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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의 한화, 박근혜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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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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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10개 구단 체제가 된 2015년 프로야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은 단연 한화 이글스이고, 그 중심에는 김성근 감독이 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화팀의 활약과 극적인 승부에 본디 한화팬이 아니었던 사람들마저 열광하고 있다. 마치 한화팀이 벌이는 경기의 짜릿한 맛이 한번 잘못 손을 대면 헤어나기 어려운 마약과 같다고 해, '마리한화'라는 별칭이 유행할 정도다. 나도 올해 새로 한화 야구에 중독된 사람 중 한 명이다.

2015년 정규리그의 전반기를 마치고 후반기에 막 접어든 현시점의 한화 성적은 10팀 중 5위다. 2009년부터 정규시즌 성적은 8-8-6-8-9-9였다. 2013년도부터 엔씨 다이노스가 새로 가입하면서 9개 구단 체제가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꼴찌가 지정석이었던 셈이다. 2012년 6위도 엘지 트윈스와 공동 6위로 꼴찌에서 두번째였다. 올해는 만년 꼴찌를 확실하게 탈피해 가을야구도 도전해볼 만한 성적을 달리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진격이다.

그러나 한화의 돌풍은 순위 상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놀라운 것은 경기의 질이 확 달라졌다는 점이다. 만년 승수 쌓기 대상에서 어느 팀과 붙어도 쉽게 지지 않는 끈적끈적한 찰거머리 팀으로 색깔이 변했다. 올해 리그에서 지금까지 역전승 1위, 끝내기 승리 1위, 홈 관중 만원 1위라는 기록이 한화의 질적 변신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 모든 변화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 70대 중반의 김성근 감독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의 리더십이다. 그가 감독으로 취임하는 과정부터 범상하지 않았다. 그는 구단이 위에서부터 독자적으로 찍어서 선택한 감독이 아니라 팬들의 밑으로부터의 요구를 구단이 받아들여 자리에 오른 전대미문의 감독이다. 이런 팬들의 열망이 뒷받침된 탓인지 그의 독한 야구는 더욱 독해졌다. 남들은 지팡이를 짚고 다닐 나이에 밤늦게까지 직접 방망이를 들고 공을 치며 수비 훈련을 시키고, 타격 훈련을 진두지휘한다. 할아버지와 같은 감독이 앞서서 이끄니 손자 같은 선수들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런 훈련이 다음 경기에서 성과를 내니 선수들의 믿음과 존경도 깊어질 법하다.

김 감독은 솔선수범의 리더십 외에 새로운 선수의 발굴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선수들의 유명세보다는 가능성과 의욕이 넘치는 선수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감하게 발굴해 등장시킨다. 그가 아니었다면, 1군 경기 첫 홈런을 역전 만루홈런(6월10일 삼성전)으로 장식한 신성현, 고졸 1년차에 선발투수로 데뷔해 맹활약한 김민우 선수 같은 신인들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가 매 경기 총력을 다하는 모습도 본받을 만하다. 25명의 가용할 수 있는 선수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소진하는 바람에 경기 막판에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고 내야수가 포수 마스크를 쓰는 진기한 풍경도 종종 벌어진다. 승리를 위해 자신이 쓸 수 있는 자원을 박박 긁어모아 대처하는 모습은 처절하면서도 감동적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투수 교체 실패 등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인정한다는 점이다.

김성근의 한화가 2015년 리그의 반환점을 돌았듯이, 박근혜의 한국도 이제 막 후반전으로 접어들 찰나에 있다. 야구와 정치가 똑같지는 않지만, 지도자가 자신이 관할하고 있는 분야에 끼치는 영향력의 측면에서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전반기는 뽑아준 국민의 기대와 존경을 사기는커녕 불신과 불만만 키운 시기였다. 민주주의와 인권, 언론자유로 대표되는 나라의 품격은 내리막길을 걷고, 수출과 고용 등 경제 성적도 빈타에 허덕이고 있다. 청와대나 내각의 인물 기용은 수첩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나마 야구 선수 이름보다도 생소한 경우가 허다하다. 세월호 침몰과 메르스 사태, 국정원 도청 등 대통령이 책임을 통감해야 할 문제에는 딴청을 피우고,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에겐 영락없이 역정을 내고 보복한다.

야구 감독은 잘못하면 임기 중이라도 교체할 수 있지만, 나라 감독은 그러기 힘들다. 지금부터 잘하는 야구 감독 흉내라도 열심히 냈으면 좋으련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