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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중독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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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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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바젤에 있는 제약회사 노바티스 본사에는 에어컨이 없다. 연매출 5조원, 순이익 1조7천억원을 벌어들이는 다국적기업의 본사 건물이 그렇다. 사용하는 전기조차 100% 재생에너지원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독일 에버트재단에 갔더니 회의실에 불을 켜지 않고 회의를 진행했다. 독일 제1야당인 사민당 계열의 재단이고 연간 예산이 1800억원에 이르는 곳이다.

지난 5월에 방문했던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이런 모습은 흔하다. 기업이든 정치조직이든 비영리기관이든 전기를 극도로 아끼는 게 관행이다.

물론 재생에너지 중심 정책이 영향을 끼친다. 독일은 원자력발전을 아예 없애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전력원의 80%까지 높이는 에너지전환 정책을 진행 중이다. 스위스는 생산전력의 절반가량이 수력이다.

왜 그랬을까? 독일은 에너지원이라고는 석탄밖에 나지 않는다. 에너지자립도 역시 낮다. 스위스도 비슷한 상황이다. 실은 한국과 흡사하다. 이들 나라는 그래서 자구책을 찾았다. 전기를 덜 쓰는 사회체제를 오랜 기간 준비하면서 만들어온 것이다. 사람의 생활방식도 사무실 구조도 여기 맞춰 바뀌어 간다.

한국은 전기중독 사회 그 자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사용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80%나 높다. 1인당 전력소비량도 미국 다음으로 최고다. 가정용 전기 사용량은 상대적으로 적고 산업용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구조는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정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매우 싸다. 가정용 전기요금은 전체적으로는 매우 비싼 편이 아니지만, 높은 비율의 누진제가 적용된다. 그래서 가정은 전기를 아껴 쓴다. 청년이나 노인 등의 1~2인 가구나 전열기 사용이 적은 가정에 유리한 요금체계다. 그러나 누진제를 적용받는 가정이라도 독일 등 유럽국가보다 요금을 더 내는 것은 아니다.

이런데도 전경련 등 경제단체는 꿋꿋이 산업용 전기요금 추가 인하를 주장한다. 경제가 어려우니 비용이라도 덜 나가게 해달라는 아우성이다. 정부와 국민의 도움으로 이익이나 지켜보겠다는 모양새가 혁신이나 기업가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기업가정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기술이나 사업모델을 제안하고 나와야 마땅하다. 날이 더우니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켜는 가정용 전기 소비자들까지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에어컨을 더 켜면 더 많은 석탄화력발전소와 더 많은 미세먼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공장을 더 돌리면 더 많은 원자력발전소와 많은 핵폐기물에다 원전 사고 위험까지 견뎌내야 한다. 지금 전기요금에는 그런 비용은 포함되지 않는다. 결국 미래세대에게 떠넘겨진다. 에어컨을 더 켜는 것보다, 에어컨 없이도 시원한 건물을 만들어내고 재생에너지를 키우는 게 더 책임있고 현명한 행동이다.

독일과 스위스로 돌아가 보자. 환경파괴와 사고 위험을 미래로 떠넘기는 대신, 자신들이 현재를 견뎌냈다. 그 견딤의 과정 속에 전기 덜 쓰는 건축기술이 발전했고 자연 에어컨 시스템이 창조됐고 재생에너지 경쟁력이 키워졌다. 그리고 덜 쓰면서도 행복한 문화가 만들어졌다. 하나의 문제해결 방법이다.

자율주행차로 유명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를 보자. 그는 최근 향후 10년의 계획을 태양광발전에 집중하겠다고 호기롭게 발표했다. 머스크는 '스페인 크기만큼의 땅만 있으면 전 인류가 사용하는 전기를 태양광으로 생산할 수 있다'며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또 다른 문제해결 방법이다.

노바티스 본사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물었다. "정말 더울 때가 없니?" "한여름 2주 정도는 덥지." "그럼 어떻게 하니?" "그때 휴가를 가는 거지." 생각을 바꾸면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 기업도, 기술도, 문화도.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