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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항의는 왜 희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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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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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철도공사에서 벌어지는 일을 들여다보던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원래 독점이던 철도공사는 경쟁 환경에 부닥치게 된다. 철도와 같은 노선에 도로가 정비되면서 트럭이 짐을 운송할 수 있게 되어서다. 경쟁이 치열해지니 철도 서비스는 더 나아질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거꾸로 독점할 때보다 철도 서비스 품질은 더 나빠졌다. 트럭들은 점점 더 큰 몫을 운송하게 되어갔다. 부피가 커서 전통적으로 철도 운송이 더 유리한 것으로 여겨지던 땅콩 같은 짐도 트럭에 빼앗기고 말았다. 악순환이었다.

독점일 때 고객들은 철도공사에 항의를 쏟아냈다. 항의 탓에 피곤했지만, 철도공사는 서비스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알 수 있었고, 조금이라도 개선을 해야 했다. 가장 예민한 고객들이었다. 하지만 경쟁 체제가 되자 이 고객들이 가장 먼저 떠나가 버렸다. 항의를 통해 서비스 문제점을 알려주는 고객들이 이탈해 버리자, 품질 개선도 더 어려워졌다. 철도는 경쟁력을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고인이 된 허시먼의 저서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에 나오는 유명한 사례다. 어떤 조직이 퇴보의 길을 걸을 때 조직원들은 이탈(exit), 항의(voice), 맹목적 충성(loyalty)의 세 가지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예민한 조직원들이 항의하지 않고 떠나버리고, 둔감한 조직원들이 충성을 맹세해버리면 조직의 몰락은 더 빨라진다. 하지만 건강한 항의가 남아 있다면 그 조직은 최소한의 회복력을 갖게 된다. 나이지리아 철도공사 사례로부터 출발해 허시먼이 만들어낸 이론이다.

한국 사회는 퇴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최소한 가까운 과거 몇 년 동안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랬다. 가까운 미래에 퇴보는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시민들은 탈출자들처럼 보였다. 가장 불만이 클 법한 청년들부터 그랬다. 헬조선을 말하던 이들이 탈조선을 말하기 시작했고, 젊은 이민자들이 늘어난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들은 정치 참여에 부정적이 됐고, 취직을 포기했고, 결혼을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져 나왔다. 나라의 가장 예민한 고객들이 이탈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이지리아 철도공사처럼 말이다.

반면 둔감한 고객들은 그저 눈을 감고 충성을 맹세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성세대는 자신이 먹고사는 일 이외에는 소음처럼 여기는 이들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을 돌려 보니, 우리는 항의하는 시민들이 가득 찬 사회에 살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광장으로 나오기 전, 먼저 항의하던 이들 중에는 거대한 권력과 싸우는 이들도 있었고, 일상의 시장 속에서 싸우던 이들도 있었다.

시장에서 싸우던 이들은 '냉혈한처럼 이윤 극대화만을 위해 달려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주문에 맞서 항의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회적 기업가들은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윤리적 소비자들은 환경과 농민들을 생각하면서 생협과 유기농산물에 지갑을 연다. 사회적 투자자들은 올바른 일의 미래를 믿었다.

광장에 나서서 항의하는 150만명의 시민들, 거친 시장에서 최소한의 도덕성을 지키며 살아가던 기업가들, 사익보다 공익을 앞에 놓고 살아가던 활동가들은 그래서 이 국가에 새로운 희망을 준다. 항의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는 바로 광장으로 나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오직 이들로부터만 한국 사회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 수 있다. 한국 사회가 퇴보로부터 회복해 일어설 최소한의 희망은 항의하는 이들에게만 남아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