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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에는 'HAPPY'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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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가을, 대학 2학년이었던 내가 처음 간 외국이 한국이었다. 승객으로 꽉 찬 통일호를 타고 대전 엑스포를 보고, 서울에서 경복궁이나 국립중앙박물관 (옛 조선총독부 청사) 등 여기저기 혼자 돌아다녔다. 한국어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지만, 아직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는 수준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내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여러 사람이 신기한 눈으로 다가와 따라오면서 "~~은 먹어봤나요?" "~~에 가봤어요? 같이 가자" "일본에 돌아가면 반드시 연락해요!"라고 말하며 곁에서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당시 대개의 한국인은 소박하고 외국인들에게 친절했지만, 일본에 대해 날카로운 반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 밤 깊은 서울의 번화가 술집에서 나를 여기저기 안내해 준 남성은 "일본에는 고유의 문화라는 것이 없다." 등 편견 섞인 일본 비판을 시작했다.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찬성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기에, 서투른 한국어로 열심히 반론을 시도했는데 잘 통하지 않았다. 그러다 옆에서 술을 마시던 중년 남자가 갑자기 나에게 영어로 이렇게 조용히 말했다.

"You didn't invade our country, but your father and grandfather did. Never come back to Korea!"
(너는 우리나라를 침략하지 않았지만 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그랬다. 절대로 한국에 돌아오지 마라!)

나를 데리고 돌아다닌 남성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라고 항의하고 있는 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나의 할아버지는 전쟁 중에는 언론 통제로 먹고살기도 여의치 않았고, 전후에는 이론 잡지의 편집장으로 한일 관계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크게 이바지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느냐는 생각에, 눈물이 다음날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다음해인 1994년에 "일한학생회의"라는 학생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1995년에 1년간의 한국 유학까지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신문기자나 인터넷 기자로 지금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국 소식을 언론을 통해 알리는 기회도 많지만 "NEVER COME BACK TO KOREA"라는 목소리는 지금도 귓속에 남아 있다. 올바른 지식을 갖고 서로를 잘 알아야 우호, 상호 이해로 이어지는 것이다. 편견에 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일이 서로를 잘 알고 싶다는 의욕이 최근 희미해지면서 서로를 힘으로 굴복시켜 눈앞에서 없애겠다는 움직임도 강해지고 있다. 왠지 허전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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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긍정적인 자세로 편견에 대항하려는 젊은 세대의 시도를 보면 무조건 가세하고 싶어진다.

오사카에 사는 리츠메이칸 대학 4학년, 토미타 스미레코(22)는 재일한국인이 많이 다니는 쓰루하시나 대학으로 가는 오사카 중심지인 우메다역 앞 등에서 인종 차별이나 외국인 배척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 아파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옛날부터 다양한 문제로 외교적 마찰을 빚었지만, 그것이 일반 시민들의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에 대해서는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런 2014년 5월 말 패럴 윌리엄스의 노래 'Happy'를 만났다. 이스라엘의 포격에 시달리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구 가자, 원전 사고로 방사능 오염에 고생하는 후쿠시마 등에서 이 곡에 맞춰 많은 사람이 춤추는 동영상이 퍼져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다, 한중일의 젊은 세대가 'Happy'를 춤추자. 증오를 부추기는 연설에는 웃으면서 맞서자. 자신들 세대에는 앞세대보다 좋은 한중일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담당할 세대가 "어른들"에게 메시지를 전하자.

리쓰메이칸 대학에 다니는 일본인, 재일 한국인, 중국과 한국 유학생들이 춤추는 모습을 직접 촬영했다. 고등학교 때 참가한 한일교류 프로그램이나 미국 유학 시절에 만난 한국인, 중국인 친구들이 동영상을 이메일로 보내 주었다. 참가자는 100여명이나 됐다.

한중일 'Happy'를 만드는 작업은 뜻밖에 민감한 벽도 있었다. 보다 인상적으로 만들기 위해 한중일의 국기를 쓰려 했지만 "노인들 세대에는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지적을 받고 단념했다.

그래도 "사이 좋게 지내자!"는 단순한 메시지 그 자체가 민감해서는 안 된다고 토미타는 생각한다. 웃으면서 즐겁게 춤추는 것은 인종과 관계없이 인류 공통의 HAPPY다. "사람은 모두 '○○인'이기 전에 한 사람이다"라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동아시아에 펴져 나갔으면 한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한중일도 조금은 사이 좋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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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사를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에 썼더니 'LIKE'가 1만 5천을 넘었다. 심한 비판의 반응도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늘어나는 LIKE를 보면서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다. 나의 학생시절과 확실히 세상은 달라졌구나 하는 느낌도 들었다.

편견을 없애려면 우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은 올해 8월 15일에 대학생 2명을 한국에 보내기로 했다. 다양한 행사를 실시간으로 일본 독자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8월 15일의 한국을 처음 경험하는 두 일본인 학생은 어떤 것을 느낄까.