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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청년은 어떻게 멕시코 최초의 무소속 주의원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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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지역구 환경미화에 나선 페드로 쿠마모토와 위키폴리티카 ©kumamoto.mx

어떤 나라가 있습니다.


러시아와 더불어 20세기 최대의 사회혁명을 일궈낸 나라. 그러나 지금은 조폭과 결탁한 기성정당의 부패가 일상이 된 나라, 조폭에게 살해된 학생 유가족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자 현직 검찰총장이 "그만하자, 지쳤다"라고 하소연하는 나라, 이에 질세라 전임 대통령은 "현실을 받아들이라"며 타이르는 나라, 정부 비판에 눈 감고 귀 닫은 친정권 미디어들이 지배하는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한 야당은 신뢰가 안 간다며 IMF 구제금융을 두 번이나 받게 한 부패 정당에게 권력을 맡긴 나라- 바로 멕시코입니다.

다행히 이런 절망적인 현실에 자그마한 균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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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판 '월가 점령운동'으로 불리는 '내가 132번째다' 운동의 멕시코시티 시위장면 ©MaloMalverde


내가 132번째다

대선 직전이었던 2012년 5월의 일입니다. 당선이 유력했던 니에토 대통령 후보가 이베로아메리카 대학을 방문합니다. 학생들과의 토론 중 시위 탄압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자, 화가 난 학생들이 강력히 항의했고, 이에 놀란 니에토 후보가 화장실에 대피했다가 구조되는 망신을 당합니다. 주류 미디어들은 이 사건을 외부세력의 개입에 의한 불상사로 보도했지요.

편향된 보도에 황당해하던 이베로아메리카 대학생 131명이 보다 못해 자신의 실명과 학생카드를 찍어 유튜브에 인증샷을 올리기 시작했고, 이것이 멕시코 전역에 걸쳐 일어난 시민운동 '내가 132번째다(Yo soy 132)' 운동의 시작이 됩니다. 운동의 파급성에 비해 실질적인 제도변화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내가 132번째다' 운동은 서로 낯설었던 청년들을 거리에서 만나게 하고, 함께 소리 높여 떠들게 하고, 그들의 가슴에 작은 변화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멕시코 최초의 무소속 주의원이자, 멕시코 원주민과 일본인 노동자의 혼혈, 신고한 전재산이 1천만원이 조금 넘는, 스물여섯 살 페드로 쿠마모토(Pedro Kumamoto)는 바로 그 132 중 하나입니다. 쿠마모토가 속한 위키폴리티카(Wikipolitica) 역시 수많은 132들이 모인 풀뿌리 청년네트워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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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형 같은 푸근한 인상의 페드로 쿠마모토 ©Alvaro qc



울보이자 광대, 민주주의 실험을 시작하다

2015년 할리스코(Jalisco) 주의원선거 당시 쿠마모토의 나이는 스물다섯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그는 대중교통비 인상 저지 시위에 몇 번 참여한 것 외에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정치적 경력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고요. 그랬던 그가, 풀뿌리 청년네트워크 위키폴리티카를 통해 만난 열대여섯명의 친구들과 함께 할리스코 주의원 선거에 겁 없이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쿠마모토가 출마한 선거구는 할리스코 제 10 지역구, 보수성향의 중산층 백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할리스코주의 '청담동'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경쟁자들은 쿠마모토와 그의 친구들을 멍청한 '울보'이자, 현실감각을 결여한 '광대'라고 몰아붙였습니다. 운동권 친구들 중엔 제도권 정치에 들어가 봤자 "이미 죽은 시스템에 공 하나 더하는 것" 뿐 아니겠냐고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쿠마모토와 그의 친구들은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합니다. 오직 선거의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선거에서 승리하고, 전국적인 정당을 만들어서 멕시코를 변화시키려는 거창한 목적을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쿠마모토와 친구들은 할리스코에서 "민주주의 실험"을 해보길 바랬습니다.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부패 없이 투명하게, 구체적인 계획안과 IT 기술을 활용해 로컬 커뮤니티를 조직할 수 있기를- 그래서 선거에서는 패배할지라도, 정치적으로는 승리하는 계기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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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지역구 환경미화에 나선 페드로 쿠마모토와 위키폴리티카 ©kumamoto.mx



만약 장벽이 무너진다면

쿠마모토가 출마를 선언한 제 10 지역구는 할리스코 주 내에서도 보수적이라고 이름난 곳이었습니다. '내가 132번째다' 운동이 반대했던 니에토 대통령에게 가장 많은 표를 던졌고, 선거 때마다 보수적인 후보를 꾸준히 지지해 왔던 멕시코의 '강남'같은 곳이지요. 이에 반해, 쿠마모토와 위키폴리티카는 누가 봐도 명백히 진보적인 어젠다를 가진 후보였고요. 젊고 진보적인 쿠마모토가 멕시코의 대표적인 보수 선거구를 공략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쿠마모토는 선거운동의 비결을 "정직"으로 요약합니다. 쿠마모토와 위키폴리티카는 보수적인 투표자들을 위해 진보적인 어젠다를 바꾸거나 숨기지 않습니다. 면대면으로 직접 시민들과 대화하며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쿠마모토와 시민들이 함께 살을 부딪치는 지역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해결책을 찾아가다 보면, 다른 편처럼 보였던 서로가 실은 매우 유사한 사람들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공감대를 얻고 나면, 그제야 비로소 쿠마모토는 자신의 생각을 조금도 숨김없이 밝힙니다. "저는 동성결혼을 찬성하고, 여러분도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라고요. 적어도, 마음 맞고 열심히 일하는 동네 청년의 목소리를 무턱대고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시민들은 찾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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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현재 쿠마모토의 트윗수는 1만 2천여개, 팔로워는 5만 9천여명, 좋아요 수는 약 5천 8백개입니다.



지금 1시간이면 예전에 12시간 걸리는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위키폴리티카의 최연장자이자, 실리콘 밸리에서 프리랜서로 일했던 서른한살 엘리자 페라(Elizar Parra)는 쿠마모토의 커뮤니케이션 전략 기획자였습니다. 엘리자는 SNS가 낮은 비용으로 지역주민들과 대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데 주목하고, 와츠앱(Whatsapp), 트위터, 페이스북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먼저 카카오톡과 비슷한 와츠앱은 쿠마모토와 직접 연결된 지지자 그룹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습니다. 위키폴리티카가 지지자 그룹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지지 그룹이 그 메시지를 그들의 친구에게, 또 친구의 친구들에게 전했죠. 그 모든 것이 부리또 하나를 먹기도 전인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쿠마모토의 트위터는 여론주도층, 그리고 기성 미디어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식적인 창구였습니다. 쿠마모토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선거기간 중에만 총 45,606의 좋아요를 받았는데요. 쿠마모토가 획득한 총 표수는 57,215표였던 걸 생각하면, 하나의 좋아요는 현실에서의 1.25표나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쿠마모토는 총 250,000 페소(약 1,470만원)를 선거비용으로 지출했습니다. 경쟁자들이 평균 1,000,000 페소(약 5,900만원)를 지출한 것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금액이지만, 정부보조금 100만원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시민들의 기부금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 의미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결국, 쿠마모토는 53.9%의 높은 지지율로 멕시코 역사상 최초의 무소속 주의원으로 당선됩니다. 이 수치는 당시 멕시코 선거 당선자 평균득표율인 48%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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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모토 의원실에서 작업중인 위키폴리티카 동료들. 왼쪽부터 Claudia Ramirez, Raul Avila, 그리고 Susana Ochoa. ©kumamoto.mx



학교에서 배운대로 친구끼리 정치하기

당선 후 쿠마모토의 의정활동 역시 기성 정당들과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스물다섯 주의원 쿠마모토의 하루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3km 떨어진 의회에 출근한 쿠마모토는 곧바로 의원실로 들어갑니다. 이 방은 의회 건물에서도 가장 작은 방임에도 불구하고, 쿠마모토를 비롯한 여섯명의 위키폴리티카 동료들로 아침부터 북적대고 있습니다. 의원실에는 의원"님"을 위한 품위 있는 책상은 치워버리고, 노트북을 들고 필요에 따라 언제든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실용적인 책상을 가져왔습니다.

쿠마모토가 발의할 법안은 위키폴리티카 동료들의 비판적 발제를 통해 정교하게 수정됩니다. 쿠마모토가 의회에서 발표할 최종 원고를 다듬는 동안, SNS 담당 수잔나는 트위터에 법안 요지를 실시간으로 업로드합니다. 쿠마모토가 본회의장에 들어간 동안 나머지 동료들은 당일 저녁에 지역구에서 열릴 주민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일찌감치 퇴근합니다.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정치는 생각보다 그렇게 새롭지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정치에는 시스템을 단숨에 바꿔줄 영웅도, 수십년 동안 추종할 단 하나의 정답도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껏 살아왔던 대로, 생각이 다른 타인과 얼굴을 맞대고 생각을 나누며, 합의점을 찾고 신뢰를 쌓아가는, 민주주의적 일상 그 자체에 길이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막막한 지옥의 사막을 건너는 방법은 곁에 있는 친구의 손을 꼭 잡고, 한걸음 한걸음 낙타처럼 묵묵히 걸어가는 것일 뿐이라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쿠마모토와 그의 친구들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미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쿠마모토는 결코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쿠마모토는 스스로를 "리더"라기보다는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로 표현합니다. 자신의 역할은 "누군가를 내 의견에 맹목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을 야기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협업은 쿠마모토와 친구들이 제도권 정치라는 건조하고 냉혹한 사막을 건너는 유일하고도 효과적인 전략이자, 그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정치 시스템, 정치철학의 핵심인 것입니다.

* 이 글은 정치 스타트업 와글주간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