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post Korea kr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Valerie Plame Wilson Headshot

한때 스파이었던 내가 일반인으로 산다는 것

게시됨: 업데이트됨:
DEFAULT
JASON REED / REUTERS
인쇄

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한 아래 이야기를 특히 좋아한다. 2003년에 비밀 CIA 요원으로 일하던 나를 부시 정권이 공개적으로 노출시켰을 때의 내 심정을 잘 묘사하기 때문이다.

두 마리의 젊은 물고기가 수영하고 있었다. 반대쪽에서 늙은 물고기 한 마리가 지나가며 "좋은 아침이네, 젊은이들. 물은 어떤가?"라고 물었다. 계속 수영하고 가던 두 마리의 젊은 물고기. 그중 하나가 상대방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도대체 물이란 게 뭔데?"

정확한 묘사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서야 맥락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항에서 튀어나와야만 가능하다는 소리다. 어느 신문기사 폭로로 내 커리어가 완전히 또 갑자기 무너지기 전까진 난 CIA라는 환경이 얼마나 특별하고 또 때론 이상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직업에 대한 질문에 뭘 둘러대거나 거짓말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임무 수행과 관련한 가상 직장이나 배후 이야기를 기억할 필요도 없었다. 가짜 주소, 가짜 직함, 가짜 이름, 가짜 직업도 기억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여행을 자주 다니는 이유, 또 갑작스럽게 떠나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할 필요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이런 모든 것이 내 삶에서 증발한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이 미국 정부의 이익이 되는 정보를 가진 자인지 아닌지를 고려할 필요가 더이상 없었다. 그를 어떻게 다시 만날지, 어떻게 유대관계를 맺을지, 친밀감을 빙자하여 미국을 위한 첩보활동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순간적으로 이런 이슈가 다 날아가면서 내 인생의 한 부분이 막을 내렸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CIA 일을 너무 좋아했던 내겐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수년이 걸렸다.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으로 난 CIA에 입사했다. 나라의 지원으로 해외에서 일하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무슨 보너스처럼 느껴졌다. 공무원 가족 출신인 내겐 국가를 위한 충성이 DNA에 박혀 있었다.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참전 공군 장교였으며 오빠는 베트남에서 부상을 입은 해병대 출신이었다. 테러리스트와 불량 국가의 지도자를 비롯한 악당들의 핵무기 확보를 제지하는 핵확산방지 전문가로서 중요한 국가적 사안에 기여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CIA 동료들은 매우 똑똑하고 충성스러웠으며 재미있고 창의적이었다. 물론 때론 CIA의 관료 체계가 답답했다. 지루할 때도 있었다. 조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요원도 가끔 만났다. 또 CIA가 고문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심각한 문제도 나중에 알았다. 그렇지만 난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꼈으며 즐겁게 업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일반인이 되고 보니, 이젠 몸에 완전히 밴 CIA에서 습득한 업무능력이 아무 쓸모가 없다. 혹시 누가 나를 미행하는지 뒤를 조심할 필요가 없다(한동안은 기자와 사진작가들이 내 뒤를 쫓았다). 금고 비밀번호를 외울 필요는 없다. 하루를 마치며 책상을 꼭 정리하는 습관도 필요 없다. 가발이 갑자기 벗겨진 이상한 내 모습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그에 맞춘 내 정체, 내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난 단순히 발레리 플레임이다. 아내와 쌍둥이 엄마인 전 스파이.

그러나 오랜 버릇이 그리 쉽게 버려지는 것은 아니다. 또 한 가지 버리고 싶지 않은 게 있는데, 그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다. 첩보원 확보의 필수 조건은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다. 그 사람의 몸짓 언어와 동기, 관심사와 감정을 모두 파악해야 한다. 제대로 업무를 수행했다면 첩보원 자신보다 그 사람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난 모든 사람에게 고유의 사연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알려면 그 사람에게 적합한 질문을 해야 했다. 이런 나의 호기심은 영원하길 바란다. 사실 이 기술은 십 대 아이들을 키우는데 매우 유용하다.

그럼 요즘 내 삶이 '정상'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거다. 비밀 폭로 걱정 없이 아이들 운동 시합을 쫓아다니는 둥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여권심사를 통과할 때면 아직도 아드레날린이 몸에서 치솟는 게 느껴진다. 또 택시를 하차할 때 혹시 뭘 두고 내렸을까 봐 깜짝 놀라곤 한다. 비밀 서류를 두고 내렸을까봐 걱정하던 버릇이 남은 거다. 이런 게 전 스파이의 일상이라고나 할까?

Close
힐러리 클린턴과 오바마
/
페이스북
트윗
AD
이 기사 공유하기
닫기
기존 슬라이드

 

허핑턴포스트US의 블로그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