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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제국 | 퀴어, 한국, 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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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MP LGBT
Barcroft Media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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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제국이 바뀐다. 매번 미국 대선 때마다 그랬듯 전세계의 운명은 위태로운 저울에 걸리는 듯하고, 미국이라는 제국을 영속시키는 예외주의의 광란은 더 깊어간다. 신임 대통령의 정책은 제국의 미래에 놓일 초석이지만, 대통령의 정책이 대통령 지지자들의 언행과 더불어 일으키는 상호작용을 우리는 분명 간과할 수는 없다. 대통령의 정책과 지지자들의 언행은 미국의 소수자와 여성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한편, 그 조합은 전세계에 엄청난 파급을 일으킨다. 바로 미국의 예외주의가 이 끝없이 팽창하는 제국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실은 근래 여느 미국 대선에서나 똑같겠지만, 이번 경우는 보통 대선이나 보통 차기 대통령이 아니다. 미국 내에서나 정치인들에게서 차별, 여성혐오, 동성애혐오, 외국인혐오, 그리고 다른 별별 혐오를 이만큼이나 드러난다는 점이 굳이 놀라운 게 아니다 (이런 혐오는 이제 외려 대통령의 자격 조건 같다). 문제는 정치인이자 이제는 대통령인 한 사람이 내뱉는 말들과 저지르는 (그리고 저질렀다고 고발된) 행동들이 정상화된다는 사실이 이번 대선과 대통령을 중대하게 그리고 끔찍하게 다르게 만든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과 집권으로 이 "새로운" 제국이 얼마나 끔찍하고 불안해졌는지는 미국의 거리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시위를 통해 당선 소식에 반응하며, 트럼프 지지자들은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대한 언어적·물리적 위협과 폭력에 기대고 있다.

여러모로 볼 때, 트럼프는 과거 공화당 출신 대통령을 비롯해 다른 많은 공화당 정치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다른 공화당 정치인들이 트럼프만큼 공개적으로 저속한 모습을 비치진 않았을지 모르나, 트럼프와 나머지 공화당원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있다고 믿는 건 어리석을 테다. 대부분 공화당원(그리고 민주당원)과 마찬가지로 트럼프는 레이건 정부 아래 극심해졌던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수사, 즉 노동자 계급의 동성애자들과 유색인종 퀴어들을 비롯한 광범위한 사회층의 권리를 박탈시키는 수사와 관행을 팔아먹고 있다. 여느 훌륭한 제국처럼, 이러한 자유시장 자본주의 논리와 권리박탈은 무한히 확장하는 군수업과 국제 금융증권화에 깊이 얽혀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것을 유럽에서는 브렉시트(Brexit)로 너무나 친숙해져버린, "경제적 위기"라는 반이민적 고립주의의 언어로 포장해버렸다. "나 빼고 다 문제다"라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나"는 시스젠더 이성애자 백인 남성(그리고 어느정도까지는 여성)이다. 이런 논리를 따르는 정책으로는 트럼프가 제안한 이슬람교도 추방, 미등록 이주민 강제 송환,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건립, 경찰의 정지신체수색권(Stop and Frisk) 재도입, 투표자 신분인증법(Voter ID Law), 건강보험개혁법(Affordable Care Act, 일명 "오바마케어") 폐지, 여성의 선택권, 결혼 평등권, 보편적 건강보험을 위협할 수 있는 대법관 임명이 있다. 이들 정책 중 보수주의 정치에서 꼭 새로울 건 없지만,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 그리고 트럼프가 백악관에 임명하는 이들이 쓰는 언어는 극악무도하다.

총을 든 파시스트가 편안하고 즐거운 조합이자 현실이었던 적은 없다.

대선 이후 고통과 비탄이 가시지 않은 채로 페이스북에서 "트럼프의 미국 1일차 (Day One in Trump's America)"라는 페이지를 열어본 건 내 실수였다. 페이지는 유색인종, 이민자, 여성, 퀴어들이 걷거나, 운전하거나, 그저 존재하는 중에 모르는 사람이나 심지어 이웃주민들에게 언어적·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험으로 가득차 있었다. 가해자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적이고, 성소수자혐오적이고, 여성혐오적이고, 외국인혐오적이고, 폭력적일 수 있는 힘과 면책권을 얻었다 느꼈다. 몇몇 뉴스 기관이 폭력을 보도했지만, 이는 대선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내고 있는 경험들이다. 수많은 민주당원들과 정치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총득표수(popular vote)에서 이기지 않았기에 통치 권한이 없다 주장한다. 그런데 트럼프가 통치 권한이 정말 없을지라도, 트럼프 지지자들과 수천만의 (그보다 더 많지 않다면) 미국인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폭력과 공포와 불안을 대놓고 일으키는 데 필요할 권력을 쥐고 있다.

퀴어 얽힘 (Queer Entanglements)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퀴어로 사는 게 안전한 삶이었던 적은 없지만, 오바마 정권 아래서는 안전과 비슷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는 (나 같은) 백인 시스젠더 사람들에게 특히 그랬고, 내가 느꼈던 안전감은 유색인종 퀴어, 트랜스젠더, 장애인(differently abled) 퀴어들이 꼭 항상 느낄 수는 없었던 특권의 일종이었다. 이제 이런 안전과 비슷하다고 할 만한 무엇도 우리에게서, 그리고 우리 커뮤니티에게서 제거될 것이다. 트럼프는 LGBT 미국인들을 안전하게 지킬 것이라 말하지만, 차기 부통령 마이크 펜스는 전환 치료(conversion therapy)가 가능하다 굳게 믿고 인디애나 주에서 결혼하려는 게이와 레즈비언들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트럼프는 거짓말까지 한다. 대선 이후 트럼프 지지자들이 퀴어들과 그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시스젠더 백인 남성으로서 내가 가진 특권을 온전히 인지하는 한편, 내 섹슈얼리티는 나 또한 표적으로 만들기에, 나는 무섭다.

제국도 그 파장을 느끼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 재임 중 LGBTI 인권에 관련해서 국무부에서나 해외에서 많은 일을 했다. 유명한 예로 그는 2011년 UN 연설에서 "게이의 권리가 인권이고, 인권이 곧 게이의 권리(gay rights are human rights, and human rights are gay rights)"라고 했다. "게이(gay)"라는 말은 포괄적이지도 않은 데다가 특정 (백인) 정체성을 지칭하는 것이긴 하지만, 정황을 고려해볼 때 여전히 엄청난 일이다. 나는 클린턴 국무장관이 해외의 LGBTI 커뮤니티와 활동가들에게 끼친 영향을 직접 목격했다. 한국의 퀴어 운동가들은 미국 대사관이 퀴어 커뮤니티와 사회에 긍정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을 체험했고, 미 대사관은 매년 6월 한국퀴어문화축제에 고정으로 참여하며 미국의 학자들과 운동가들을 한국으로 초청하고 한국의 퀴어 운동가들을 미국으로 초청하는 적극적 지지자와 참여자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4년에서 8년 간 주한미국대사관이 쌓아온 파트너십은 해를 거듭하며 자라났고, 급성장하는 한국의 활동가 커뮤니티와 미국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다.

트럼프 정권 아래서 그 다리는 무너질까? 2016년 2월 랜디 베리 미국 LGBTI 인권 특사는 서울 방문 당시 성소수자 대학 모임 대표들에게, 공화당이 이 특사 자리를 없애버릴 거라 생각했다면 2015년 특사 자리를 받으려 하지도 않았을 거라 말했다. 그때 랜디 베리 특사는 희망적이었지만, 지금 트럼프는 국무부를 사업가들, 전쟁광들, 그리고 러시아와 여러모로 공모 관계에 있는 엑손모빌 CEO 렉스 틸러슨 같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버렸다. 게다가 보수 단체인 가족연구위원회(Family Research Council)은 해외 LGBT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해 일했던 국무부 직원들을 몰아내라고 트럼프에게 주문했다. 위원회는 이 직원들을 "진정한" 인권 문제, 그러니까 종교적 자유에 집중하는 보수주의자로 갈아치워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래서 나는 2월 당시 랜디 베리 특사처럼 희망적일 수만은 없다.

정치인들은 종교 집단(대부분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로비(미국에서는 전미총포협회나, 석유 회사들이나, 제약 산업)의 압박에 너무 쉽게 굴복하기에 나는 우려스럽다.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때, 할리우드 출신인 그는 많은 게이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제리 팔웰(Jerry Falwell, Sr.)과 같은 복음주의자들의 압력 때문에, 레이건은 동성애와의 연관 관계를 모두 부인하게 되었고 1980년대 AIDS가 부당하게 그리고 악랄하게 게이 커뮤니티를 파괴하는 것을 묵인하게 되었으며, 레이건이 "AIDS"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기도 전에 수 만명의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 트럼프도 다를 게 없다. 트럼프의 위선은 새로울 것도 없지만, 트럼프와 그의 행정부가 미국 내 퀴어와 트랜스젠더들의 인권과 시민적 자유를 억압하면서도 해외 LGBT 인권 문제에는 주의를 기울이고 지지할 것이라는 말을, 나는 상당히 믿기 어렵다.

불안의 제국

도널드 트럼프 대선을 대상으로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는 집회들을 지켜보는 한편으로, 부패와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끌었던 한국의 집회들을 보면 고무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집회들이 차기 대통령을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집회의 목적은 트럼프와 그 주변인들이 통치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려는 것이다. 한국도 대규모 시위와 정치적 변화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1980년대 시민들의 결집과 시위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여전히 한국 시민사회의 주춧돌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대규모 시위의 역사가 있다. 1960년대 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 월가점거운동(Occupy Wall Street), 흑인의 삶은 소중하다 운동(Black Lives Matter)이 그 예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상황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지금 한계점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도널드 트럼프 당선이 한계점이라 말하겠지만, 내 생각에 트럼프의 당선은 많은 이들에게 변곡점(tipping point)과도 같다. 그 둘의 차이가 있다면, 변곡점은 벼랑 끝으로 우리가 몰리는 순간이지만, 한계점은 기저의 현상태를 깨부술 때의 순간인 것이다. 우리는 계속 벼랑 끝으로 내몰렸고 이제는 충돌의 순간을 향해 낙하하고 있다. 낙하는 기약 없이 계속되고 가속도를 얻을 것이며, 끝내 우리는 우뚝 선 성문을 공성포로 함락시키듯 현상태를 깨부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일제히 성 안으로 밀어닥치리라.

우리는 가속하며 힘을 얻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인간의 품위와 시민권의 몰락이 아니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나갈 미래를 향해 낙하하기 위해 필요했던 추진력이었다.

이런 희망적인 말이 우리한테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우리가 돌파하는 그 순간을 상상해볼 수는 있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당장 지극히 현실적이고 끔찍한 대거 강제 송환, 매장의 가능성, 의료보험 상실, 폭력적인 괴롭힘을 마주하는 지금, 희망적인 미래는 희망일 뿐이다. 유색인종, 이주민, 퀴어, 여성, 장애인의 이야기는 날마다의 생존 기록이다. 많은 이들에게 트럼프 지지자는 단순히 무지하고, 편협하며, 성소수자혐오적이거나 여성혐오적인 사람이 아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총을 쥐고 있고 방아쇠를 당기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리고 많은 지지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모든 트럼프 지지자가 인종차별적이거나 여성혐오적이진 않다고 말할지 모르나, 사실은 여전히 분명하다. 그들은 트럼프에 투표했고,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인종·젠더·섹슈얼리티·장애차별적인 억압에 투표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우리 전략은 미국에서는 전세계서든, 생존이다. 하지만 한국의 퀴어들에게나 미국의 인종·젠더 소수자들에게 생존이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중 몇몇에게 생존이나 극심한 신체적 위협은 새로운 상황일 수 있다. 자녀들에게 생존의 위협에 대해 줄곧 경고해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상황이 조금 더 심각하고 즉각적이게 된 것일 뿐이다. 나는 생존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 이야기할 수 있는 생존 기술이 없다. 허나 우리는 여전히 안전한 공간, 특히 미등록 이민자를 위한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여기 없거나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는 사람들을 지지할 수 있다. 이는 친구나 가족들과 벌이는 어색하고도 논쟁적인 이야기 같은 일상적인 행동일 수도 있고, 시위를 통해서일 수도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충돌과 갈등을 회피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움직일 수 없다. 안전하고 무탈하게 지내려고는 해야겠지만, 지금 우리는 그 모든 안전이 내던져진 시점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제국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부분적으로 한국인들은 이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광범위하게, 공개적으로, 스스럼없이 독재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시위들이 세상을 바꾸고 민주주의, 자본주의, 시민권을 개혁하는 데 일조한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러나 제국을 바꾸기 위해서는 한국의 퀴어 운동가들, 인권운동가들, 페미니스트들이 투쟁하며 지향하는 혐오반대(anti-bigotry), 여성혐오 반대, 성소수자혐오 반대, 외국인혐오 반대를 끌어안아야 한다. 반권위적이고 민주적이면서도 (성소수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을 위한 인권을 부정하는 것은 위선적이고 쓸모없다. 이는 트럼프의 여성·소수자혐오적인 이상한 말에는 반대하면서도 정책 때문에 트럼프를 뽑았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지금 이 순간, 선택은 모 아니면 도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한국 문화와 사회에 무지하다 비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퀴어 운동가들과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 했고, 같이 일했고, 같이 행진했고, 같이 울었고, 같이 애도했으며, 그리고 그들에게는 여느 때보다도 더 지금 이 투쟁이 모 아니면 도일 수밖에 없다.

변화가 하룻밤 새 일어나진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남으려고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재가 지금처럼 불안했던 적은 없기에, 가장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가장 예상치 못한 사람들과 함께 연대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한국인 및 아시아계 미국인 그리고 이민자 커뮤니티와 조직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도 가능한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핵심은, 생산적으로 움직이면서도 관습을 탈피하는 것이다. 이는 많은 활동가 커뮤니티가 똑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고립된 커뮤니티 너머로 뻗어나가면서 불편할 수도 있는 커뮤니티로 옮겨간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단지 우리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유색인종 여성들의 책과 글을 더 많이 읽고 번역하고, 제3세계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을 보자. 사랑은 지금 이런 순간에서 충분하지도 특히 유용하지도 않다. 살아남고, 극복하고, 이 불안의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가 안전할 수 있도록 전방에 나서 움직이면서도 물러서서는 안된다. 위협과 불안은 온몸으로 겪을 수 있는 현실이고, 날이 가면 갈 수록 커질 뿐이다. 그렇기에 행동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제국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제국의 모든 구석에서 미국의 예외주의에 전방위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여기 미국에서, 그리고 저기 한국에서, 미국은 동경해야 할 유토피아가 아니며 변혁이 필요한 국가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우리는 그 투쟁을 펼쳐나간다. 미국인들은 미국이 세계 최고의 국가라는 주장을 멈춰야 한다. 미국은 최고가 아니다. 다른 국가들도 표준과 해답을 구하려 미국을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문제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투쟁은 미국 안팎에서 지금 시작된다.

슬퍼할 시간은 끝났다. 이제 움직일 시간이다.

번역 : 김정엽 (해밀-옆)
영문 : https://timothygitzen.com/2017/01/09/empire-of-prec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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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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