는다. 이들이 점점 더 특권계층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특권이 있어서가 아니다.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은 먼저, 쉽게 내쳐진다. 아마존은 계산대를 아예 없앤 매장 '아마존 고'를 만들어 시범 가게를 운영한다. 한국에는 계산원 40여만명이 있다. 상당수가 기간이 정해진 계약직이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자율주행차가 다니고 있다. 대형 버스업체에 고용된 이들은 준공영제 덕에 안정적 지위를 얻었다. 하지만 유치원과 학원 셔틀버스를 모는 이들 수십만명은 대부분 자기 차를 가지고 가서 1년 단위 위탁계약을 맺고 일한다.

새로 짓는 아파트에는 택배까지 대신 받아주는 보안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대부분 1년 이하 계약을 맺고 장시간 일한다.

사람을 밀어내기 쉬운 이런 곳에서 일자리가 가장 먼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곳들이 혁신의 가장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곳이 될 것이다.

아디다스 독일 공장에서 새로운 생산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할 창의적 노동자와, 마트 계산원이나 셔틀버스 기사들이 만나는 방법은 없을까?

새로운 일이 만들어져야 한다. 마트 계산원은 스마트가게의 쇼핑 도우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학원 셔틀버스 기사는 자율주행차의 어린이 안전요원으로 더 보람있게 일할 수도 있다. 아파트 경비원은 동네를 살피며 따뜻하게 돌보는 활동가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 지금도 가치로운 일은 많다. 사회가 인정하고 보수를 지급하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그런 새로운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보수를 지급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또 하나의 혁신이다. 그들에게 더 좋은 삶을 제공할 수 있어야 진짜 혁신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만들어진 부가가치가 거기 사용될 수 있다. 그러려면 기술혁신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더 효과적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경제혁신은,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사회혁신과 이렇게 만나야 한다. 혁신이 드리울 그림자마저 같이 껴안는 것, 그게 진정으로 혁신의 편에 서는 일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