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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난 집 주인의 '한가한 유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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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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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히 트집을 잡자는 게 아니다. 나는, 굳이 이 시점에 왜 박근혜 대통령이 아프리카·프랑스 순방에 나서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이른바 외교 전문가들에게 물어봐도 나와 의견이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박 대통령이 5월25일부터 6월5일까지 무려 열이틀 동안 에티오피아(25~28일), 우간다(28~30일), 케냐(30일~6월1일) 아프리카 동부 3국과 프랑스(1~4일)를 국빈방문한다. 이란을 다녀온 지 불과 20여일 만에 다시 장기 정상외교 일정을 갖는 것이 매우 이례적인 일일뿐더러 대상국이 아프리카와 프랑스라는 것에 이르면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가 박 대통령이 1974년 한때 유학을 했던 '인연의 나라'이기 때문에 이미 대통령이 된 뒤 두 번이나 다녀왔는데도 또 가고 싶었던 것 아니냐든가, 이왕 아프리카에 가기로 한 바에야 동부에 밀집한 나라들뿐만 아니라 중서부의 나라를 한 곳 정도 포함하는 게 적절했을 것이라든지, 우연히 이번에 순방하는 나라들이 모두 여행하기에 연중 최상의 시기라는 웅성거림도 있는 모양이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나의 논점은 그런 소소한 문제들을 지적하고자 하는 데 있지 않다. 나라 안팎이 마치 불난 집처럼 어수선하고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한가한 유람'처럼 비치기 십상인 이런 외교 일정을 꼭 이때 잡아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일정이 우리가 처한 객관적인 외교·안보 현실과 맞기는 한 것이며, 4·13 총선 이후 나라 걱정이 태산 같은 국민의 눈높이를 충족할 수 있는 것이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외교 행사를 보면, 박 대통령의 이번 순방이 얼마나 긴장감 없고 초점이 어긋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우선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5월23~25일)을 거쳐 일본의 이세시마에서 열리는 주요7국(G7) 정상회의(5월26~27일)에 참석한다. 모두 한반도 정세에 직간접으로 크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행사이다. 미국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은 빌 클린턴(2000년 11월)과 조지 부시(2006년 11월)에 이어 세번째이지만,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군사력 확장을 견제하는 데 중점이 있다. 특히 1975년 베트남 종전 이후 취해졌던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무기 금수 조처를 완전 해제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에서 최초의 원폭 투하지인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것도 지역정세의 관점에서 보면 미-일 동맹의 강화와 중국 견제의 메시지를 보내는 의미가 강하다. 우리로서는 전쟁 책임을 모면하고 한국인 원폭 피해를 외면하려는 미·일 두 나라의 움직임이 못내 불편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더구나 반중 성향이 강한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20일 취임하면서 중국이 군사·외교 공세를 강화하는 것을 보면, 중국을 둘러싼 지역정세의 파고는 더욱 거세질 것이 확실하다.

중국을 둘러싼 긴장 고조는 남북관계에도 곧바로 여파를 끼치게 되어 있다. 이에 더해 5월 초 36년 만의 노동당 당대회를 통해 핵-경제 병진노선을 더욱 강화한 채 등장한 북한의 김정은 체제는 다각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4·13 총선 참패 이후 종잡지 못하고 있는 여권의 혼란과 민심 이반도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이런 마당에 과연 아프리카 순방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청와대의 화려한 사전 홍보에도 불구하고, 이번 방문으로 박 대통령 개인의 오대양 육대주 순방이 완성된다는 것 이상의 뭐가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해 4월 중국과 일본의 정상이 참석한 인도네시아의 반둥회의 60주년 정상회담을 외면한 채 브라질 등 남미 4개국으로 날아갔던 '한가한 나들이'의 기시감을 떨칠 수 없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