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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와 언론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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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국익인가의 논쟁은 봉쇄한 채 국익을 해치니 무조건 반대해선 안 된다는 것은 언론자유, 민주주의 후진국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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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 언론인,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신문 주필의 추모회가 6월 서울에서 열렸고, 많은 한국인 지인들이 조의를 표하고 있다.

"다케시마를 일·한 양국의 공동 관리로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한국이 응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섬을 양보해 버리면 어떨까 하는 꿈같은 생각을 한다. 그 대신 한국은 이런 영단을 높이 평가하고 '우정의 섬'으로 부른다."

최근 작고한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 언론인,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신문> 주필이 재직 시절인 2005년 3월에 자신의 이런 '몽상'을 담은 칼럼을 써, 일본 안에서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일본 우익단체가 연일 회사 앞에 몰려와, 그를 '역적' '매국노'라고 비난하고 물리적인 위해까지 가할 험악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당시가 한·일 두 정부 간에 독도 문제를 둘러싼 치열한 '외교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때임을 생각하면, 엄청난 용기 없이는 쓸 수 없는 글이다. 그러나 그는 협박에 굴하기는커녕 더욱 강하게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갔다고, 지난 6월 서울에서 열린 그의 추모회에 참석한 신문사 후배는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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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함으로써 세계적인 정론지로 우뚝 선 뉴욕타임스 본사 건물 모습.

<뉴욕 타임스>는 베트남전쟁이 절정이던 1971년, 미국 정부가 국민을 기만하고 베트남전쟁에 불법 개입한 사실을 담은 국방부 비밀문서(일명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해 보도함으로써, 일약 최고의 국제적인 정론지로 우뚝 섰다. 리처드 닉슨 당시 행정부는 이 보도가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겁박하며 기밀누설죄로 고소하고 출판금지 소송까지 했지만, 신문사는 굽히지 않았고 미국 대법원은 뉴욕타임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요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민주주의 체제에서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언론의 자유를 제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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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계에서 공정성과 신뢰성에서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영국 비비시의 인터넷 홈페이지 첫 화면.

세계적으로 신뢰와 공정성 분야에서 뉴욕타임스가 신문의 대표 주자라면, 영국의 <비비시>는 방송의 대표 선수이다. 물론 비비시의 이런 명성도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가깝게는 1987년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전쟁 때 마거릿 대처 총리의 결단과 업적을 찬양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해 달라는 정권의 요구를 거절하고, 전쟁 보도에서 엄정중립과 공정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자기 나라 군대를 '아군' 아닌 '영국군'으로 불렀던 '비애국'의 축적이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2차 대전 때 애국 보도로 도배됐던 독일·일본 등의 매체와 달리, 전황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도하면서 시청자들의 신뢰를 얻은 경험에 뿌리를 박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국익과 언론자유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때론 격렬한 충돌을 빚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언론자유는 당대 정권과의 불화와 마찰 속에서 성장·발전할 수밖에 없고, 그런 늪을 헤쳐나온 언론사와 언론인만이 언론자유와 민주주의의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자격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또 그런 것을 용인하는 사회가 선진 민주주의 사회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일고 있는 '사드 배치 찬반과 국익 논쟁'은 우리 사회의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잣대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엔 일부 보수언론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학자와 전직 관리가 중국 매체에 기고나 인터뷰를 한 것을 문제 삼아 '매국'이니 '사대주의'니 하면서 불을 지피고 새누리당이 가세하는 형태로 논란이 시작되었다. 뒤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6명이 중국 쪽 학자 등과 사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동이 더욱 커졌고, 청와대 홍보수석과 대통령까지 가세해 야당 의원들이 중국에 동조하는 비애국적 행위를 하는 양 비난했다. "안보 문제와 관련해 이웃 국가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국민의 위중한 안보 이해를 앞설 수 없는 것"(7일 김성우 홍보수석)이고 "국가안보에 대해서는 내부 분열을 가중시키지 않고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 책무"(8일 박근혜 대통령)라고 마치 중국에 가는 것이 문제인 듯 말했지만, 정작 주장의 핵심은 국가 안보적인 고려에서 사드 배치를 결정했으니 반대 주장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국은 사드 배치 반대론을 효과적으로 잠재우기 위해 동원한 국민감정 부추기기 재료에 불과하다. 중국에 안 간 야당 의원의 사드 배치 반대 주장에 "북한과 비슷한 황당한 주장"이란 종북 딱지를 붙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무엇이 국익인가의 논쟁은 봉쇄한 채 국익을 해치니 반대하지 말라는 것은 언론자유 후진국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이 정부 들어 우리나라 언론자유지수가 역대 최하위 아니던가.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