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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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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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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을 흔히 '인기영합주의'라고 부른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무지몽매한 민중의 지지를 얻으려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선심을 베푸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파격적인 행보를 보면서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지적이 슬슬 나오고 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전원 정규직화 지시, 세월호 사건 때 숨진 기간제 교사의 순직 처리 지시 등을 놓고 그런 얘기가 나온다. 그것이 제도의 개선이라기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그런 지적을 받을 요소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면 정치에서 포퓰리즘은 절대 쓰지 말아야 할 독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의 표를 얻어 당선되고, 국민의 지지를 밑거름 삼아 나라를 끌고 가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지도자에게 포퓰리즘은 어느 정도 필요할 수밖에 없다. 포퓰리즘은 민중의 뜻을 대변하고 사회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것이 목적으로만 쓰여지지 않는다면 '잘 사용해야 할 독이자 보약'이 될 수 있다. 사용 범위와 정도가 문제일 뿐이지.

포퓰리즘의 반대편에는 제도화, 법제화, 구조화 등의 말이 있을 것이다. 사회가 지속가능하게 유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인내가 매우 필요한 지난한 작업이다.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 정당, 조직을 설득하고, 이해관계의 조정을 통해 힘겨운 타협을 해야 이뤄질 수 있다. 그래서 화끈하지 않다. 어느 집단도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이룩해 놓으면 영속성과 일반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포퓰리즘도 필요하고, 제도화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포퓰리즘이 단지 포퓰리즘에 머물지 말고 제도화를 견인한고 압박하는 노릇을 해야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제도화가 주가 되고 포퓰리즘은 종이 되며, 제도화가 목적이고 포퓰리즘이 수단이 되야 한다는 말이다.

포퓰리즘으로 얻는 민중의 환호는 열광적이지만 지속하기 어렵고, 제도화로 이룬 정책은 미지근하지만 영속적이다. 그러니까 선출직 공직자는 항상 그것이 독인 줄 알면서도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큰 지도자는 그 너머를 볼 줄 알아야 한다. 포퓰리즘으로 인한 환호작약이 좋다고, 거기에 취해 거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제도화를 끈질기게 추구하면서 그를 이루기 위한 동력으로 포퓰리즘을 쓴다면 최선일 것이다.

지도자 한 사람이 바뀌어도 사회 공기기 엄청나게 바뀐다는 걸 실감하는 나날이지만, 지도자 한 사람만 바뀌고 그 사회를 조직, 운영하는 체계가 그대로 잔존한다면 진정한 사회의 진전을 이룰 수 없다. 지금 우리는 그런 걸 잘 관찰할 수 있는 역사적인 지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