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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외치'도 심판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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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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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이는 확실히 보통 사람들과 종자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실제 1번을 찍은 사람도, 2번과 3번을 찍은 사람도 모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기대했던 '반성과 변화'는커녕 '독선과 아집'만 확인한 탓이리라. 그런 인식으론 남은 2년여가 가파른 하산길이 될 것이 틀림없겠지만, 그것보다 더 걱정인 것은 그 여파가 하산하는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삶에 고난과 고통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4월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라는 형식을 빌려, 4·13 총선 이후 처음 공개석상에서 말문을 연 박근혜 대통령은 시종 낙차 큰 커브로, 직구를 예상하던 보통 사람의 상식을 마구 유린했다.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이라는 평가에 대해 '기능 부전의 양당체제에 대한 심판'이라고 맞받았고, 친박·진박과 진실한 사람을 앞세운 선거운동에 대해선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입을 싹 씻었다. 내각제 아래의 선거였다면 내각교체가 아니라 정권교체가 이뤄졌어야 마땅한 결과이건만, 경제·안보 상황이 급박하기 때문에 내각 개편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더 나아가 지금의 진용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걸까, 아니면 괜한 허세를 부리는 걸까. 여하튼 분명한 것은 4·13 총선의 참패가 박 대통령의 기존 인식과 행동을 바꾸는 데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과연 그래도 되는 걸까. 국민이 대통령에게 정연한 퇴각과 대담한 전환을 엄중하게 요구하고 있는데 이렇게 뻗대도 될까, 아니 버틸 수는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이번 선거가 보여주듯이, 자고로 고개 뻣뻣한 권력자가 국민을 이긴 예는 없다. 다만, 그 와중에 발생하는 고통의 크기와 정도가 문제가 될 뿐.

나는 이번 총선이 박 정권의 실패한 외교·안보 정책을 바꿀 절호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본다. 이번에 외교·안보 현안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고 해서 외면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총선 결과엔 박 정권 3년의 외교 실정에 대한 심판도 함께 담겨 있을뿐더러, 한반도 정세도 외교·안보 정책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박 정권이 출범 초 거창하게 내세웠던 대북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3대 외교정책의 완전 소멸이 증언하고 있는 바다.

외교·안보 정책의 재구성을 위해선, 우선 미국의 기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점차 확실시되는 도널드 트럼프의 '선미정책'(America First)을, 그가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결코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최소 주한미군 주둔비 증액부터 최대 주한미군 철수와 핵우산 포기까지를 넘나드는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우리 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내용이다. 더욱 심각한 건 그런 주장이 경제난과 과도한 개입주의에 싫증 난 미국 민중의 큰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미군의 개입을 활용한 안보정책이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는 걸 전제로 지금부터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의 변화도 면밀하게 주시해야 한다. 아무리 가혹한 제재를 가해도 북한 체제의 궤멸과 자멸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2013년 말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의 "2015년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는 호언은 이미 객기로 드러났다. 5월6일 36년 만의 당대회 이후 예상되는 북한의 유화책까지 염두에 둔 다각적 접근이 요구된다. 국민의 지지와 거리가 먼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도 섣부른 이행보다 충실한 보완에 힘써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지금의 강경·원리주의 외교·안보 진용의 퇴진과 실용주의로의 재구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때를 놓치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