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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에 사는 남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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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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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영어시간이었다. 교실은 땀냄새로 가득했다. 구수한 발음을 자랑하는, 나이 많은 남선생은 영어 문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절반은 엎드려 자고 있었다. 욕을 내뱉으며 우리를 깨우던 선생은 곧 칠판에 무언가를 적어내려갔다. "앞 글자만 따서 읽으면 ㅇㅇㅇㅇㅇ잖아?" 우리는 키득거리며 따라 읽었다.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단어를.

훈련소에 있을 때다. 동료들은 틈날 때마다 밖에서 만났던 여자 얘기를 늘어놓았다. 몇 명을, 어디에서 만났고, 어떻게 '따먹었다'는, 그런 얘기들. 일종의 무용담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보여도 내가 이렇게 잘 나갔었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극적일수록, 상대 여성의 외모가 근사하게 묘사될 수록 호응은 뜨거웠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다.

몇 년 전이었나. 어느 취재원은 평소 '여기자'들의 옷차림이나 외모를 칭찬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오늘은 화장이 잘 된 것 같다, 블라우스가 예쁘다, 피부가 어쩜 그렇게 좋냐, 그렇게 먹어도 몸매를 유지하니 대단하다, 같은 것들. 동료이자 여성인 그들은 대개 그런 칭찬을 그저 웃어 넘겼다. 기사로 칭찬 받고 싶었던 마음이 그들에게 없었을 리 없다.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나는 여성 운전자를 비하하고 여성 흡연자를 아니꼽게 바라보는 남성들을 수없이 만났다. 지하철에서 여성의 몸에 달라붙는 남성, '끝내주는 몰카'를 메신저로 돌려보는 남성들을 봤다. 성폭행 피해자에게 '왜 옷을 그렇게 입었냐'고 말하고, '술은 여자가 따라줘야 제맛'이라며 여후배를 붙잡아 앉히는 남성들이 많다는 걸 안다.

그들은 '일반인'이었다. 멀쩡해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이들도 있었고, 예의 바르고 차분한 성품을 지닌 사람도 있었다. 나이 많은 사람도 있었고, 젊은 사람도 있었다. 그냥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김치녀', '삼일한' 같은 표현을 스스럼 없이 내뱉고,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아야 한다'며 손을 올리는 이들도 그런 '평범한' 사람들일 것이다.

말하자면 이건 일종의 문화다. 한국사회에서 너그럽게 용인되고, 매우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그렇게 해도 괜찮은 분위기니까 다들 그렇게 한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열등한 존재 취급한다. 술자리니까, 농담이니까, 재밌으니까, 남자들끼리 있으니까. 여자들은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니까. 나는 단 한 번도 '그건 옳지 않다'고 말하는 남성을 목격하지 못했다.

오해가 많은 표현이지만, '여성혐오(misogyny)'는 특별한 게 아니다. 격렬한 증오에 가득 차 꼭 살인이나 폭행을 저질러야만 여성혐오인 건 아니다. 강남순 교수는 이 단어에 두 가지 뜻이 담겨있다고 적었다. 여성을 (무시해도 되거나, 보호해야 하는)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보는 것. 한국은 여성혐오 문화가 만연한 사회다.

여성혐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평범한 남성들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과 사소한 행동이 모여서 문화가 된다. 그 혐오가 쌓여서 폭력이 된다. 폭력은 일방적이고 일반적이며, 무차별적이다. '여자가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는 피의자의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감히' 여자가 나를 무시했다는 것이고, 여자는 '맞아봐야' 된다는 것이다.

어떤 남성들은 '왜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냐'고 항변한다. '성대결로 몰아가지 말라'고 주장한다. 물론 당신은 칼을 들지 않았다. 살인마가 아니다. 그러나 당신은 오해하고 있다. 여성들은 그게 나였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일상에서 겪었던 혐오를, 폭력을 고발하고 있다. 우리도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함께 혐오를 혐오하자고 말하고 있다.

며칠 전, 동료이자 여성인 곽상아 에디터는 "공중 화장실에 갈 때마다 수상쩍은 구멍을 모조리 확인"한다고 적었다. 그 습관은 아마도 한국에 사는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일들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습관은 대개 누적된 경험에서 나온다. 그 일들은 반복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벌어졌을 것이다. 나는 그 일들을 모른다. 내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 세계를 모른다. 그 일상적인 공포를 모르고, 그 상시적인 불안을 모른다. 택시를 타야 할 때의 망설임을, 이유 없이 폭언을 들었을 때의 억울함을 모른다. 내 몸을 더듬는 손과 음흉한 시선을, 그 불쾌를 나는 모른다. 구남친이 밤 늦게 집 앞으로 덜컥 찾아와 씩씩거릴 때의 공포를 모른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나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남성들은 알아야 한다. 세계의 절반인 여성들이 우리가 모르는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알아야 한다. 공중화장실에 가고, 택시를 타고, 계단을 오르고,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그 모든 일상이 언제든 여성들에게 위협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부당한 차별과 유무형의 폭력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적어도 알고는 있어야 한다.

이건 성대결이 아니다.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고, 부당한 차별과 편견에 맞서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누구나 억압과 폭력에서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그런 문화와 사회는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건 성별을 떠나 마땅한 의무다. 나는 당신도 나서야 한다고 믿는다. 혐오를 혐오해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