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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트랜스젠더... 그리고 '시빅 해커'는 어떻게 장관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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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그 수많은 시빅 해커들은 왜 민주주의를 위해서 기꺼이 자원봉사를 할까요? 그것은 우리 세대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대만의 첫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의사표현의 자유는 장개석 독재 아래에서 지난 40년간 군법에 의해 봉쇄되어 왔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과업은 정보공개였습니다. 모든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한 페이지에서 볼 수 있게 하는 일 말이죠."

-오드리 탕, 2016. 5. 28. 마드리드 '민주적 도시(Democratic Cites)' 국제 콘퍼런스 발표 중

천재 트랜스젠더 장관?

대만에서 35세의 프로그램 개발자가 장관에 임명되었습니다. 정치경력이 전무하고 공직분야에 재직한 경험도 전혀 없는, 프로그래머 오드리 탕(Audrey Tang)입니다. 오드리 탕은 14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워서 16세에 스타트업을 창업했으며 19세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스카우트되어 최근까지도 애플의 컨설턴트로 일할만큼 개발자로 명성을 떨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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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탕(Audrey Tang, 1981. 4. 18 ~ ), 시빅 해커이자 대만 디지털부문 총괄 특임 장관 ©Piers Cawley

지난 26일 그가 대만의 디지털 부문 총괄 무임소장관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내 언론들은 입을 모아 "아이큐 180의 천재 프로그래머" "대만 최연소 장관이 된 트랜스젠더"등 그의 천재성과 성 정체성, 나이를 강조하는 기사를 연거푸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어느 언론에서도 그가 어떻게 젊은 나이에 디지털 부문을 총괄하는 장관에 오르게 되었는지 그의 진짜 중요한 이력에 대해선 관심을 두지 않았죠.

오드리 탕이 장관에 임명된 이유는 아이큐가 높아서나, 젊은 나이에 성공한 벤처 창업가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특별한 배려는 더더욱 아니었고요.

오드리 탕은 장관 임명이 발표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나는 국가의 정책을 선전하는 존재가 아니다. 많은 지성과 힘이 합쳐져 더 큰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채널이 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대만 정부의 린취안 행정원장도 탕이 "공공정책 분야에서 정부와 시민 간 소통을 돕는 채널을 구축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하면서 "지금까지의 장관들과는 다른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오드리 탕이 이전의 장관들과는 달리 새로운 채널 역할을 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지난 5월 선거에서 정권교체를 이루며 들어선 민진당의 차이잉원 주석과 새 행정부는 오드리 탕에 대한 파격적 인사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려 하는 것일까요? 오드리 탕이 화려한 벤처 창업가, 개발자로서의 삶을 접고 그간 해왔던 일을 알아야만, 그가 소망하는 "채널"로서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실리콘밸리를 뒤로 하고 시빅 해커가 되다

프로그램 개발자로서 오드리 탕의 이력은 화려합니다. 오드리 탕은 12세에 처음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웠고, 16세에 중국어 가사 검색 엔진 스타트업을 설립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이름난 프로그래머로서, 애플과 벤큐(BenQ) 등 유수 IT기업에 컨설팅을 할 무렵 그의 나이는 19살에 불과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오드리 탕은 흔히 이야기하는 '천재 프로그래머'에 가깝습니다.

그가 24살이 되었을 때,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을 바꾸고 이름도 여성 이름인 오드리로 바꿨습니다. 호사가들은 젊은 나이에 큰 성취를 거둔 천재의 특이한 취향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드리 탕에게는 사회적 편견과 권위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겠다는 엄중한 결단이었을 겁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았던 것처럼, 그가 직면해 있는 사회적 모순을 적당히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 '행동'하겠다는 결연한 선언이었습니다.

그는 10대 때부터 오픈 소스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자유로운 의사소통문화에 익숙했습니다. 그는 꽉 짜인 학교교육이나 관습적인 젠더문화를 거부했듯이 정보독점과 특권 남용에 대해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평적인 공유와 협력을 통해 창의적 가치를 높이는 일에 그는 큰 매력을 느꼈고, 오픈 소스 커뮤니티, 프리 소프트웨어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합니다.

유망한 프로그래머로서, 그리고 오픈 소스 운동의 차세대 기수로서 오드리 탕은 이처럼 다양한 얼굴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 '해바라기 운동(Sunflower Movement)'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마침내 그녀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찾습니다- 바로, '시빅 해커(civic hacker)'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수십 년에 걸친 정당정치를 극복했는가?
이 모든 것은 2014년 3월에 시작되었다.
해바라기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이 22일 동안 국회를 점거했던 ,
바로 그때부터 말이다."
-오드리 탕, '민주적 도시(Democratic Cites)' 국제 콘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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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운동(Sunflower Movement), 의회를 점거한 모습 ©Artemas Liu

해바라기 운동(Sunflower Movement)은 2014년 3월 국민당 정부의 대중국 무역협정 일방처리에 분노한 청년과 대학생들이 24일 동안 대만 입법원을 점거하고 거리농성을 병행하며, 입법 철회를 요구했던 사회운동입니다. 국민적 동의 없이 밀실야합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해서 ‘블랙박스 협상’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시위 참가자들은 검은 옷을 입고 희망의 의미를 담은 해바라기를 든 채 행진을 벌여서 해바라기 운동으로 불립니다.

당시 오드리 탕은 대만 오픈소스 진영의 개발자들과 2012년부터 거브 제로(g0v)라는 오픈소스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거브 제로는 ‘인터넷 세대, 원점부터 시작한다.(By digital natives, from Zero)’라는 모토로, 데이터 공개와 데이터 비주얼라이제이션, 시민 참여 운동을 벌이는 온라인 플랫폼입니다.(>와글의 g0v 이야기
보기
)

해바라기 운동 당시 거브 제로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분노를 오프라인으로 이끌어내는 확성기 역할을 톡톡히 수행합니다. 오픈소스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청년들이 입법원을 점거한 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오픈소스 데이터 수집 플랫폼을 통해 공유했던 것입니다. (>와글의 g0v 이야기 보기)

매일 현장에 나올 수 없었던 시민들은 이 플랫폼에 올라온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공유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오드리 탕으로 하여금 단순히 정부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좀 더 직접적인 시민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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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0v는 정부예산 감시, 공무원의 관광성 해외 연수 감시, 정치 기부금 감시, 의사록 열람, 회의 영상 다시 보기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2014년, 마침내 오드리 탕은 비즈니스 분야에서의 은퇴를 선언하고 공공 분야에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거브 제로가 그랬듯이, 오픈소스(open­source), 직접행동(hands­on), 시민 기반(public­spirited)이라는 세 가지 기조를 원칙으로요.

민주주의를 재발견 하자

2016년 5월 28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민주적 도시 콘퍼런스에서, 오드리 탕은 지금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재발견할 때라고 역설했습니다. 정치 변혁의 바람을 타고 대만 총통에 오른 차이잉원 주석의 취임사를 인용하면서, "과거의 민주주의가 두 상반된 가치 사이의 양자택일"이었다면, "지금의 민주주의는 다양한 가치들 사이의 대화"라고 주장했습니다.

시빅 해커로서 오드리 탕의 목표는 그 어떤 종류의 억압과 왜곡, 비밀을 허용하지 않는 투명한 기술을 통해 민주주의를 재발견하는 것에 이릅니다. 2014년 이후 오드리 탕은 g0v와 함께 정부예산 감시, 공무원의 관광성 해외 연수 감시, 정치 기부금 감시, 의사록 열람, 회의 영상 다시 보기 서비스 등을 제공하여 시민들이 좀 더 쉽게 정부가 하는 일을 감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오드리 탕은 시빅 해킹이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지 않은 통합된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사회와 경제적 요구에 곧장 반응하는 효율적인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사람들을 직접 돌보는 실용적인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재발견하는 우리의 실험이다."라고 말합니다.

차이잉원 정부에서 오드리 탕을 입각시킨 이유는, '아이큐 180의 천재 프로그래머'라든가, '최연소 장관', '트랜스젠더 장관'과 같은 오드리 탕의 개인적인 속성에 기반한 이미지 정치를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정부와 시민 사이, 민주주의와 디지털 기술 사이를 오가며 풍부한 경험을 쌓은 '시빅 해커'인 오드리 탕의 사회적 이력에 주목했던 것입니다.

차이잉원 정부는 오드리 탕을 채널로 삼아 시민과 직접 소통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새로운 대만-중국 관계를 꿈꾸는 정부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솔직한 목소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드리 탕은 10월 1일 공식 업무를 앞두고, 시민의 궁금증에 대해 문답하는 웹페이지를 개설했습니다. 차이잉원 정부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오드리 탕의 행보를 주목해야 합니다. 오드리 탕이라는 믿음직한 '채널'을 통해, 정부는 시민에게, 시민은 정부에게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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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탕은 취임(10월 1일) 전 자신의 업무에 대해 시민들이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답하는 페이지를 개설했다.

와글이 만난 오드리 탕

와글은 지난 5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콘퍼런스 “민주적 도시(Democratic Cities)”에서 오드리 탕을 만났습니다. 탕은 대만의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데 있어서 미디어, 시빅 해킹, 정치라는 세 영역이 긴밀하게 협력한 점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국경 없는 의사회’처럼, 열린 시민정치를 위해 여러 나라의 개발자들이 협업하는 ‘국경 없는 개발자 커뮤니티’를 기획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와글의 제안에 오드리 탕은 대만과 한국, 홍콩 등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기획으로 발전하면 좋겠다고 화답하면서, 새로운 상상력과 실행력을 가진 개발자들의 사회참여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디지털 정책 장관이 된 오드리 탕이 대만의 디지털 정책을 어떻게 바꿔갈 수 있을지­오드리 탕을 참여와 소통의 채널로 삼아 변화할 대만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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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도시(Democratic Cites)' 국제 콘퍼런스에서 와글 이진순 대표(좌)와 오드리 탕(우) ©Medialab Pr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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