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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국회의원들, 정보 공개에 벌벌 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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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GL

은밀하고 뻔뻔하게

현직 검사가 기업인을 만났습니다. 그 검사는 기업인이 빌려준 4억 2500만원을 가지고 비상장 주식 1만주를 삽니다. 상장을 앞두고 있었던 그 주식은 '대박'이 나서 검사는 돈방석에 앉았습니다. 같은 기업과 1300억 원대의 부동산 거래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또 다른 공직자는, 본인과 일가족이 소유한 회사의 81억 원 대 자산을 5천 만원으로 줄여 신고하여 4천 만원 남짓의 세금을 절약하였습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의 비리 혐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혐의 당사자들은 사실 관계를 부인하거나 변명을 하다가 거짓말이 들통나면 눈 깜짝 않고 말을 바꿨습니다.

이렇게 정치인과 기업인의 은밀한 관계는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이상, 시민들이 알기 어렵습니다. 정치인이 기업의 주주로 있거나, 내부 정보를 바탕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 결정을 하더라도 알 수 없는 노릇이지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인은 시민입니다

그리고 정치인과 공직자들은 시민의 '종복'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부정부패 사건들을 살펴보면, 종이 주인의 눈을 피해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합니다. 현행법 상 공직자는 재산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으나 본인이나 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법인 소유 자산과 수입은 예외로 하는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법률의 맹점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주인은 종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자신들의 종이 누구를 왜, 어디서 만나고 무엇을 하는지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되어 있지 않은 탓이지요. 요컨대 정치와 행정에서의 '투명성(Transparancy)'이 부족한 것입니다.


시민들, 스마트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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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I의 멤버들. 좌측에서 세 번째가 창립자 펠리페 호이저Felipe Heusser이다. © 2016 Veronica Ortiz

이러한 정치 영역의 '투명성'과 관련해 멀리 남미에 주목할 만한 단체가 있습니다. 바로 칠레의 '스마트시민재단(FCI, Fundación Ciudadano Inteligente)'입니다. 칠레 역시 민간 기업과 관계를 맺고 있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부당하게 돈을 벌거나 기업의 편의를 봐 주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부패한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감시에 벌벌 떨게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2009년 설립된 FCI는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방식의 권력 감시와 정치 투명성 제고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FCI가 다른 시민단체와 다른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행적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2) 이를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함으로써, 3)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일상적인 권력 감시를 가능케 한 것입니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국회의원 감시

FCI가 2012년에 공개한 '이해관계 감시Inspector de Intereses' 서비스는 정치인들의 은밀한 부정부패를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사이트에서 시민들은 1) 일상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던 국회의원의 재산 내역과 2) 그들이 발의하거나 서명한 법안이 정치인 자신의 이해관계와 연관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 감시 서비스'는 국세청, 관보, 사업자 등록 명부(Registro de Comercio) 등 다양한 소스에 분산되어 있었던 정보들을 통합한 아카이브로, 특정 국회의원이 어떤 기업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법안을 만들거나 서명했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래 그림처럼 이용자가 국회의원을 선택하면 그와 관련된 금융기관, 사기업, 이익 단체 등이 우측에 나타나고, 하단에는 이 기관들의 이해관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될 수 있는 법안 또는 정책 발의가 보여집니다. 국회의원이 발의하거나 서명한 법안이, 그 자신의 사적인 이해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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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ector de Intereses 의 화면 © 2011 The Transparency Policy Project

FCI가 아카이브 구축을 위해 조사를 벌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우선 국회의원들 중 3분의 2가 298개의 기업을 소유하거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그 중 33%는 공적인 데이터 소스 어디에도 신고되지 않았던 것이 드러났습니다. 또 보수당인 독립민주연합(UDI, Unión Demócrata Independiente)은 무려 136개의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다고 달라지나? 달라진다!

이 사이트가 공개된 후 한 극우 정당의 대표가 이 프로젝트를 강하게 비난하였고, 오히려 이를 계기로 FCI의 '이해관계 감시' 사이트는 주요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제서야, 시민들은 그들의 종복이라던 국회의원들이 주인들 모르게 얼마나 많은 이권에 관련되어 있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발거벗겨진' 국회의원들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곧 깨닫게 되었죠.

결국 많은 국회의원들이 '사실은 누락된 내용이 있었다'면서 직접 자료를 들고 FCI로 찾아와 자료 수정을 요청하는 일이 빈번히 벌어졌습니다. 그 수가 칠레 전체 국회의원의 무려 20%에 달했다고 합니다. 물론 국회의원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소명하려는 의도였지만, 사실에 기초한 투명한 정보 공개와 이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성 강화가 얼마나 큰 권력 감시 효과를 낳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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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독립민주연합(UDI) 전 칠레 상원의장 호비노 노보아 © 2015 Agencia UNO

실제 처벌도 이루어졌습니다. 2016년 7월 현재 이해관계 감시 서비스는 만료된 상태이지만, FCI는 정보 감시를 통해 이미 알아낸 사실을 바탕으로 부정부패 행위를 저지른 정치인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FCI가 뇌물 수수 및 세금 탈루 혐의로 고발한 8명 국회의원 가운데에는 전직 상원의장 호비노 노보아Jovino Novoa와 같은 거물급 인사도 있습니다. 현재 노보아 전 의장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는데, FCI의 소속 변호사는 형량이 적다며 항소를 하기도 했습니다.


투명성 제고와 권력 감시 효과

FCI의 마누엘 아리스Manuel Arís는 "접근이 불가능하고 분산되어 있었던 공공 정보들을 공개함으로써 비로소 시민들이 자신의 대표자들을 감시할 수 있게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숨겨지고, 흩어져 있는 정보는 일관된 목적을 가지고 엮어져야 비로소 진실을 담아내며, 이 진실이 거름망 없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죠.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유리 수조 안의 물고기처럼 숨김없이 드러난 이상, 과거처럼 '사심 없이 객관적인 입법활동'을 가장하여 부정을 저지르기는 전보다 어려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고위공직자의 주식보유 및 자산변동사항이 일반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들이 감히 주식이나 부동산을 '은밀하게' 거래하며 부당 이득을 취하는 부정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요? 주류 언론의 시각에 따라 걸러진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보는 대신, 공직자들의 비리 가능성을 감지할 수 있는 정보에 시민이 일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면, 그들의 '뻔뻔한' 거짓말을 뉴스에서 거듭 되풀이해 듣는 짜증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은밀하고 뻔뻔하게 살아왔던 국회의원들을 그들의 진정한 주인인 시민 앞에 벌벌 떨게 한 칠레의 사례가 자꾸 생각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